주명철 교수 귀가쫑긋에서 강연

지난 13일 인문학 모임 '귀가쫑긋'에서 프랑스 혁명에 대해 강의 중인 주명철 전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고양신문] “요즘 적폐라는 말이 유행입니다. 새로운 시대를 연다는 의미로 잘못된 과거를 털고 가자는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프랑스 혁명 당시에는 ‘구체제(앙시앵레짐)’라는 말을 썼습니다. 즉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그 순간부터 어제까지는 구체제, 완전히 지워버려야 할 과거가 됐습니다. 프랑스 혁명 이후 그들이 보는 과거는 청산해야할 적폐였습니다.”

지난 13일 일산의 인문학 모임 귀가쫑긋에서 주명철 전 한국교원대 교수가 프랑스 혁명에 대한 강연에서 한 말이다. 주 교수는 2015년까지 28년간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직에서 은퇴를 한 후 명예교수라 쓰고 ‘백수’라 읽는 사람이 됐다. 이후 프랑스 혁명사를 재미있게 저술해 평생 추구한 학문을 제대로 마무리하기로 결심했다. 총10부작을 계획으로 집필을 시작해 제1권 『대서사의 서막』을 시작으로 현재 제5권 『왕의 도주』까지 발간한 상태다. 그 외『진정한 혁명의 시작』, 『오늘 만나는 프랑스 혁명』, 『계몽과 쾌락』등 다수의 저서와 번역서가 있다.

이날 강연은 1789년 7월 14일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전 프랑스의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를 개관한 제1권 『대서사의 서막』을 요약해 들려주는 시간이었다.
 

프랑스 혁명 이전 구체제(앙시앙레짐)에 대해 설명중인 주명철 교수와 경청중인 참석자들.


그는 “프랑스인들은 1789년의 프랑스 혁명을 현대 프랑스의 기원이자 자유의 원년이라고 부른다. 그 프랑스 혁명을 잉태한 원인은 구체제에 있다”며 “오늘날 적폐를 청산한다고 하는 사람들도 따지고 보면 적폐의 자식인 것 처럼 프랑스 혁명가들도 구체제의 자식들인 셈”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그런 의미에서 프랑스 혁명을 잉태한 구체제를 있는 그대로 연구하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를 통해 프랑스 혁명이 얼마나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는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18세기 초 프랑스에서 구체제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인구수가 2천만이었고 18세기 말, 1789년 프랑스 혁명이 발생했을 때는 2천8백만 명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이들 중 98%의 사람들은 정치와 무관하게 살았다. 정치는 왕과 대신들 소수가 베르사유 궁전 안에서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당시 프랑스의 정치 체제는 절대군주제였다. 대다수의 시민은 왕과 그를 대신하는 사람들이 결정하는 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체제였다. 절대군주로서 왕은 법의 근원이자 법 그 자체였다. 더 나아가 왕은 전쟁과 평화의 근원이자 원천이었다. 왕이 전쟁을 하고 왕이 평화조약을 맺었다. 이런 신분사회에서 국민은 왕이 전쟁에 이기냐 지느냐에 따라 그가 속하는 나라가 결정될 정도였다.

프랑스가 근대사회로 가면서 왕이 모든 권리를 가지고 절대군주화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인물이 루이14세(1638~1715)다. 이후 루이15세(1710~1774)와 루이16세(1774~1793) 때에는 구체제의 절대군주정의 신성성이 크게 훼손된 상태였다. 루이15세 때부터 그와 그의 정부 마담 뒤바리를 주인공으로 한 포르노적 작품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기 시작할 정도였다.

18세기에 사회적으로는 신분제도가 많이 무너지기는 했지만 공식적으로는 여전히 개인의 능력보다는 가문과 핏줄이 중시되는 신분제사회였다. 제1신분인 기도하는 사람(종교인)이 0.5%, 제2신분인 싸우는 사람(귀족, 기사)은 1.5%, 제3신분인 일하는 사람(노동자)이 98%였다.
 

프랑스 혁명에 대해 설명중인 주명철 교수.

문화적으로는 그동안 사람들의 가치관과 세계관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종교를 무시하는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생각하는 방식이 행동으로 드러내기 시작했고 계몽사상이 등장했다. 이는 1783년에 칸트가 표현한 “감히 알고자 한다”라는 말로 확실히 드러난다. 16세기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로 인해 자연현상을 관찰해 특정 법칙을 발견하고 합리성을 찾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기존의 사상에 의심을 품기 시작한 것.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차츰 ‘어떻게 많은 사람들을 민주적으로 상대하고 개인적인 가치를 존중해 주는 사회로 만들 것인가’를 생각하게 됐고 저항문화를 발전시켜 여론을 형성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국가의 재정파탄은 프랑스혁명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3개의 신분이 모인 전국신분회(3부회)에서 다수를 차지했던 제3신분이 “우리는 국민의 대표다”라고 외침으로서 변혁을 가져오는 씨앗 된 것. 혁명기간도 앙시앵레짐 기간도 아닌 1789년 6월 17일에 법적혁명이 가장 먼저 일어난 것이다. 이후 개인별 투표를 중시하는 민주주의적인 방식을 주장함으로써 숫자가 힘을 발휘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당시 6월 20일의 상황을 그린 자크 루이 다비드의 그림 ‘제드폼의 맹세(Sketch of le serment du jeu de Paume)'를 보면 변화된 새로운 정치 문화를 알 수 있다. 정치가 공개적인 활동으로 바뀌었고 권력의 원천은 민중에게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지식과 그림자료를 통해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전의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측면에 대해 들려준 그의 강연은 프랑스 혁명에 대한 이해를 도와줬다.

한펀, 귀가쫑긋은 매월 첫 번째주 금요일에 정기강좌를 열고 있다. 강좌는 누구나 무료로 참석할 수 있다. 11월 3일에는 사주명리학 연구가이자 저명한 칼럼니스트인 조용헌 원광대 불교대학원교수가 ‘고대 그리스의 신정풍수’를 주제로 강연을 할 계획이다.

귀가쫑긋 강좌 문의 : 010-8882-1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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