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아람누리 ‘고지식콘서트’ 강연

28일 '고지식콘서트'에서 강연 중인 고은 시인 (사진=고양시)


[고양신문] 고은 시인이 ‘시와 세계’라는 주제로 28일 고양아람누리 새라새극장에서 강연을 했다. 고양시가 마련한 ‘고지식콘서트’ 8번째 강좌로, 130여 명의 관객이 객석을 채웠다. 10월부터 시작된 ‘고지식콘서트’는 12월 5일 한완상 교수, 12월 7일 최성 시장, 12월 12일 조정래 영화감독의 강연을 끝으로 마무리된다.

고은 시인은 1958년 ‘폐결핵’이라는 시로 등단한 이래 시와 소설, 평론, 에세이 등 150권 이상의 저서를 펴냈다. 지금까지 다수의 국내외 문학상을 수상해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시인’으로 불린다.

이날 고은 시인은 할아버지가 사랑방에 앉아 손자들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 편안하게 이야기를 진행했다. “반갑다”는 인사말을 시작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과 헤어짐에 대한 이야기가 길게 이어졌다. 행사 말미에는 시집 『초혼』에 수록된 시 ‘알타이에 가리’, ‘직유에 대하여’, ‘나는 노래하리라’를 낭송해 큰 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예정과 달리 관객과의 질의응답 시간을 가지지 못했고, 헤어질 때의 섭섭함을 느낄 겨를도 없이 끝나버려 관객들에게 많은 아쉬움을 안겨줬다. 강의 내용을 요약해 전한다.

 

아람누리 새라새극장에서 열린 고지식콘서트에서 강연 중인 고은 시인과 관객들 (사진=고양시)


손님은 돌아가신 할머니가 살아 돌아오신 것처럼 맞이해야

예전에 집에 손님이 오는 건 큰 사건이었다. 정성껏 대접하고, 손님이 떠날 때는 없는 노잣돈도 줄 정도로 극진하게 대접했다. 이런 모습은 전쟁을 겪고 난 후 바뀌었다. 모르는 사람이 오면 경계하고 수상한 사람으로 신고해야 했다. 고향의 정서가 사라져 버렸다. 손님은 돌아가신 조상의 혼백이 살아 돌아오신 것처럼 환대해야 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는 바람둥이였지만 손님은 환대했고, 손님을 박대하는 신들은 엄벌에 처했다. 삶과 죽음이 바로 근거리에 있는 사막에 사는 사람들은 사람과의 만남과 헤어짐이 쉽지 않았다. 앞으로 호모사피엔스인 우리는 로봇사피엔스와 함께 살아야 한다. 첨단과학 인공지능시대에 로봇이 기계적으로 반갑다고 말할 때 실제로 반가운 것일까? 지금 우리가 인간으로서 서로 반가워하는 것은 고귀한 가치를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시와 세계, 어머니와 아이의 관계

우리가 ‘세계(世界)’라고 말할 때 세(世)는 시간을 말하고 계(界)는 공간을, 즉 내가 속해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말한다. 이 공간에 시간이 쌓여 결과가 생긴다. 우리 자신도 내부와 외부 하나만으로는 존재할 수 없다. 둘이 함께 작용하는 것이다. 눈과 코, 입을 통해 나의 밖을 보고 감지하고 깨닫고 남(세계)과 관계를 맺는다.

우리가 태어나 처음 경험하는 것은 모자관계다. 어머니의 모성보다 신성한 것은 없다. 어머니는 누구에게나 최고의 종교다. 그런데 냉혹하게 말해서 아기에게 엄마는 경제기구다. 아기가 젖을 먹을 때 엄마를 착취하듯이, 죽일 듯이 먹는다. 아기가 젖을 먹고 나서 배가 부르면 옹알이를 하고 엄마가 답하면서 아기는 말을 배우게 된다. 언어는 엄마의 젖을 먹으며 배우는 말이다. 해서 모국어(母國語)가 아니라 모어(母語)라고 해야 맞다.

엄마와 자식과의 관계는 행복할 때의 사랑과 불행할 때의 사랑이 합쳐진 자비(慈悲)의 관계다. 엄마에게 젖이 없으면 아기는 살 수 없기 때문에 철저하게 물질적인 관계다. 엄마의 사랑을 거룩하다고만 보지 말고 물질적인 관계도 같이 이해할 때 모자의 세계를 알 수 있다.

다른 나라들, 세계 없이는 못 산다

이와 함께 또 다른 세계가 있는데 우리는 수백 년 동안 닫혀 지냈다. 농경사회와 조선시대까지 시를 보더라도 산이나 바다, 자연만을 노래했다. 1908년 육당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라는 시에 세계가 처음 등장한다. 해(海)가 바로 바다를 의미하고 바다를 통해 세계로 갈 수 있었다. 현재 우리는 다른 나라들, 세계 없이는 못산다. 세계와 같이 살아야 한다.

“~같아요”라는 말을 절대 쓰지 말라

내 시 중 ‘직유에 대하여’라는 시가 있다. 직유는 ‘~와 같은’을 뜻한다. 여러분들에게 당부할 말이 있다. ‘행복한 것 같아요, 좋은 것 같아요’ 등 ‘~같아요’라는 말을 절대 쓰지 말라. 그건 진짜가 아닌 가짜다. 모국어에 대한 모욕이자 범죄다.

‘알타이에 가리’

우리의 언어는 우랄알타이어계다. 우리의 조상은 기마민족으로 북방에서 한반도로 왔다. 또한 남쪽에서도 배를 타고 와서 농사를 지었다. 북쪽과 남쪽에서 온 유목 민족의 성향이 섞여 한민족의 원형질이 됐다. 해서 우리는 북방 고구려인에 대한 근원적인 향수를 가지고 있다. ‘알타이에 가리’란 시를 읽어주겠다.

“알타이에 가리 / 내 가난한 조상의 초상으로 돌아가 / 하루에 세 마디나 네 마디로 살리 / 내 지긋지긋한 말의 과잉과 / 욕망의 과잉을 때려 부수고 가리”

 

고지식콘서트 강연에서 자신의 시를 낭송 중인 고은 시인 (사진=고양시)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