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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럼비는 우리 마음에 살아 있어”신간소개 - 강정평화마음동화 『너랑 나랑 평화랑』
  • 유경종 기자
  • 승인 2017.11.02 19:32
  • 호수 1344
  • 댓글 1

시인·환경운동가 조정 작가가 쓴 동화
열일곱 편 이야기 속에 평화 염원 담아

 

강정평화마음동화 『너랑 나랑 평화랑』 (조정 글, 김호민 그림 / 장수하늘소)


[고양신문] 상규는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에 살고 있는 아이다. 친구들과 멱을 감으며 할망(할머니)이 쪄 준 감자 먹는 걸 좋아하는 상규는 바다가 있고 맑은 시내가 있는 마을이 참 좋다. 하지만 마을에서 가장 멋진 구럼비 바위가 몇 해 전 부서져 버렸다. 마을 앞 바다에 제주해군기지가 들어오면서부터다. 해군기지가 부순 건 바위뿐이 아니다. 평화롭고 인정 많던 마을 사람들의 마음도 바위처럼 조각조각 깨지고 금이 갔다. 나라에서는 평화를 지키기 위해 해군기지를 만들어야 한다는데, 상규는 도대체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맑고 시원한 강정천도, 바닷속 산호도, 결국에는 정다웠던 마을 사람들도 다 내쫓는 게 어떻게 평화란 말이지?

장수하늘소가 펴낸 『너랑 나랑 평화랑』(조정 글, 김호민 그림)은 ‘강정평화마음동화’라는 머릿제목을 달고 있다. 책에는 해군기지가 들어서고 있는 제주 강정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열일곱 편의 이야기로 실렸다. 주인공은 상규지만, 한 편 한 편 동화가 전개되며 강정마을을 구성하는 다양한 주체들이 이야기 속으로 합류한다. 상규의 가족들이 등장하고, 친구들이 얼굴을 내밀고, 마을의 이웃들이 말을 걸어온다. 상규를 둘러 싼 관계망이 커지고 촘촘해지는 과정은 그 자체로 한 명의 아이가 세상에 눈을 뜨는 과정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개입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주인공 상규는 강정마을의 생명과 자연에 마음의 귀를 기울이며 하루하루 성장한다. <이미지제공=장수하늘소>


상규의 세계에 들어오는 이들은 사람만이 아니다. 붉은발말똥게, 물땡땡이, 참나무와 같은 동물과 식물은 물론, 바닷가의 너른 바위, 마을을 통과해 흐르는 시냇물과 같은 특정 장소나 자연물도 각각의 정령을 품은 유일무이한 존재로 상규의 마음에 새겨진다.

관계망의 확대는 공간 뿐 아니라 시간의 경계도 뛰어넘는다. 상규와 같은 시간대를 살아가는 이들 뿐 아니라, 아픈 역사를 겪는 과정에서 돌아가신 이전 세대의 어르신들 역시 이야기 속에서 생동감을 획득하고, 설문대할망을 비롯해 제주 사람들의 심성 속에 면면히 전해오는 전설과 풍습도 상규의 세상을 더욱 풍요롭게 해 준다.

하지만 아름다운 이야기의 이면에는 슬프고 답답한 현실이 갈피마다 똬리를 틀고 있다. 마을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는 두 가게가 미군기지 찬성과 반대측으로 갈려 아이스크림 하나 사 먹으로 갈 때도 눈치가 보이고, 어릴적부터 어울리던 고향 친구들과 수년째 대면도 안 하는 장면들은 무책임한 국가폭력의 부작용으로 평화로운 마을 공동체가 산산이 찢어져버린 가슴 아픈 현실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희망의 근거는 사람일 수밖에 없다. 강정마을의 아픔에 동참하기 위해 응원을 보내고, 마을을 찾아오고, 아예 마을에 눌러 살며 연대의 길을 함께 가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책은 강정 토박이들과 외지인들이 함께 어우러져 ‘평화’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아름답게 그려낸다. 30여 년의 세월이 흐른 후, 평화를 염원하는 이들의 마음이 감동적으로 모아지는 상상을 담은 책의 마지막장은 이 땅의 모든 ‘강정’을 겪어내는 이들에게 보내는 작가의 따뜻한 격려다.

책을 쓴 조정 작가는 한국인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후 『이발소 그림처럼』 등의 시집을 상재한 시인이다. 동시에 환경과 평화를 지키는 일에 발 벗고 나서는 운동가이기도 하다. 2011년 한겨울에 서울에서 강정까지의 ‘강정, 생명 평화의 순계길’을 이끌기도 했고, 소설가, 사진작가 등 43명의 예술가들과 함께 산문진 『그대, 강정』을 펴 내기도 했다. 고양에 거주하고 있는 작가는 지역에 대한 애착도 남다르다. 고양시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조정 시인은 몇 해 전부터 골프장 개발 위협으로부터 산황산을 지키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간결하면서도 함축적인 문장은 지은이가 언어 선택 전문가인 시인이라는 사실을 새삼 실감케 한다. 강생이(강아지), 냇깍(냇물의 끄트머리), 비바리(처녀) 등 맛깔진 제주 방언을 적절히 섞은 등장인물들의 입말도 재미나다.

각 편의 동화에는 김호민 그림작가가 그린 삽화가 한 두 컷씩 삽입됐다. 동양화풍 먹선과 수채화의 투명한 번짐이 조화를 이룬 개성 넘치는 그림들은 독자들의 상상력을 이야기가 펼쳐지는 제주 강정마을로 안내한다.

초등학생부터 읽을 수 있는 동화지만 어른들이 아이들과 함께 천천히 읽으며 이야기의 장을 펼쳐 봐도 좋겠다. 상규를 비롯한 꼬마들이 친절하고 멋진 어른들을 덕분에 마음의 키가 한 뼘씩 자라지 않던가.
 

바다와 뭇 생명들과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았던 강정 앞바다의 아름다운 풍경. <이미지제공=장수하늘소>
 

유경종 기자  duney78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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