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의선 일산역 앞 건물 곳곳에 ‘이주완료’라고 쓰인 스티커가 붙어있다. 올해 초 뉴타운이 해제된 일산역 앞 1만8891㎡ 부지에 49층 초고층 아파트 건설계획이 승인되자 구도심 난개발로 부작용이 잇따를 것이라는 우려가 일고 있다. 또한 시행사가 과도하게 세입자들의 이주를 종용하고 있어 시행사와 세입자 간 충돌도 우려된다.


뉴타운 해제 뒤 민간시행사 들어와
구역 쪼개 초고층 아파트 사업신청
도시재생 대신 난개발 우려 목소리
‘철거대상·이주완료’ 스티커 곳곳에
강제로 쫓겨나는 세입자 대책없어


[고양신문] 일산지역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마을인 경의선 일산역 앞 이른바 ‘구일산’ 지역에 초고층아파트(48~49층 4개 동, 777세대)를 짓겠다는 주택건설사업계획 승인이 나면서 도시재생이 실종되고 난개발이 우려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곳은 10년 전 뉴타운(재정비촉진지구)으로 지정되면서 그동안 도시정비가 이뤄지지 않고 슬럼화된 곳이다. 그러다 올해 2월 뉴타운이 해제되고 얼마 뒤인 지난 6월 민간시행사(디에이치개발)가 사업계획승인을 고양시로부터 받아냈다.

일산역 인근 구도심의 민간개발을 주목해야 할 이유는 고양시의 뉴타운이 해제된 9개 구역 중 1000세대에 가까운 대규모 개발은 이곳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시행사가 이곳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을 경우 일산뉴타운 지구와 함께 고양시에 있는 또 다른 뉴타운 해제 지역인 원당과 능곡지구에 영향을 미쳐 고양시 곳곳에 난개발이 가속화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일고 있는 것.

해당 지역의 한 주민은 “동네가 개발되고 정비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구역을 쪼개서 좁은 땅에 초고층 아파트가 들어오기를 바랐던 것은 아니다. 인근 일산초등학교와 비슷한 규모의 작은 땅에 49층짜리 빌딩 4개를 짓는다는 것은 이쪽 동네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도 않는다. 또 초고층빌딩이 들어서면 도로나 기반시설에 대한 고민도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들이 고려된 도시개발인지도 의심스럽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구일산에는 이미 사업승인을 받은 시행사 외에 또 다른 시행사가 인근 2곳에서 주택건설사업계획 승인을 준비 중이다. 이 2곳은 현재 승인된 부지보다 작은 규모로 알려졌는데 사업이 승인되면 일산역 앞이 부분적으로 쪼개진 형태로 개발되면서 균형 있고 체계적인 도시개발이 어려워질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일부에서는 뉴타운이 해제된 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도시재생 뉴딜정책’이 진행될 수 있다는 희망도 있었는데, 고양시가 도시재생에 대한 고민 없이 사업계획승인을 너무 급하게 처리해준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실제로 고양시는 뉴타운 해제지역이 늘어나면서 도시재생 출구전략의 일환으로 ‘도시재생 전략계획 수립용역’을 올해 5월 시작해 내년 중순에 결과를 보고받을 예정이다. 이번 용역은 고양시 도시재생 전반에 걸쳐 로드맵을 짜기 위한 첫 번째 용역이자, 새 정부의 도시재생 공모사업에 선정되기 위한 밑작업에 해당된다.

이렇게 시가 한쪽에서는 도시재생에 대한 밑그림을 그릴 준비를 하면서, 다른 부서에서는 도시재생 후보지에 개별적으로 주택건설사업 승인을 내주고 있어 엇박자 행정을 보이고 있다.
고양시의 사업계획 승인 관련부서는 “난개발에 대한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시행사가 관련 서류를 구비해 제출했고, 해당 사업계획이 건축심의위원회를 통과했기 때문에 그에 따른 행정절차를 진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의선 일산역 앞. 재개발 시행사가 세입자들의 이주를 종용하면서 반발이 예상된다.

 
도시재생을 담당하는 관련부서는 “앞으로의 도시재생 사업은 과거의 재개발 사업처럼 부지 전체를 밀어버리고 빌딩을 짓는 개념이 아니라, 대부분의 건물과 시설을 존치시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노후주택을 매입해 수리한 후 다시 공급하거나, 거점시설을 지어 지역공동체를 활성화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별 사업을 통제하거나 제한할 수 있는 방법은 딱히 없지만, 이렇게 부분적으로 개발이 진행되면 지역 전체 도시재생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 것은 사실”이라고 답했다.

이 지역은 도시재생에 대한 문제도 지적되지만 시행사의 밀어붙이기식 사업진행으로 세입자들의 고통도 큰 것으로 알려졌다. 구일산에서 30년간 장사를 해왔다는 한 주민은 “10년간 도시정비가 이뤄지지 않아 가뜩이나 슬럼화된 곳인데, 시행사 측이 ‘이주완료’ 딱지를 건물 곳곳에 붙여놔 도시미관이 저해돼 우범지역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또 다른 주민은 “이주를 종용하거나 협박을 일삼고 있어 버티기 힘들다”면서 “이런식의 막개발 보다는 오랫동안 이곳에 거주했던 세입자까지 보듬을 수 있는 도시재생 사업이 진행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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