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언론사 공동취재를 다녀와서

‘혼자 운전 중에 심장마비 증상이 오면, 심호흡과 기침을 끊임없이 반복하라.’ 
지난 10월 말, 한 유명배우가 교통사고로 사망할 당시 핸들을 가슴에 기댄 채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는 미확인 정보가 널리 알려진 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타고 급속도로 퍼진 ‘심장마비 시 대처법’이다. 7쪽짜리 카드뉴스로 제작된 파일의 출처는 국내 대형종합병원. 믿음이 갔다. ‘최대한 많은 친구나 동료들에게 이 자료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파일 마지막 당부의 말을 뿌리칠 이유가 없었다. 바로 다음날, 출처로 알려진 대형종합병원이 “의학적 근거가 없을뿐더러 파일을 만들어 배포한 적이 없다”라고 밝힌 뉴스를 접하고 나서야 허술한 내용이 보였다.

비판적 사고, 올바른 활용
최근 가짜뉴스 논란이 불거지면서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 교육이 주목받고 있다. 미디어 리터러시란 미디어 콘텐츠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올바르게 활용하는 능력을 말한다. 정보 과잉시대에 신뢰할 수 있는 정보(뉴스)를 선별해내는 데 그치지 않고 창조적이고 책임감 있게 콘텐츠 생산·유통에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교육 목표를 둔다. 핀란드, 영국, 미국, 호주 등 해외 주요 국가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청소년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에 힘쓰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지원 공동취재단이 지난 9월 방문한 핀란드는 교육경쟁력 세계 1위답게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에서도 강국이었다. 핀란드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정규교과 과정을 통해 미디어 리터러시를 체계적으로 교육한다. 교사마다의 이해 차이를 좁히기 위해 정부가 가이드 라인을 제시한다. 교사 교육 예산도 지원한다. 하지만 학교에만 전적으로 기대진 않는다. 언론사와 지역사회도 함께한다.

공영방송 윌레( Y L E)가 운영하는 ‘YLE뉴스클래스’는 아이들이 주도해 제작한 방송을 내보낸다. 아이템 선정부터 취재까지 아이들 손에 맡긴다. 핀란드에서 구독자수가 가장 많은 종합일간지 헬싱긴 사노맛도 어린이 뉴스를 제공한다. 1주일에 한 번 온라인 TV로 방송하고, 지면에도 싣는다. 윌레와 마찬가지로 주제에 제한은 없다. 어른들이 알려주고픈 내용이 아니라 아이들이 관심 갖는 소재를 다룬다. 분쟁, 갈등 이야기도 비껴가지 않는다. 부모나 교사 없이도 아이들이 이해할 수준의 ‘쉬운 언어’로 전달하는 데 더 신경을 쓸 뿐이다. 헬싱긴 사노맛 담당자는 이러한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미래 독자’로 이어질 것을 기대했다.
뉴스 교육용 앱(트리플렛), 미디어교육 공간으로 자리잡은 공공도서관도 핀란드에서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활성화에 한몫했다.

매체·교육 환경부터 살펴야
국내에서도 미디어 리터러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앞선 국가들의 사례를 살피는 것도 한국형 교육을 만들기 위해서다. 그런 점에서 교육 강국 핀란드는 분명 좋은 벤치마킹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번 공동취재단 사이에선 “새로울 건 없다”란 반응도 나왔다. 제작과정이나 내용에 분명 차이는 있지만 어린이 신문, 어린이 방송이 아주 생소한 것은 아니어서다. 그보다 인상적인 건 미디어 리터러시를 뿌리내리게 한 핀란드의 토양이었다.

탐페레 대학의 시르쿠 코티라이넨 교수(미디어교육 전공)는 “오랫동안 스웨덴과 러시아로부터 식민통치를 받은 역사적 배경도 핀란드에서 미디어 리터러시가 발전할 수 있었던 한 이유”라고 소개했다. 신문이 식민통치 당시 정당 기관선전지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기사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선 비판적으로 읽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핀란드가 수백 년간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나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 이라며 미디어 리터러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핀란드만의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자리잡은 교육이란 의미다.

굳이 ‘21세기 핵심역량’ 운운하지 않아도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우리에게도 거스를 수 없는 큰 흐름이다. 교육현장에 적극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그래서 반갑다. 그러나 한때의 유행으로 그치지 않도록 하려면 누가, 어떻게 할 것인가에 앞서 매체와 교육 환경을 우선 살펴야 한다. 우리 토양에 맞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무엇인가란 고민이 먼저다.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