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문화 공감공간
실개천 흐르는 들녘에는 가을이 한가득<공감공간> 장월평천, 대화천 자전거길과 송포 들녘
  • 유경종 기자
  • 승인 2017.10.26 08:50
  • 호수 1342
  • 댓글 0

 

[고양신문]  가을이 절정이다. 가을의 그윽한 느낌은 단풍이 물드는 국립공원이나 국화향 가득한 수목원에만 머무는 게 아니다. 벼가 누렇게 익는 너른 들녘이야말로 우리의 정서에 녹아 있는 가장 풍요로운 가을 풍경이 아닐까. 다행히 고양은 도심에서 가까운 거리에서 논과 밭을 만날 수 있는 복 받은 땅이다. 송포 들녘의 가을을 만나고 싶어 나들이를 나섰다.

가을 들녘 나들이를 도와 줄 가장 근사한 파트너는 바로 자전거다. 그늘 없이 이어지는,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이동 코스를 자전거의 적당한 속도감이 상쇄시켜 주기 때문이다. 효율적인 코스를 소개하기 위해 ‘자전거 21 고양지부’ 한기식 사무국장에게 도움을 청했다. 시민들에게 자전거 문화를 보급하고, 청소년들과 함께 환경 감시활동도 펴고 있는 한 사무국장은 오랫동안 발품을 팔아 고양시 명품 자전거길 지도를 만든 주인공이기도 하다.

도심 생태 젖줄 대화천

대화동 고양종합운동장을 출발해 일산서부경찰서와 119안전센터를 지나니 대화천을 가로지르는 장성교를 만난다. 대화천은 1990년대 초 일산신도시를 조성하며 덕이동과 일산동 지역에서 발생되는 생활하수를 유도하기 위해 정비된, 고양시 하천의 막내뻘 되는 물길이다. 길이 5km가 조금 넘는 작은 하천이지만 지속적인 수질 개선과 식생 관리로 풍요로운 생명을 품고 있는 도심 생태 하천 역할을 톡톡히 한다.

장성교에서 상류로 조금만 올라가면 고양생태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생태공원을 중심으로 한 대화천 수계에는 맹꽁이, 원앙, 오색딱따구리, 후투티 등의 다양한 생명들이 살아가고 있다. 농수산물유통센터, 고양야구장, 대화농업체험공원, 대화동레포츠 공원도 대화천을 따라 차례대로 이어진다.

대화천을 지나면 장월평천과 가좌천을 만난다. 파주 심학산 아래 동패리에서부터 흘러 내려와 삽다리를 지나 가좌동과 덕이동 들녘을 적시는 가좌천은 덕이교 아래 합수부에서 장월평천을 만나 짧은 여정을 마무리한다. 모든 물길은 바다를 그리워하지만, 모든 하천이 바다에 가 닿는 건 아니다. 중간에 더 큰 하천을 만나면 자신이 품고 온 물길과 이름을 아무 조건 없이 내 준다.

노동요를 대신하는 콤바인 엔진소리

장월평천은 노루 장(獐)에 넘어갈 월(越)자를 쓴다. 노루가 뛰노는 벌판과 하천을 아우르는 정겨운 이름이다. 여기서 노루는 강 하구의 초지를 좋아하는 고라니를 말한다. 장항동, 장항IC, 장항습지 등으로 시민들에게 익숙한 장항(獐項)이라는 이름에도 노루가 등장한다. 송포에는 노루뫼라는 옛 마을 지명도 있으니 한강변 고양땅은 이래저래 고라니들과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았던 동네였나 보다.

장월평천 둑길을 따라 한강 방향으로 달린다. 길 왼편으로 비로소 황금빛 논이 나타난다. 들녘 너머로 덕이마을과 가좌마을 아파트 단지가 배경을 이루는 풍경도 나름 멋스럽다. 그 너머로는 파주 심학산의 둥근 구릉이 넉넉한 풍경을 받쳐준다.

깔끔하게 이발한 듯 벌써 추수를 마친 논도 있고, 알알이 여문 벼이삭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논도 있다. 추수가 한창인 논에서는 콤바인이 부지런히 볏단을 삼킨다. 토종닭들이 풀밭 곳곳에 알을 낳아 놓듯, 콤바인은 하얀 비닐로 둥글게 감싼 볏짚 알들을 들판 여기저기에 부지런히 부려놓는다.

기계로 농사짓는 시절이 도래하기 전 송포 들녘에는 절기마다 농부들의 노동요가 불리워졌으리라. 고된 여름 농사를 마치고 풍요로운 가을걷이의 기대를 품고 부르던 이 지역의 들노래는 송포호미걸이로 아름답게 전승되고 있다.

 

벼이삭이 알차게 여물고 있는 송포 들녘. 송포쌀은 으뜸의 맛과 품질을 자랑한다.
심학산이 건너다보이는 논에서 콤바인이 부지런히 벼를 추수하고 있다.

 

들깨와 목화송이 여무는 농가 텃밭

벼는 콤바인이 추수하지만, 들깨를 터는 도구는 여전히 멍석과 작대기다. 가을 햇살을 가리기 위해 모자 위에 수건을 겹쳐 쓴 아주머니들이 잘 마른 들깨 줄기를 돌려가며 향기 나는 알갱이들을 작대기로 탁탁 털어낸다. 당사자들에겐 고단하고 지루할 노동을 추억 어린 정취인양 엿보는 마음이 괜히 미안해진다.

자전거로 나들이를 나서니 차를 타고 지날 때는 보이지 않던 소소한 것들이 속속 눈에 들어온다. 어디서든 멈출 수 있다는 점도 자전거 나들이의 미덕이다. 천변에 흔들리는 물억새를 좀 더 가까이서 감상하고 싶거나 농가 텃밭에 심어져 있는 맨드라미와 인사를 나누고 싶을 때마다 수시로 페달을 멈추고 자전거에서 내린다. 맨드라미 옆의 흰색 꽃망울은 뭘까? 가까이 다가가 보니 폭신한 목화 열매다.
 

장월평천 둑길 옆 밭에서 아주머니 두 명이 가을볕을 등지고 깨를 털고 있다.


반가운 고라니와 너구리 발자국

법곳3교와 법곳2교를 지나며 장월평은 큰 강의 하구와 맞닿은 물길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갈대와 같은 식물들이 군락을 이루고, 바닥은 윤기 나는 뻘을 드러낸다. 서해에서 한강으로 이어지는 조수를 따라 물이 들고 나는 영향을 받는가보다.

뻘 표면에는 동물들의 발자국이 어지럽다. 두 개로 갈라진 굽 발자국은 고라니의 것이고, 둥글게 모인 바닥에 발톱 자국이 있는 녀석은 너구리의 흔적이다. 자유분방한 활기가 느껴지는 야생동물의 발자국들이 ‘장항천의 진짜 주인은 바로 우리’라고 주장하는 듯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둑방길을 달리며 로드킬을 당한 뱀의 흔적을 종종 만났다. 날씨가 쌀쌀해지며 몸을 데우기 위해 따뜻한 아스팔트에 올라왔다가 사고를 당한다는 것이 한기식 사무국장의 설명이다. 인공이 건네는 안락함에는 야생의 균형을 교란하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가보다.
 

하천 하구가 가까워질수록 갈대와 부들이 무성해진다.
강바닥 뻘에 선명하게 찍힌 고라니와 너구리 발자국.

 

농촌과 도시 경관 지척에 공존

장월평천과 이별하고 자유로를 따라 이어진 평화누리 자전거길로 들어선다. 연천과 파주를 거쳐 온 평화누리길은 고양땅에서는 한강을 따라 행주산성까지 연결된다. 길게 뻗은 나무그늘을 즐기며 이산포IC까지 한달음에 달린다.

자전거길은 이산포IC에서 다시 대화천을 따라 이어진다. 사포교, 대화교를 차례로 지나는 대화천 하구 구간은 봄에 찾아야 제 맛이라고 한기식 사무국장이 귀띔한다. 천변을 따라 벚꽃과 개나리가 화사하게 피어나기 때문이란다.

건설기술연구원을 지나 출발지점인 고양종합운동장으로 복귀한다. 넉넉한 농촌 풍경과 쾌적한 도시 경관을 지척의 거리에서 누릴 수 있다는 게 새삼 고맙다. 밥맛이 으뜸이라는 송포쌀을 길러내는 들판을 달렸기 때문일까. 마음의 허기마저 든든히 채워진 듯하다.

■ 코스안내 : 한기식 자전거21 고양지부 사무국장
 

장월평천에서 만난 백로들.
대화천에서 헤엄치고 있는 청둥오리 한 쌍.
한강과 평행으로 흐르는 장월평천 하구.
자연부락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도촌마을.
자유로 하단을 따라 이어진 평화누리 자전거길.
나들이길을 안내해 준 자전거21고양지부 한기식 사무국장..
 

유경종 기자  duney789@naver.com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유경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