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연령 77세 다섯 어르신이 제작한, ‘영상으로 쓰는 생애 이야기’

[고양신문] (사)DMZ국제다큐영화제(조직위원장 남경필, 집행위원장 조재현, 사무국장 서용우)가 주최하고 경기도와 고양시·파주시·고양영상미디어센터가 후원한 ‘영상으로 쓰는 생애이야기’는 시니어의 삶을 회고해 이를 다큐멘터리 영상으로 제작하는 경험의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진행됐다. 

올해 처음으로 진행한 기획으로 고양시·파주시 지역의 65세 이상 어르신을 대상으로 참가자 모집을 통해 최종 선발된 총 5분의 어르신은 지난 6월부터 11월까지 5개월간 다큐멘터리 제작 워크숍에 참여했는데 이들의 5편의 수료작 상영회가 22일 19시 메가박스 백석에서 열려 이목이 쏠렸다.

서용우 사무국장은 “영상으로 쓰는 생애 이야기’는 ‘자기 기록과 역사쓰기’다. 자신의 삶을 시대적 맥락 안에서 바라보고 이를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드는 프로젝트다”며 “평균적으로 연령이 77세인 어르신 중 최고령자인 조용서 씨는 자신의 삶을 관조할 수 있었던 이번 기회를 통해 ‘여생이 얼마의 시간이 남았는지 모르지만 지금까지의 삶에 감사함으로 베풀면서 살고 싶다’ 말해 마음이 짠했다”면서 상영회의 감동을 전했다. 상영된 작품은 ‘모래 위에 지은 집(조용서)’, ‘마음속에 지은 집(장재용)’, ‘오뚝이 마음(한상연)’, ‘낡은 일기장 속 내 인생(조명녀)’, ‘좋은 것을 깨는 여자(김영)’다. 이들 다섯 작품 속에는 일제강점기와 군사 독재정부, 7·80년대 압축 경제성장, 유교 사회 속 여성차별 등 한국 현대사가의 주요 시대적 사건들과 개인의 삶이 씨줄과 날줄처럼 엮이면서 한 개인이 감내해야만 했던 고단한 생존투쟁이 처절하게 녹아있다. 

올해 90세인 조용서씨는 평양에서 태어나 일본강점기와 북쪽의 공산치하를 겪고 1.4 후퇴 때 월남을 했다. 사업 실패 후 40세 후반에 맞은 70년대 중동 붐으로 사우디아라비아로 건너가 무슬림이 됐고 세례명도 받았다. 무하마드 오스만. 그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기 위해 카메라를 들었다고 고백한다.

'마음속에 지은 집(장재용)'의 6.25전쟁 당시 자료화면의 스틸 컷

장재용(76, 남)씨는 부농의 자식으로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해방과 6.25를 겪으면서 부모와 형과 누이를 잃었다. 3.15 부정선거 때 모인 시위대의 인파 속에도 있었다. 그의 옆 여학생이 공권력의 총탄에 맞아 가슴에 선홍빛 선혈을 흘리며 눈앞에서 숨졌다. 그리고 살기 위해 달렸다. 전역 후 사업에 실패했지만 부동산 투자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아내 덕에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었던 그는 아내에게 이 영화를 바친다는 에필로그를 남긴다.

'마음속에 지은 집(장재용)'에 등장하는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며 거리로 나온 여성과 아이들 자료화면의 스틸 컷
'마음속에 지은 집(장재용)'에 등장하는 3.15 부정선거에 항거한 시민들을 향해 겨눈 진압군의 총구 스틸 컷

한상연(66, 여)씨는 한국 여성의 회한을 많이 담아냈다. 결혼 후 엄혹한 시집살이를 했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남편과 집을 나와 거처 없이 떠돌 던 중 주식에 눈을 떴다. 혼자 벌어 자식들을 사립학교에 보냈고, 석·박사과정까지 가르쳤다. 성공한 아내, 성공한 어머니임에도 공허한 마음이 시집살이에 대한 트라우마였음을 발견한 이후 ‘남은 인생은 나를 사랑하면서 살기로’ 결심하며 6.25 전쟁으로 월남하여 지주의 딸로 태어난 누렸던 부유한 시절을 뒤로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다섯 아들을 키워낸 시어머니의 삶을 이해하며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무리 한다. 

'오뚝이 마음(한상연)'의  시어머니가 운영하던 미군부대 앞의 세탁소와 양장점의 자료화면 스틸컷

조명녀(78, 여)씨는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태어났다. 일제 강점기 시절 징병을 피해 바다 건너 중국으로 가족과 이주했다. 척박한 땅, 중국에서 농사를 지으며 해방을 기다렸던 가족은 매일 밤 찾아오는 마적단에 숨죽이며 지내야 했다. 해방을 맞아 삯바느질하다 미용사 자격증을 땄다. 작가가 되고 싶은 꿈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결혼 후 아이가 생기지 않아 집을 떠나 자식 딸린 남자와 재혼을 하며 힘든 시절을 보냈다. 첫 남편과 25년 만에 해후했지만 다시 헤어지는 한 남자와의 두 번의 이혼이라는 굴곡진 삶을 기록했다. 

김영(76, 여)씨는 목회자다. 사대부 유교 양반집에서 태어나 당시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삶이었다. 남편은 보스턴 한인교회의 목사였다. 이후 남편의 귀국과 함께 김영씨는 미연합감리교회로부터 모국 선교사로 파송됐지만 한국의 보수교단은 여성들에게 목사안수를 거부했다. 이때 그는 가부장적 문화 속에 억압된 여성의 삶으로 눈을 돌린다. 1989년, 그녀는 여성교회의 창립 목사가 됐다. 그리고 ‘구로공단 여성 노동자’와 ‘동두천 기지촌 여성’들을 찾아 스토리텔링과 무용의 독특한 목회방법으로 그녀들의 마음속 응어리를 치유하는 과정을 그려냈다.  

이날 특별상영회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전석 매진이었다. 화성시에서 상영회를 찾았다는 한 관객은 “개인의 삶이, 특히 삶의 황혼기를 맞은 어르신들이 자신의 긴 삶의 여정을 어떻게 다큐멘터리로 기록되는지 그리고 그 결과물이 한 개인에게 어떠한 가치를 지닐 수 있게 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이날 상영회는 모든 좌석이 무료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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