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소설가, 한양문고에서 독자들과 만나

지난 29일 한양문고에서 열린 '지역 작가와 동네 서점의 만남'에서 이야기 중인 김연수 작가.


[고양신문] 동네 서점이 어렵다. 대형 쇼핑센터로 사람들이 몰리는 대신 서점이라는 공간은 점점 소외 받고 있다. 사람들이 책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서점은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지난 29일 한양문고 주엽점에서 ‘발견경기동네서점전’ 행사의 일환으로 한국문단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고양시에 거주하는 이웃인 김연수 작가와의 만남이 이뤄졌다. 독자들 앞에 잘 나서지 않는 그가 모습을 보인 건 지역서점 살리기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행사여서 가능한 일이었을 터.

김연수 작가는 1993년 작가세계 여름호에 ‘강화에 대하여’라는 시를 발표하고, 94년 장편소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로 제3회 작가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아름답고 섬세한 문장으로 담고 있어 두터운 독자층을 갖고 있다. 이후 젊은 나이에 동서문학상, 동인문학상, 대산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등 각종 문학상을 휩쓸며 문단의 대표 작가로 자리잡았다. 대표작으로는 『굳빠이, 이상』, 『밤은 노래한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 『청춘의 문장들』,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사월의 미, 칠월의 솔』 등이 있다.

김 작가를 만난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기자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수줍음을 잘 타는 미소년 같은 이미지는 여전했다. 이날 행사는 김 작가가 독자들의 질문에 답을 하는 형식으로 편안하게 진행됐다. 행사 중반에는 그가 최근 발표한 초단편 소설 ‘보일러’ 전편을 직접 낭송했다. 이날 참가자들과 오간 질의응답 내용을 정리했다.
 

초단편 '보일러' 전편을 낭독 중인 김연수 작가와 경청 중인 독자들.


김 작가에게 글쓰기와 일산의 관계는.

글을 쓰는 공간이 호수공원 바로 옆에 있다. 글을 쓰다가 막히면 밖으로 나간다. 횡단보도를 두 개를 건너면 호수공원이다. 정자까지 갔다 돌아온다.

일산에 산 지 20년이 넘었다. 경북 김천에서 태어났는데, 중산마을에 집을 구할 때만 해도 사실 이렇게 오래 살줄 몰랐다. 처음 이사 올 때는 아파트 중심으로 주변에 아무것도 없었다. 베드타운으로 이야기가 없는 도시라는 느낌이 들었다. 개발이 되면서 마을의 옛날 지명처럼 많은 것들과 함께 이야기들도 사라지고 있어 소설을 쓰기 어려운 불행한 도시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후 파주 출판단지가 생겼고 일산에도 여러 작가들이 살고 있어 많은 추억이 생겼다. 이제는 일산에 대한 소설을 쓸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고등학교 2학년인 딸은 일산에서 태어났는데 그 나이대 아이들에게는 일산이 이야기가 있는 공간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한양문고와 서점에 대한 생각은 어떤지.

지금은 백석동으로 이사를 갔지만 정발산동 건영빌라에 살 때 마일리지 때문에 주말마다 한양문고에 자주 왔다(웃음). 동네에 서점이 있다는 건 굉장이 큰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토요일마다 서점 돌아다니는 게 큰 낙이다. 저녁을 먹고 나서 한두 시간씩 머물 수 있는 동네 서점이 나에게는 매우 중요한 공간이다. 지금은 백석동에 살고 있어 교보문고에도 가는데 그렇게 큰 서점에도 요즘은 사람이 너무 없다. 간신히 유지하고 있다.

현재 출판 산업에 종사하는 작가들이나 편집자들은 서점이 ‘지는 산업’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점이 과연 없어져버릴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조금 미지수다. 다른 방식으로 또 다른 길이 나올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 방식이 무엇인가에 대해 다양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오늘처럼 이런 자리를 마련해 대화를 나누는 방식도 서점과 출판사 고민의 결과물이다. 이렇게 지혜를 모으면 내 딸이나 그 이후 세대에게도 물려주고 싶은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한양문고 주엽점에서 독자와 만난 김연수 작가


소설가라는 직업인으로서 삶을 스스로 중간평가를 한다면.

93년에 시로 먼저 등단했고, 처음 소설을 쓴 것은 94년부터다. 처음 등단 후 10년 정도는 직업으로 소설을 쓴다는 것에 대해 이해를 잘 못했다. 전업작가 생활을 하기 전 ‘출판저널’이라는 월간지 기자로 일했다. 그러면서 직업이라는 것이 혹독하다는 걸 알게 됐다.

직업인으로서 글을 써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열심히 썼다. 당시 1만 부가량 팔릴 정도로 반응도 좋았다. 그런데 직업으로서는 돈이 너무 안 됐다. 1년 동안 글을 써서 1000만원 받아서는 살기 힘들다. 소설을 써서 생계를 유지한다는 게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게 됐다. 5년 정도 다른 일들을 하면서 써야 했다. 소설가가 되기 위해서 먼저 돈을 벌고 시간이 남으면 소설을 썼다. 보통은 그 반대로 해야 되는데 말이다.

어떻게 썼는지 기억이 안날 정도로 닥치는 대로 썼다. 마감이 있으면 마감은 반드시 해야 되는 것이어서 마감을 하면서 지나왔다. 새내기 소설가로 잡지사에 다니고 있을 때, 박완서 선생의 말씀을 감명 깊게 들었던 기억이 있다. 어느 자리에선가 “선생님, 이제는 눈감고도 소설을 쓰시겠네요”라는 말을 했다가 혼났다. 박 작가님께서는 “그렇지 않다. 소설은 매번 힘들다”고 말씀하셨다. 지난 24년 동안 그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이었고, 매번 마감을 하느냐, 펑크를 내느냐를 고민하고 있다.

현실 속에서 영감을 얻는 편인가.

영감은 많이 받는다. 메모광이어서 무조건 메모한다. 그중 몇몇은 소설을 쓰게 만들어 준다. 그것이 소설을 쓸 때 영향은 줄 수 있지만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 애초 생각대로 잘 안 된다. 멋진 아이디어나 재미있는 이야기가 좋은 소설이 되지는 않는다. 영감은 첫 번째 파일에서 중요한 요소이긴 하지만 자꾸 고치다 보면 처음 보관했던 파일과 최종 출판돼서 보여주는 파일은 정말 다르다. 문자를 고치고, 그 과정에서 작가의 상상력이 나온다. 농부가 밭에 가서 농작물을 캐서 수확을 하듯이 작가의 상상력은 앉아서 문장을 가지고 계속 만져야 결실이 나온다. 얼마나 문장을 많이 쓰느냐에 달렸다.

애초에 작가가 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고교시절에도 문과보다 이과 체질이고 말보다는 숫자가 더 확실하다고 믿었다. 89년 영문학과에 입학했을 때도 천문학과에 떨어져서 가게 된 것이고 적응이 잘 안됐다. 수업에도 잘 안 들어가고 도서관에서 책을 많이 읽었더니 뭔가를 쓰고 싶어졌다. 평론, 소설, 희곡, 시 등 많은 걸 쉬지 않고 썼다. 쓰고 고치는 과정이 좋았다. 시를 아주 많이 썼고 결국 시로 등단했다.

이후 10년 동안은 작가를 할 수 있는가, 작가가 될 수 있는 사람인가를 생각하는 힘든 고민의 연속이었다.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 소설 쓰기가 무엇인지를 조금 알게 됐고, 그 뒤부터 소설을 썼다.

어떻게 쓰면 등단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하는데 매일 쓰면 결과적으로 자기 작품 중 최고의 작품, 걸작이 나온다. 애초에 제가 등단을 하겠다는 목표도 없었고 그냥 쓰는 게 좋아서 계속 썼다. 그 결과물로 시를 날마다 10편씩 썼다. 그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한 편을 골라 노트에 정서해 놓았다. 3개월 동안 시를 썼다가 한 편씩 골라서 모아 놓기를 반복했다. 이 과정을 2년 정도 반복하니까 시가 많이 모였고 시가 점점 좋아졌다. 몇백 편에 달하는 시 중에서 좋은 순서대로 배치를 하면 그 중에 제일 좋은 작품이 있다. 그걸 출품했고 그것으로 등단하게 됐다. 매일 쓰면 그 순간이 온다.
 

한양문고 주엽점에서 소설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마친 후 참가자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는 김연수 작가


문학적 스승을 이상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가장 영향을 미친 작가는.

이상이 저한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어렸을 때는 수학 같은 문제를 풀 수 있는 이과가 좋았다. 문과는 약간 모호하고 해석되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했고, 언어의 세계는 답이 아닌 것을 강요하는 것 같아 좋아하지 않았다.

이상의 작품을 봤는데 해석이 전혀 안 되는 느낌이었다. 그 이유로 이상의 작품을 명작이라는 사람도 있고 쓰레기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공부를 해봤더니 답이 없었다. 제가 왼쪽으로 결정하면 오른쪽이었다. 처음으로 해석이 안 되는 문장이었고 해석이 안 되는 문장은 불안을 견뎌보라고 말하는 듯했다. 나는 해석이 될 때까지 읽어 보겠다 생각했다. 이상을 천재다, 혹은 미친놈이다, 라고 판단하는 것은 비윤리적이다.

그렇다면 소설을 왜 쓸까, 왜 소설을 읽어야 하나? 자기 스스로를 계발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살아가면서 이해 못하는 일이 계속 생긴다. 판단과 결정을 계속 내려야 한다. 삶이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어려운 소설을 읽을 때마다 삶에 대해 생각한다. 그런 것을 이상이 처음 가르쳐줬다. 이상을 안 이후로는 어떤 문장도 즐겁게 쓸 수 있었다. 초기에 쓴 소설들은 이상의 영향을 받아서 조금 모호하다.(웃음)

검은색 가죽 점퍼에 라이더 복장을 하고 왔다. 호수공원 산책 말고 다른 취미 생활은.

오늘 스쿠터를 타고 왔다. 취미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지속적으로 못하고 있다. 기타도 치고, 그림도 그리고, 달리기도 했다. 지속적으로 하는 취미는 음악을 듣는 것이다. 좋아하는 음악 장르는 요즘 나오는 시끄러운 곡들 빼고 예전에 많이 듣던 음악을 듣는다.

김영하 작가가 ‘알쓸신잡'이라는 케이블 TV에 나오면서 많이 뜨고 있다. 혹시 TV에서 출연요청이 오면 응할 생각인가.

지금으로서는 출연 안할 것이다. 소설가는 소설만 쓰는 게 제일 좋다. 서점은 책만 파는 게 좋고 출판사는 출판만 하는 게 제일 좋다. 현재는 여러 가지 일들을 하고 있는데, 그 점이 아쉽다. 독자는 가까운 서점에 산책하듯이 가끔 와서 책을 읽고 돌아다녀도 좋다. 책을 안 읽고 표지만 봐도 도움이 된다. 여러분도 서점에 자주 나오시길 바란다. 독자가 된다는 것은 인생에서 특별한 경험인 것 같다. 참 좋더라.
 

강연 후 기념촬영 중인 김연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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