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 별 기 고>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고양신문] 결과만 보도하는 언론 때문에 진실이 가려지고 있다. 10월 22일 치러진 일본의 중의원(하원에 해당) 총선거에서 진정한 승자는 아베가 아니라, ‘표심을 왜곡하는 선거제도’였다. 아베 총리가 속한 자민당 득표율은 33.28%에 불과했다. 연립파트너인 공명당 득표율 12.51%까지 합쳐도 득표율은 45.29%에 불과했다. 과반에도 못미치는 득표율이다. 그런데 자민당-공명당이 얻은 국회 의석은 465석 중에 313석으로, 전체 의석의 67.31%에 달했다.

반면에 야당인 입헌민주당, 희망의당, 일본공산당, 일본유신회는 득표율에 비해 훨씬 적은 의석을 얻었다. 표의 가치는 동등해야 한다는 ‘표의 등가성’이 완전히 깨진 것이다.

이런 결과가 나오는 이유는 바로 선거제도 때문이다. 일본은 지역구에서 1등을 하면 당선되는 승자독식의 방식으로 289명의 국회의원을 뽑는다. 그리고 비례대표 의원 176명만 정당득표율에 따라 각 정당에게 배분한다. 지역구 따로, 비례대표 따로 뽑아 병립형이라고 부른다.

이런 선거제도에서 선거 승패를 좌우하는 것은 지역구다. 지역구 선거에서는 30~40%대 득표율로도 1등을 할 수 있다. 이런 상태에서 비례대표 176석만을 정당득표율대로 배분한들 의미가 없다. ‘표의 등가성’은 이미 지역구에서 깨진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론들을 결과만 보도한다. 선거에서 절반도 안 되는 득표를 얻은 쪽을 ‘압승’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한가? 그렇지 않다.

이번 일본 중의원 총선에서 야당들이 얻은 정당지지율을 합치면 50%가 넘는다. 전체 의석을 정당지지율대로 배분하는 진짜 비례대표제였다면, 아베 ‘압승’이 아니라 정권교체가 이뤄졌어야 할지도 모른다. 결국 아베의 장기집권은 일본의 유권자들의 표심이 만든 것이 아니라, 표심을 왜곡하는 선거제도가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개헌보다 중요한 것이 선거제도다. 의원내각제를 택하고 있는 일본은 결코 권력분산적인 국가가 아니다. 아베 총리가 대통령 못지않은 권력을 행사하고 있고, 장기집권의 길로 가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이 아니라 ‘제왕적 총리’가 존재한다.

그러나 만약 일본이 독일, 뉴질랜드 등이 택하고 있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였다면 어땠을까? 지난 9월 23일 총선을 치른 뉴질랜드에서는 현직 총리가 속해있던 국민당이 44.45%의 득표를 얻었다. 아베 총리의 연립여당 득표율과 유사하지만 국민당은 집권연장에 실패했다.

뉴질랜드는 정당득표율에 따라 전체 국회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민심(표심)그대로 전체 국회의석을 배분하는 제도다.

그렇다면 일본과 뉴질랜드의 선거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 앞에 놓인 선택지는 결국 두 가지다.

하나는 지금의 선거제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대한민국도 일본처럼 ‘병립형’제도다. 게다가 비례대표 숫자가 겨우 47석밖에 안 된다. 이런 선거제도를 유지한다면, 대한민국도 일본처럼 기득권 장기집권의 길을 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또 다른 선택지는 뉴질랜드의 길을 가는 것이다. 마침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뉴질랜드와 유사한 선거제도 개혁방안을 제안하고 있고, 문재인 대통령도 공약했다. 국회에서도 일부 기득권 세력을 빼고는 ‘민심그대로 의석배분’이라는 선거제도 개혁방향에 동의하고 있다.

시간은 얼마 없다. 선거제도 개혁이 되느냐 아니냐는 11월, 12월에 결정 난다. 국회 정치개혁특위가 이 시기에 논의를 집중적으로 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권자인 시민들의 관심이 필요하다. 11월 11일 광화문 광장에서는 이런 시민들의 목소리를 모으는 ‘2017 민주주의 UP! 정치페스티벌’이 열린다. 정치 퇴행을 막고, 촛불시민혁명을 완수하고 싶은 시민들의 참여를 기다린다.
<이 글은 인터넷신문 ‘미디어스’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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