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윤의 하류인문학>

김경윤 인문학 작가

[고양신문] 오래전 동양인들은 세상만물의 변화를 음양오행으로 설명하는 상징적 기호시스템을 개발했다. 1년을 사계절로 나누고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나무, 불, 금, 물로 설명했다. 그러한 계절의 중간에 흙을 배치했다. 봄의 상징인 나무는 봄의 성격을 닮아있다.

모든 만물이 싹을 틔우고 쑥쑥 자라난다. 마치 나무처럼. 여름은 모든 생명이 만개하는 계절이다. 불을 닮았다. 가장 열정적이고 핫한 계절. 가을은 모든 기운을 모아 단단해지는 금과 흡사하다. 알곡이 속을 채우고, 나무는 열매로 에너지를 모은다. 결실의 계절이다. 겨울은 모든 것을 저장하는 물이다. 다시 봄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기운을 재충전해야 하는 겨울이 반드시 필요하다.

어디 계절뿐이랴. 하루도 마찬가지. 아침에는 기운을 차리고, 낮에는 왕성하게 활동하고, 저녁에는 일을 마무리 짓고, 밤에는 잠을 자서 다시 에너지를 축적한다. 인생도 마찬가지. 태어나 청소년에 이르는 시기는 나무와 같다. 급성장기다.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 청년부터 중년기는 왕성하게 활동하는 불과 같다. 혁명의 기운도 바로 이 청년기의 특징이다. 중년에서 장년은 삶의 결실을 이끌어내야 한다. 성숙기라고 할까? 장년이 지나 노년에 이르면 황혼기가 다가온다. 삶을 정리하고 다음 세대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물려줘야 한다. 그렇게 인간의 역사는 삶과 죽음의 연속으로 구성되어 있다. 목화금수(木火金水)의 상징적 기호가 다방면의 영역에 유용하게 적용된다.

만추(晩秋)의 계절이다. 에너지를 최대한 열매에 집중시키고, 무성한 잎들이 색을 바꾸고 떨어지는 시기. 맺고 버리는 것을 배워야 하는 계절이다. 겨울이 되기 전에 수분을 모두 땅으로 버려야 한다. 버려야 얼어 죽지 않는다. 모든 것을 떨어뜨리고 앙상하게 벌거벗은 가을은 혹독한 겨울을 버티기 위한 나무의 지혜다. 모든 욕망을 버린 수도자를 닮았다. 왕성한 활동의 시기를 지나 깊은 명상의 시기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용어를 빌려 표현해보자면, 활동의 삶(vita activa)에서 사색의 삶(vita contemplativa)으로 바뀌는 계절이다. 활동은 좋은 삶을 만들어내고, 사색은 최상의 삶을 이끈다. 노자는 지식은 쌓아 가지만, 지혜는 덜어가는 것이라 했다. 그렇다면 가을은 지혜에 어울리는 계절이다.

겨울이 다가온다. 사색과 지혜로 혹독한 겨울을 대비해야 한다. 결실의 보람에 현혹되어 버림의 시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 자신의 유산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준비를 하자. 현실에 대비해보면 어떨까?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기성세대들이 자라나는 다음 세대에게 어떻게 하면 좋은 세상을 물려줄 것인가 숙고해야 한다. 청소년들이 일률적인 입시제도에서 허덕이고, 청년들이 헬조선이라고 좌절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환하게 웃으며 마음 놓고 살고 싶은 세상을 물려줘야 한다.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대한민국이 다음 세대에게 디딤돌이 되어야지 걸림돌이 돼서는 안 된다. 그래서다. 핵발전소와 핵무기의 확산은 미래 세대에게 불행을 안겨다줄 뿐이다. 지금 편하자고 다음 세대에게 막대한 위험요소를 물려줘서는 안 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남한은 핵발전소의 강국이 되었고, 북한은 핵무기의 강국이 되었다. 지구상의 많은 나라가 핵 없는 세상을 설계하여 이를 추진하고 있는데, 유독 남북한은 모두 그 역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것은 다음 세대에게는 재앙을 안겨주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남한은 핵발전을 포기하고,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포기해야 하는 이유이다. 이 가을 낙엽을 떨구는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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