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500주년 맞아 가치 재조명

1559년 완간 비텐베르크 전집 12권
당대의 출판 정신과 기술 고스란히 담아

 


[고양신문]  정확히 500년 전인 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는 독일 비텐베르크 대학교 교회당 정문에 가톨릭 교회를 비판하는 ‘95개 조의 논제’라는 반박문을 내건다. 1000년 동안 지속된 중세를 깨뜨리는, 종교개혁의 도화선에 불을 붙인 것이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마르틴 루터의 생애와 사상에 대한 재조명 작업이 활발한 가운데, 1550년대 독일에서 발간된 마르틴 루터 전집 12권이 국내에 소장돼 있는 사실이 알려져 관심을 모으고 있다. 책이 소장돼 있는 장소는 파주출판도시에 자리한 열화당 책박물관. 직접 찾아가보니 두꺼운 백과사전 크기의 책 12권이 책박물관 안쪽 서가에 나란히 꽂혀 있었다. 중세를 무너뜨린 거인의 웅장한 숨결이 갈피마다 깃들어 있는 듯했다.

전집은 마르틴 루터가 1546년 사망한 후 1551년부터 1559년까지 8년에 걸쳐 만들어졌다. 그가 종교개혁 운동을 시작한 곳에서 인쇄한 첫 독일어 전집으로 ‘루터의 비텐베르크판’이라 불린다. 12권의 판형과 제책 방식은 동일하지만 크기에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당시 다섯 명의 출판업자들이 분량을 나누어 작업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책박물관 정혜경 학예사의 설명이다.
 

열화당 책박물관 서가에 꽂힌 마르틴 루터 독일어판 전집. 여러 명의 출판업자들이 나누어 만든 까닭에 책 크기가 조금씩 다르다.


책의 표지는 두툼한 가죽으로 튼튼하게 감싸져 있다. 제본을 한 측면은 네 개의 가죽 끈 자국이 선명하다. 가까이 들여다보니 표면에 아름다운 문양을 새겨 넣은 얇은 가죽을 덧입혔고, 표지 모서리에는 두 개의 자물쇠걸이 흔적도 남아있다.

제1권의 표지를 조심스레 펼치니, 책의 제목과 제작년도, 출판업자, 책을 낸 지역 등 책에 대한 정보가 아름다운 활자체로 인쇄된 내지 첫 장이 눈에 들어온다. 십자가를 중심으로 마르틴 루터와 루터를 보호해주었던 비텐베르크 지역의 제후 프리드리히의 모습이 양편에 그려져 있는 삽화는 루카스 크라나흐의 작품이다. 정혜경 학예사는 “책이 만들어지던 시절의 인쇄술과 제책 기술을 고스란히 살필 수 있는 자료로서의 가치가 무척 높은 책”이라고 설명했다.
 

안쪽 표지에는 책을 만든 연도, 출판업자, 출판도시 등의 정보가 꼼꼼히 기록돼 있다. 삽입된 그림은 루카스 크라나흐의 작품.


책이 국내에 들어온 것은 5년 전의 일이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참가를 비롯해 독일을 수시로 드나들며 고서적을 늘 관심 있게 살피던 열화당 이기웅 대표의 눈에 마르틴 루터 전집이 들어온 것. 책의 가치와 의미를 알아 본 이기웅 대표는 오랜 시간 노력을 기울여 책을 입수했다. 독일의 고서적 복원 전문가의 손길을 빌려 책장과 표지를 원형에 가깝도록 정교하게 복원하는데도 여러 달이 걸렸다.

책이 지니는 역사적 가치를 살피기 위해 주요 사건의 연대기를 살펴보자. 종교개혁이 일어난 해는 1517년, 그보다 앞서 1450년대에 구텐베르크에 의해 최초의 금속활자본 성서가 인쇄됐다. 금속활자의 보급 이후 100여 년 사이에 유럽에서는 가히 출판 혁명이라 할 만큼 인쇄 기술이 발달하고 출판시장이 폭발적으로 확대됐다.

루터 전집이 품고 있는 가치는 단순히 출판 사료적 차원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 자체로 종교개혁의 사회적 배경과 기술적 토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교황청을 중심으로 한 가톨릭 권력에 대한 비판과 도전은 마르틴 루터 이전에도 있었다. 대표적인 인물로 체코 프라하에서 가톨릭을 비판했다가 화형에 처해 진 얀 후스를 들 수 있다. 후스와 루터의 운명을 가른 차이점은 바로 인쇄술이다. 후스는 자신의 사상을 세상에 알릴 도구를 갖지 못한 반면, 마르틴 루터는 당대에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한 출판 인쇄술의 대중적 전파력을 통해 자신의 개혁적인 생각을 담은 인쇄물을 유럽 전역으로 퍼뜨릴 수 있었다. 12권에 이르는 전집은 마르틴 루터가 당대에 비약적으로 발전한 출판 인쇄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고스란히 증명한다.

마르틴 루터는 표준 독일어의 준거를 마련한 공로도 지대하다. 루터 이전에 교회에서는 라틴어로 쓰여진 ‘불가타 성서’만을 정전으로 삼고,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행위 자체를 금했다. 하지만 라틴어는 1%의 사제와 학자 계층만이 해독할 수 있는 소수의 언어였다. 당연히 대다수의 사람들은 성서의 해독과 해석의 영역에서 소외돼야 했다. 마르틴 루터는 성서를 ‘라틴어’라는 철옹성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는 생각에서 성서의 독일어 번역작업을 완수한다. 지역별로 서로 다른 어휘를 사용하던 독일어는 루터의 성서 번역에 힘입어 비로소 정제된 문화어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루터 연구의 권위자인 서울신학대학교 정병식 교수는 열화당에 소장된 비텐베르크 판본 이전에 1945년 라틴어로 만든 전집이 먼저 출간됐다고 말한다. 하지만 라틴어 전집 중 일부가 루터의 개혁사상을 왜곡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수정됐다는 비판이 일었다는 것. 이에 따라 루터의 글들을 온전히 보전하기 위한 필요에서 당대의 출판인들이 심혈을 기울여 발행한 책이 바로 비텐베르크 전집이라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의 루터 연구는 1880년대에 현대 독일어로 정리된 ‘바이마르 전집’을 표준으로 삼고 있는데, 열화당에서 보유한 전집은 이보다 320여 년이나 앞서 발행된 책이라 가치가 무척 높다”고 평했다.

이기웅 대표는 “루터 전집은 구텐베르크의 활자 발명과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이어지는 독일의 출판 역사, 나아가 인류 지성사의 정수를 담고 있는 기념비적 저작”이라고 말하며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종교계는 물론, 학계와 출판계에서 마르틴 루터 전집의 보다 진지하게 활용해 주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밝혔다.
 

본문 첫 글자를 커다랗게 장식하는 것은 유럽 고서적의 전형적인 양식 중 하나다.
두껍고 진한 활자체로 인쇄된 본문.
루터 전집과 함께 소장, 진열중인 독일 북부 고슬라르 시 관련 서적. 고슬라르는 루터의 개혁 운동을 지지했던 도시 중 하나다.
1837년 영국에서 제작된 작은 사이즈의 성서. 손바닥만한 크기에 신구약 66권의 성서가 다 들어있다.
열화당 책박물관에는 동서양 출판 역사를 보여주는 가치 있는 책들이 다양하게 소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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