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류기욱 한국진로교육연구소장

진단과 적성 기반 진로교육 25년  
인공지능 시대엔 창의성이 중요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것 찾고
분석·소통·공감·협력 역량 키워야 

 

이제는 나 혼자 잘났다고 해서 잘살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미래사회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역량은 분석하고 소통하고 연대하고 협력하는 능력이다. 사람뿐 아니라 인공지능과도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정말 좋아하고 이 세상에서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찾게 해주고 싶었어요. 그런 일을 하면서 가치와 보람을 느끼며 살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 진정한 교육의 본질이고, 또 그런 과정을 통해 많은 아이들이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 자신도 가치와 보람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은퇴한 친구들과 낚시나 등산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오히려 더 자연스러운 나이인데 왜 그렇게 열정적으로 일을 하시냐는 질문에 류기욱 소장은 사뭇 진지하게 답했다.

그의 하루 일과 대부분은 늘 교육현장에서 아이들 또는 학부모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아이와 어머니 그리고 되도록이면 아버지까지 한자리에 앉혀놓고 진단 결과를 펼쳐놓고 간과했던 아이의 현재 모습과 심리상태를 설명한다. 자녀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하며 변화의 시간을 충분히 주기만 한다면 우리 아이들이 가진 무한한 잠재력과 가능성의 문이 열릴 수 있다고 설득하고 대화의 끈을 이어간다.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말처럼 류 소장은 아이들 각자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그에 맞추어 진로를 설계하고 공부를 한다면 아이도 부모도 모두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 믿음이 25년간 교육현장을 떠나지 않고 아이들 곁을 지킬 수 있게 해준 힘이었다. 

인·적성 검사 해석 제각각 
교육학을 전공한 그가 국내 진단·적성·진로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로 변신할 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는 노력 덕분이었다. 국내 최초의 검사기관에서 일을 하면서 사람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인성·지능·진로·임상 분야에 대한 공부를 쉬지 않고 이어나갔다. 미래교육을 지향하며 해당 분야의 연구 활동이 왕성한 학계 교수들과 심리검사 제작 과정에 참여해 수많은 현장의 사례를 적용하며 검사의 현실화와 재표준화 작업을 함께했다.  
 
“90년대 초반 문민정부 이후 학교 현장에 학생의 인성과 적성에 대한 검사들이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검사 결과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크더군요. 교육심리 쪽에서는 교육학적 접근을, 상담심리에서는 학생들의 정서문제를 위주로, 임상심리에서는 치료를 중심으로 한 접근을 많이 했습니다. 검사에서 중요한 것은 평가와 해석인데 현장에 있는 사람 입장에서 봤을 때 임상심리학적 접근과 해석이 가장 설득력 있고 공감이 가더군요.”

 

부모의 생각이 바뀌고 아이들이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습관을 바꾸고 학습전략을 수정하면 아이들도 누구나 탁월하게 변할 수 있는 잠재력과 가능성이 있는 존재다.

 

통합적 이해와 방향 설정이 중요 
한 사람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심리학과 생물학, 사회학을 비롯해 영적인 부분까지 통합적 이해가 필요함을 절감하고 개인적으로 임상심리 전문가인 박병관 박사를 찾아가 4년 동안 공부했다. 학생의 현재 모습을 알고 향후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인성·지능·진로·임상 검사를 통해 통합적 분석과 방향제시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류 소장은 한국 교육현장에서 심리·적성검사에 따른 평가와 상담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이유를 학문 간의 장벽, 검사 업체의 난립 그리고 현장에서 학생들에게 적용하기 위한 체계적인 노력이 부족한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된 검사와 진단 그리고 분석에 근거한 발굴 훈련은 전무하다시피 했다.  

“인간에 대한 통합적 이해는 생물학적이고 심리학적인 분석은 물론 신경학적·사회학적 특징을 입체적으로 고려해, 정보를 분석하고 교육현장에서 적용되어야 한다고 봐요. 지능은 높은데 공부를 못하는 아이는 정서와 태도의 문제가 원인일 가능성이 커요. 부모의 유전적 요인 뿐 아니라 아이를 대하는 태도와 가치관이 아이의 행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데 학부모들은 아이에게만 문제가 있다고만 생각하곤 하죠.” 

배울 수 있는 그릇으로 만들어야
아이들의 적성과 진로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개개인의 학습차, 가정환경, 태도, 성격, 습관, 두드러진 성역할의 표현, 교우관계 등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하고 분석해 설명을 하면 학부모들도 아이들을 더 잘 이해하고 공감했다.

부모의 생각이 바뀌고 아이들이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습관을 바꾸고 학습전략을 수정했더니 탁월하게 변하는 아이들을 수없이 지켜보며 아이들은 누구나 잠재력과 가능성이 있는 존재임도 알게 됐다. 그러나 아직도 대부분의 학교교육 현장에서는 각 개인의 특성과 잠재력을 무시한 채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 위주로 학교행정이 펼쳐지면서 가능성 있는 아이들을 차분히 기다려주지 않고 원천적으로 기회를 차단해버리는 것을 보면서 너무나 안타까웠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인간이 결코 인공지능보다 뛰어날 수는 없습니다. 인공지능이 갖지 못한 생각하는 힘과 창의력을 키워야 합니다. 또한 문제에 대한 추론과 유추 능력을 키워 응용하고 융합할 수 있는 사고력도 중요하죠. 이제 아이들 사고의 폭을 확장시키며 ‘배울 수 있는 그릇’으로 만드는 것이 교육의 목표가 돼야 해요. 한국에서 산만하고 공부 못하던 아이가 미국에서는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하고 탁월한 아티스트라고 존중받는 비극적인 일이 더 이상은 없어야죠.” 

류기욱 한국진로교육연구소장은 아이들에게 "천천히 가도 괜찮아 길만 제대로 알고 있다면"이라고 이야기해주면서 자신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키울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소통하고 협력하는 능력 갖춰야
최근 서울대 유기윤 교수팀은 2090년 미래 사회는 크게 4계급으로 나뉘게 될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페이스북·구글같은 플랫폼과 최첨단 기술을 소유한 기업이 최상위 0.001%를 차지하고, 소셜미디어 등에서 큰 영향력을 가진 정치인·연예인 같은 스타가 0.002%가 두 번째 계급을, 그 다음은 사회 전반의 일자리를 대체할 AI가 3계급, 그리고 대다수의 일반 사람들, 즉 99.997%는 단순 노동자 계급으로 전락한다는 암울한 내용이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인류가 지혜를 모아가겠지만 그런 예측에 상당부분 동의할 수밖에 없네요. 기술혁명에 따른 거대한 사회변화의 흐름은 막을 수 없습니다. 이제는 나 혼자 잘났다고 해서 잘살 수 있는 시대가 아닙니다. 미래사회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역량은 분석하고 소통하고 연대하고 협력하는 능력입니다. 사람뿐 아니라 인공지능과도 협력할 수 있어야 합니다.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방향입니다. 우리 어른들이 지금부터라도 아이들에게 ‘천천히 가도 괜찮아 길만 제대로 알고 있다면’이라고 이야기해주면서 자신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키울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누구나 충분히 ‘배울 수 있는 그릇’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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