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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핑크스의 물음 “인간, 너는 누구냐?”미학자 김융희, 귀가쫑긋에서 강연
  • 정미경 시민기자
  • 승인 2017.12.07 17:51
  • 호수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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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모임 '귀가쫑긋'에서 '신화가 알려주는 삶의 비밀'에 대해 강연 중인 김융희 교수.


[고양신문] “눈이 온 겨울날이나 봄날 새싹이 돋고 꽃이 피는 걸 보면 특별하고 신비로운 느낌이 든다. 내가 경험한 벅차고 알 수 없는 감정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을 때 만들어진 이야기가 미토스(Mythos, 신화)다. 그래서 신화는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이야기인 로고스(Logos)나 철학보다는 시에 가깝다. 신화는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는 것을 노래하고, 아주 보편적이고 누구나 긍정할 수 있을 만한 진실을 담고 있다.”

지난 1일 일산의 인문학 모임 ‘귀가쫑긋’에서 강연을 한 김융희 교수는 미학자이자 상징과 마법을 공부하는 ‘신화와 상징의 숲’ 리더다. 미학 중에서도 주로 상상력과 신화에 대해 공부한 그는 서울예술대학교에서 신화와 예술철학을 가르쳤다. 현재는 학교 밖에서 신화와 예술을 일상의 삶과 연결시키는 강의와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삶의 길목에서 만난 신화』, 『검은 천사, 하얀 악마』, 『예술, 세계와의 주술적 소통』 등 다수가 있다.

그에 의하면 신화는 삶과 우주에 대한 통찰을 상징으로 담은 시이자 예술이다. 우리는 누구인지,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하여 신화는 상징의 언어로 말해준다. 이날 강연에서는 다양한 그림을 보여주며 이집트의 스핑크스와 오이디푸스에서부터 인도의 시바-나타라자까지 신화 속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예정시간을 훌쩍 넘겼음에도 강의실을 꽉 채운 관객들은 그가 들려주는 신비로운 이야기에 흠뻑 취해 일상을 잠시 잊었다. 다양한 강의 내용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스핑크스와 오이디푸스에 대한 설명을 요약해 소개한다.
 

지난 1일 귀가쫑긋 강의실을 꽉 채운 관객들이 김융희 교수의 강의를 듣고 있다.

 

스스로를 몰랐던 비극의 주인공, 오이디푸스 

오이디푸스라고 하면 어머니를 사랑한 아들, 혹은 아버지와의 대결 구도가 떠오른다. 어머니에게 의존적인 마음 때문에 어머니와 분리되기 싫어하고 아버지를 적대시한다는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론 덕분에 신화가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이는 오이디푸스 신화의 일부분만을 이야기 한 것이다.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었기 때문에 왕이 된 사람이다. 괴물 스핑크스는 테베로 들어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 나그네에게 질문을 던진다. “네 발로도 걷고, 세 발로도 걷고, 두 발로도 걷는다. 이름은 하나지만 생물 가운데 이것만이 형상을 바꾼다. 그것이 무엇인가?” 오이디푸스는 ‘인간’이라는 답을 맞추고 왕이 된다. 이를 계기로 그 스스로 자신은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푼 현명한 능력자라 생각하지만 정작 자신이 누구인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는 몰랐다.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왕비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국법에 의해 어머니와 합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근원적으로 내가 누군지 알지 못한 채로 존재한다. 스핑크스는 네 발, 세 발, 두 발이라는 인간의 근원적인 속성을 수수께끼를 통해 알려준 것이다. 스핑크스는 괴물이 아니라 신이다. 그가 질문한 것은 단순히 ‘인간’이라는 단답식 해답이 아니다. 하늘이 인간에게 ‘넌 누구냐?’라고 묻는 것이었다.

 

문명의 오만에 대한 경고

오이디푸스라는 이름은 ‘발 부은 자’라는 뜻으로 아버지의 잘못으로 인해 발에 문제가 생긴다. 한쪽 발에 문제가 생기니 똑바로 걸을 수가 없다. 빨간 신발을 신었더니 춤을 멈출 수 없었다는 ‘빨간 신’ 동화처럼 내가 내 발의 주인이 되지 못하면 남의 장단에 춤을 추게 된다. 그러면 나는 내 삶을 사는 게 아니다. 균형이 깨졌으므로 말로가 처참하다.

신화는 집단의 꿈 이야기라고 한다. 그리스인들이 이런 비극을 해마다 공연한 이유는 그들의 문명에 오만의 위험성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감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모든 걸 다 알고 있고, 내가 아는 것은 항상 옳다고 생각하는 오만, 우리는 자연의 일부인데 자연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오만 말이다. 실제로 오이디푸스는 아는 자가 아니라 무지한 자였던 것이다.

사람은 두발로 걷게 되면 기어 다닐 때는 잊어버리고 자기가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어린 사람들을 비웃고 그들과 갈등을 빚는다. 이 시기가 지나 노쇠해지면 밀어냈던 땅과 가까워지는 시기다. 빳빳했던 고개가 숙여진다. 인생에 대해 알게 되고 내 중심에서 너희들, 당신들로 지평이 넓어진다. 비로소 내가 아니라 우리를 생각하게 된다.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에 대해 성찰하게 된다. 신화는 마치 ‘우리안의 사랑, 우리 안의 꽃을 피우라’고 가르침을 주는 것 같다.

 

강연 후 자신의 저서에 싸인 중인 김융희 교수.

 

 

정미경 시민기자  gracesophi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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