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민복 시인, 고양의 독자들과 만남

한양문고에서 ‘시, 소통의 길’ 주제로
문학과 삶의 진솔한 이야기 들려줘

 

지난 17일 한양문고 주엽점에서 독자들과 만나고 있는 함민복 시인.

 

[고양신문] 시인이 진심을 담아 자연스럽게 쓴 시가 좋은 시라고 한다면, 함민복 시인의 시가 그렇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소소한 대상들을 따듯하고 진솔하고 겸손한 언어로 노래한다. 시집 『말랑말랑한 힘』과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이 특히 그렇다.

‘강화도 시인’이라 불리는 함민복 시인이 17일 한양문고 주엽점에서 독자들과 만났다. 이 행사는 한국출판문화진흥원 후원으로 마련됐다. 함 시인은 ‘서울에서 전전하다’ 1996년 강화도에 정착해 결혼도 하고 집도 장만했다. ‘우리나라 사람 44%가 집이 없는데 나는 집을 가졌구나’라는 생각에 상당히 부끄러워하는 사람이다. 『눈물은 왜 짠가』, 『미안한 마음』 등 다수의 산문집에 그의 이런 마음들이 들어 있다.

이날 함 시인은 ‘시, 소통의 길’이라는 주제로 시란 무엇인가, 왜 시를 쓰는가, 어떻게 시를 쓰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줬다. 이는 곧 그의 삶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독자들과의 대화 내용을 정리한다.
 

한양문고 주엽점에서 강연 중인 함민복 시인과 참석자들


시란 무엇이며, 왜 시를 쓰게 됐는가.

내가 생각하는 시는 ‘도로공사’ 소속이라고 생각한다. 시인은 없는 길이 아니라 이미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것이지만 잠깐 잊고 있는 길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을 보고 멋있다고 공감할 수 있으면 이미 마음에 그것이 있다는 것이다. 당신도 시를 쓸 수 있고 자신의 길을 낼 수 있다. 사람들이 시를 만날 수 있게 해주는 것, 이것이 시인이 아닌가 싶다. 시인은 나와 독자를, 나뉘어 있는 세계를 연결해 주는 연결자다. 시는 접속사다. 순접이든 역접이든 앞뒤 문장을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시가 짧아서다. 어려서 방학숙제를 안했는데 개학은 다가오고 숙제하기 싫어서 짧은 동시를 썼다. 중학교 때 담임선생님께서 시를 잘 쓴다고 칭찬해 주셨다. 고등학교 때 학교 공부가 적성에 안 맞아 고민일 때 그 선생님의 칭찬이 떠올라서 시를 썼다. 고등학교 때 여러 책을 읽고 독서노트를 썼다. 3년 동안 300여 권을 읽었더라.

시의 소재를 어떻게 얻나.

꼬리를 물고 질문을 하다 보면 생각이 확장된다. 그런 방법으로 쓴 시가 ‘자벌레’라는 시다. 배추농사를 지으면서 어느 날 자벌레를 보고 ‘이 작은 자벌레는 뭐가 잴 게 있어서 재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자벌레 입장에서는 배추를 갉아 먹고 나서 배추가 자랄수록 자기가 파먹은 크기보다 점점 커지기 때문에 억울하고 잴 게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과정을 거듭하다 보면 자벌레는 ‘배추의 작은 상처가 점점 커진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라는 질문까지 하게 됐다. 계속 질문을 하면서 새로운 생각들이 떠올라 시를 썼다.

우리는 무엇을 인식하는 순간 질문을 하고 답을 한다. 물병을 보는 순간 저게 뭐지? 물병이야, 하듯 끝없이 질문하고 명제적 답을 요구한다.

일상에서 너무 익숙해서 아무 생각이 안 들 때는 ‘이것은 무엇인가’같은 질문에서 벗어나보자. 똑같은 질문에서 빠져나와 논리적인 답을 구하지 않는 새로운 질문을 할 때 새로운 답을 얻을 수 있다. 창의적인 답은 질문 구조에 이미 들어있다. 질문 던지기가 새로운 생각으로 가는 출발이다.
 

함민복 시인과 강연장을 꽉 채운 참석자들


‘숟가락’이라는 시를 썼는데 젓가락이라는 시는 안쓰나.

최근 ‘국자와 주걱’이라고 동네책방 이름을 지어줬다. 국자와 주걱의 의미를 담아보자는 생각으로 떠올린 이름이다. 숟가락과 젓가락은 개인을 위한 것이지만 국자와 주걱은 여러 사람에게 무엇을 나누기 위한 도구다. 책 역시 다른 사람과 마음을 나누고 공감하는 도구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시인은 불행하거나 아플 때 시를 쓴다고 하던데, 사랑할 때처럼 기쁜 순간에도 시를 쓴 적이 있나.

그렇다. 사랑해서 쓴 연애편지가 시의 출발이었다고 하는 시인들이 많다. 페르시아의 루미라는 시인이 쓴 사랑의 시가 유명하다. 어렸을 때 나도 그런 마음에서 시를 쓴 적이 있다. 사랑하는 마음이 들 때나 기쁠 때도 시를 쓴다. ‘당신은 누구십니까’라는 시는 아내한테 바치는 시다.

같은 뿌리 하나로 오십 가구가 먹고 사는 인삼센터 (중략)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람인자 수백뿌리 눕혀 놓고 / 삼 보고 가시라고 하루 종일 같은 말 반복하는 / 주민등록등본 내 이름 밑에 / 당신 이름 있다고 신기해 드려다 보던 / 밤이면 돌아와 인삼처럼 가지런히 / 내 옆에 눕는 / 당신은 누구십니까 / 나는 당신의 누구여야 합니까 (함민복 시 '당신은 누구입니까')

앞으로 어떤 시를 쓸 예정인가.

이제까지 사적인 시들을 많이 썼다. 근래에 화살표에 대한 시를 쓰고 있다. 어느 날 집에서부터 가게 주차장까지 가면서 ‘내가 집에서 가게까지 오는데 몇 개의 화살표에 복종을 했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화살표가 지시하는 것을 충실하게 따르는 것에 따라 안전도가 달라질 수 있다. 두 번만 어겼어도 불편하거나 치명적인 사고로 목숨을 잃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살표를 통해 방향과 방향성을 화두로 잡아 시를 쓰고 있다. 문구점에서 다섯 개의 화살표를 샀고 가방에 하나씩 넣어 두고 시간 날 때마다 화살표를 보며 방향성을 생각하고 있다. 이 화살표를 어디다 붙이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 가장 평화로울까, 세상에 화살표를 붙일 만한 곳이 어디인가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불가에서 잃어버린 수를 찾아서 떠나는 것처럼, 화살표를 붙일만한 곳을 찾아 떠나는 10단락으로 된 장시를 쓰고 있다.

화살은 인간이 자기 몸 밖 생물체에게 쏘아대는 피비린내 나는 폭력성에서 출발한다. 공중에 떠 있는 비행기에 나타나는 화살표, 하이데거가 이야기하는 화살표, 물리에서 사용되는 화살표, 컴퓨터의 커서, 북한의 핵폭탄도 결국 화살표로 나타난다. 이런 화살표들을 거쳐 마지막에는 양심이라는 내부의 화살표야말로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시를 쓰고 있다.

 

강연을 마친 후 사인 중인 함민복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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