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성 학술 심포지엄 ‘북한산성의 가치 재조명’ (하)

다양한 분야 기초 조사 필요한 걸음마단계
잠정목록-우선등재대상-세계유산 등재 단계적 추진

 

[고양신문] 북한산성의 역사와 가치를 재조명하고,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과제를 함께 고민하기 위해 지난달 29일 엠블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2017 북한산성 학술 심포지엄’ 내용을 2회에 걸쳐 지상 중계한다. 지난 호 북한산성의 세계유산적 가치를 조명한 기조강연에 이어 이번 주에는 분야별 주제발표 내용의 요점과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고양시의 로드맵을 소개한다. <편집자주>
 

북한산성 중성문. <사진제공=이재용>


“고종 때까지 지속적으로 관리”
■ 북한산성의 축성과 관리체계
- 이근호 명지대학교 교수

북한산성은 왕과 백성이 새로운 전략적 거점에서 도성을 방어한다는 여민공수, 여민동입(왕과 백성이 함께 성으로 들어간다는 뜻) 정신을 반영하며 축성됐다. 훈련도감, 어영청, 금위영 등 3군문에 의해 산성이 축성된 후 새로이 경리청을 만들어 산성을 관리하도록 했다. 이후 영조 때 총융청으로 관리권이 이관된다.

북한산성의 관리 주체는 또다시 총위영-총융청-무위소-친군영-경리청 등으로 도성과 궁궐 군영의 변화와 궤를 같이 하며 여러 번 바뀐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북한산성은 고종 연간까지 선왕대의 유지를 계승하며 도성 수비의 배후기지로서 지속적으로 관리됐다.


“역사 1000년 전으로 소급하는 중흥산성의 가치 주목”
■ 문헌을 통해 본 북한산성 - 중흥산성을 중심으로
- 김성태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연구센터

출토 유물과 사료 등 그동안의 연구 결과를 종합해 볼 때 문헌에 등장하는 삼국시대 북한산성은 지금의 북한산성이 아니라, 오늘날 아차산성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반면, 고려시대 중흥산성의 의미는 지금보다 훨씬 강조돼야 한다. 2012년 정밀지표조사 결과는 중흥산성 외성이 지금의 북한산성 중성과 중첩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북한산 대부분의 봉우리들이 조선시대 붙여진 불교식 이름을 가진 것과 달리 노적봉-시단봉-증취봉은 먹을거리와 관련한 일련의 이름이 붙은 것을 볼 때, 이 봉우리들이 고려시대 중흥산성의 주 봉우리가 아니었을까 짐작할 수 있다.

지금까지 중흥산성은 고려 말 우왕 때 쌓았다고 인식해왔지만, 보다 자세한 조사를 통해 중흥산성의 위상과 가치를 재조명해야 한다. 중흥산성은 고려 현종 때 축성된 것으로 보여진다. 그렇다면 중흥산성은 고려 왕실의 보장처이자 남한에서 가장 오래된 고려산성으로서, 북한산성의 가치를 1000년 전으로 소급할 수 있는 중요한 자산이다. 보다 자세한 연구 조사를 통해 중흥산성의 정확한 역사와 규모를 밝힌다면 북한산성의 세계유산 등재에도 큰 힘이 실릴 것이다.
 

북한산성 동장대. <사진제공=이재용>


“험준한 자연지형 극복 위한 지혜”
■ 북한산성의 유형자산(북한행궁과 삼군문유영을 중심으로)
- 이승연 경기문화재연구원 선임연구원

북한산성 장점으로 험준한 자연지형을 활용한 천혜의 요새라는 점을 꼽는다. 하지만 이 장점은 동시에 단점이기도 하다. 이러한 단점을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극복했을까를 살피는 것이 연구의 관심사였다.

북한산성은 왕과 도성 백성들이 함께 피난을 하는 보장처를 표방했지만, 현실적으로는 험한 산세와 비좁은 평지 등의 여건으로 인해 왕의 피난처로서의 시설에 집중했다. 북한산성 행궁이 산성 내 시설의 중심인 것이다. 행궁지는 상원봉 아래 능선 사이에 있고, 경사가 완만한 계곡부를 따라 3단으로 대지를 조성해 내전, 외전, 외대문영역의 3개 영역으로 구성했다. 최근 발굴조사를 통해 유구 대부분이 건물이 무너진 퇴적층 아래 잘 남아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산성 내에는 행궁 외에도 경리청 관성소, 삼군문유영, 무기와 군량미 보관 창고 등을 조성했다. 현재 터만 남아있지만, 향후 좀 더 많은 자료가 수집·발굴된다면 조선 후기 피난성으로 채택돼 자연에 순응·대응하며 완성한 북한산성의 뛰어난 건축 토목기술과 군사유산으로서 잘 보존된 실증자료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유럽 성곽기술 영향 연구 필요”
■ 북한산성·남한산성·화성 축성법 비교연구
- 심광주 토지주택박물관장

남한산성과 화성은 각각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를 인정받아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개별 성곽만 비교하면 북한산성은 두 성곽보다 오히려 탁월한 측면이 많다. 하지만 먼저 등재된 화성과 남한산성의 OUV와 중복되는 부분이 많아 새로운 OUV를 찾아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북한산성의 가장 차별화된 특징은 탕춘대성을 통해 한양도성과 연결되는 도성방어시스템의 완비다. 따라서 북한산성의 OUV 도출을 위해서는 탕춘대성과 한양도성을 하나로 묶은 독특한 도성방어시스템을 강조하는 것이 좋다. 북한산성은 축성 이후 방어시설뿐 아니라 도성민의 위락공간이자 문화적 창조공간으로 기능해왔음을 수많은 기록과 자료가 입증하고 있다.

북한산성 축성에 반영된 기술력은 좀 더 깊이 있고 정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당대 동아시아 축성법 교류는 물론 유럽 축성기술의 유입경로 등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우리나라 성제에 영향을 미친 왜성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각으로 연구해야 한다. 16세기 이후 일본 성곽은 유럽성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파악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동안 왜성의 영향이라고 생각됐던 새로운 축성술이 유럽 성제의 영향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조선후기 축성술의 기술적 층위가 더욱 깊어질 수 있을 것이다.
 

“한양 수호하는 진산으로 국가제사 지내”
■ 문헌에 나타난 삼각산의 산신과 기우제
- 채미하 고려대 동아시아문화교류연구소

삼각산은 백제 때는 부아악으로 불리며 진산으로 신성시됐고, 통일신라 때는 국가제사인 소사에 편제됐다. 고려시대에는 왕이 삼각산에 행차했다.

조선 초기 삼각산은 호국백(護國伯)이라는 칭호를 봉작 받고 국가의 제사를 지냈다. 유교적 국가제사체계가 정비된 후에도 삼각산은 한양을 수호하는 진산으로 중사에 편제돼 가장 높은 산악으로 자리매김한다.

삼각산 산신의 신위는 백악산의 산신과 짝지워졌으며, 삼각산신은 한강의 신, 목멱산신과 함께 제사 지내졌다. 이러한 산천신은 가뭄, 홍수, 질병이 발생했을 때 도움을 주는 신으로 기우제와 기청제, 기설제와도 관련이 있었으며 왕실의 안정과도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고 인식됐다.
 

북한산성 대동문. <사진제공=이재용>


“고양시·경기문화재단 협력, 등재 위한 토대 마련”
■ 북한산성 세계유산 등재추진 및 전략
- 김수현 고양시 학예연구사

북한산성은 1968년 국가 사적으로 지정된 대표적인 문화유산으로, 수도권 유일의 명승인 삼각산과 71건의 다양한 문화유산을 품고 있다. 하지만 군사보안상 이유로 1990년대 들어와서야 기초적인 학술조사가 시작됐다.

다행히 고양시와 경기문화재단이 2011년 ‘북한산성 연구·보호·활용을 위한 상호업무협약’을 체결하고 북한산성문화사업팀을 별도로 구성해 학술조사와 시민교육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또한 문화재청·경기도·고양시 등 6개 기관이 모여 ‘북한산성 보존·관리 협의회’를 발족하며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기초적인 토대를 마련했다.

하지만 현재 북한산성 세계유산 등재 단계는 아직 잠정목록에도 오르지 못한, 이제 막 첫걸음을 하는 수준이다. 따라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제정한 6가지의 등재 기준 가운데 북한산성과 부합되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를 정립해야 하는게 선결과제다.

고양시는 2018년도를 목표로 잠정목록 등재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잠정목록에 등재되면 전담 추진단을 구성해 보존·정비와 국제학술대회 등 대외 홍보를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2020년에는 문화재청에 우선등재대상 신청서를 제출할 계획이며, 늦어도 2021~2022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등재 여부를 심사받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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