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 여성동아리 플랫폼 ‘동네친구’

한양문고에 모임공간 차리고 활발히 활동
독서ㆍ예술활동 등 다양한 관심사별
동아리 자유롭게 만들고 참여해

 

창립 1주년 기념행사를 겸해 열린 2017 동네친구 정기총회. <사진제공=동네친구>


[고양신문] 100만이 넘는 인구가 함께 살아가는 거대도시에서 살고 있지만 정작 속마음 터놓을 동네친구 한두 명 만들기가 만만찮은 현실 속에서 “답답했던 아파트 숲을 친구들이 있는 재미난 놀이터”로 만들려는 이들이 있다. 고양시를 기반으로 한 여성동아리 플랫폼을 표방하며  꿍꿍이를 벌이고 있는 ‘동네친구’ 멤버들이다. 이들은 한양문고 주엽점에  모임공간을 꾸리고 다양한 욕구와 관심사를 아우르는 동아리를 운영 중이다.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이들과 함께 책도 읽고, 취미도 공유하고, 삶의 경험을 넓혀가며 세상과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에 공감하는 이들이 모여 지난해 3월 동네친구를 창립했어요.”
어쩌다보니 동네친구 대표를 맡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 조이헌임(덕양구 삼송마을)씨는 동네친구가 누군가의 특정한 의도나 설계 없이 자연스럽게 탄생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른 모임에서 ‘명작 원서 읽기’를 함께하던 이들이 뭔가 더 재밌고 의미 있는 모임을 지속해보자며 16명의 창립멤버가 의기투합했다는 게 헌임씨의 설명이다. 

창립멤버이자 운영위원 중 한 사람인 장민정(일산서구 후곡마을)씨도 동네친구 모임의 첫 번째 특징으로 민주주의 문화의 일상화를 꼽았다.
“이름을 짓는 과정부터 서로의 의견을 경청하고 공정하게 투표를 거쳐 정했어요. 모두가 참여하고 함께 결정하며, 서로에게 질문하고 사유하자는 원칙은 동네친구의 가장 중요한 가치예요.”
 

(사진 왼쪽부터)창립멤버이자 운영위원 중 한 사람인 장민정씨와 동네친구 대표를 맡고 있는 조이헌임씨.



동아리를 새로 만들거나 없애는 주체도 조직이 아니라 개인이다. 회원이면 누구든 동아리를 제안하고 결성을 추진할 수 있다. 그렇게 하나둘 만들어진 동아리가 현재 14개에 이른다. 회원 숫자도 1년 9개월 만에 16명에서 85명으로 크게 늘었고, 연령대도 30대 청년부터 60대까지 골고루 포진해 있다.

동네친구의 성장 배경에는 운영위원들의 야무진 뒷받침이 자리하고 있다. 6개월 임기로 돌아가며 동네친구 살림을 꾸리는 운영위원들은 모임이 재밌게 굴러가도록 돕는 산파 역할을 한다.

“올해 초 전 회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어요.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을 자유롭게 적도록 한 후 4명 이상이 원하는 아이템을 골라 운영위원을 중심으로 ‘궁리모임’을 열었어요. 회원들의 희망사항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인큐베이팅 역할을 한 거지요.”

민정씨의 말처럼 설문조사와 궁리모임을 통해 새로 탄생한 동아리만도 서너 개가 넘는다. 그 과정을 경험하며 헌임씨는 ‘함께 하는 것’의 힘을 보았다. 
“한 사람이 시작하긴 어렵지만 두세 사람이 모이면 시작하기가 쉽잖아요. 그 두세 사람을 찾아 엮어 주는 게 운영위원의 역할이구나 싶더라구요.”

동네친구의 출발점은 책읽기 모임에서 태동했지만, 독서와 토론 외 다른 분야로도 관심사를 확장하고 있다.
회원 설문조사에서 나온 아이템을 궁리모임에서 숙성시켜 탄생시킨 글쓰기 모임 ‘글로서기’는 일반적 글쓰기 동아리와는 다른 ‘프리스타일’ 글쓰기를 시도하는 모임이다. 글 쓰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주제를 정한 후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방식으로 글쓰기의 즐거움을 나누고 있다.
 

"각자가 품은 능력, 감추지 말고 풀어놓자"

민주적이고 평등한 문화 정착
신나고 열정적인 삶의 주체 지향


동네친구가 창립하며 제일 먼저 시작된 동아리 ‘달살려’는 페미니즘에 대해 사유를 나누는 모임이다. 책읽기가 기본이지만 최근 들어 작은 결과물을 하나둘 축적하고 있다. 동아리에서 생산한 생각들을 동아리 밖 회원들에게도 전하고 싶기 때문이다.

다른 모임에선 찾아보기 힘든 동아리도 있다. ‘함께 나이들기’는 주민번호 첫 자리가 6으로 시작하는 이들만 참여할 수 있는 특정 연령대의 모임이다. 동년배로서의 관심을 공유하며 책도 읽고 토론도 하는 모임이다. 헌임씨는 이 동아리가 특별히 소중하게 느껴지는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젊은 사람들의 또래모임은 많지만 50대 또래모임은 희귀하거든요. 나이듦에 대한 깊은 사유가 가능하리란 점에서 무척 흥미롭습니다. 40대에겐 미래의 역할모델도 될 수 있구요.”
 

페미니즘과 관련한 다양한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는 동아리 '달살려' 회원들. <사진제공=동네친구>



그밖에도 클래식 감상 동아리 ‘카덴차’, 그림동아리 ‘스케치북’, 어린이의 말을 기록하는 ‘어린이탐구생활’ 등 모두 14개의 동아리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하루하루 축적하고 있다.

한양문고에 터전을 잡은 것도 ‘신의 한 수’였다. 동아리 활동공간(동친살롱)을 저렴한 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도 호조건이지만, 무엇보다도 지역의 문화 사랑방을 꿈꾸는 한양문고의 지향점이 동네친구의 성격과 너무도 잘 맞아떨어졌다.

“한양문고를 드나드는 이들이 동네친구 활동을 주목하며 회원이 되기도 하고, 동네친구 회원들도 한양문고에서 개최하는 이런 저런 문화행사에 자연스레 동참하게 되니 서로에게 이보다 좋을 순 없지요.”
“새로 들어오는 회원들을 보며 어쩜 이렇게 멋지고 좋은 분들이 찾아왔을까 감탄할 때가 많아요. 한양문고가 자리가 참 좋은 것 같아요(웃음).”
동네친구와 한양문고는 서로의 역동적인 문화적 에너지를 보다 재밌고 생산적으로 엮어보기 위한 자잘한 아이디어들을 수시로 고민한다고 한다.
 

동네친구 울타리에서 활동하는 멤버들이 함께 모여 벌인 제1회 동아리 페스티벌. <사진제공=동네친구>

 
아쉬운 점도 없지 않다. 모임 규모가 커지다 보니 10명 정도가 들어가면 꽉 차는 동친살롱만으로는 회원들의 다양한 욕구를 소화하기가 어느덧 벅차졌다. 동아리 모임 시간이 겹치지 않도록 공정하게 조율하는 것도 고민이라면 고민이다. 또 하나는 직장여성들이 참여할 수 있는 저녁 시간 동아리가 아직 없다는 점. 현재 토요일 오후에 모이는 ‘토요독서회’가 직장인이 참여하는 유일한 동아리인데, 누군가 자발적인 리더가 나와 직장여성이 참여하는 저녁 동아리를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가능하면 동네친구라는 이름으로 특정 이슈에 대한 캠페인은 하지 않습니다. 제일 중요한 정체성은 어디까지나 동아리들이 잘 만들어져 성장하고, 유지되며, 소멸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이니까요. 그걸 잘하기 위한 동네친구 차원의 최소한의 전체 활동은 하고 있어요. 지난 10월에는 회원들 중 자발적 기획단을 꾸려 제1회 동네친구 동아리페스티벌을 열었는데 아주 재밌었어요.”

헌임씨 말대로 동아리페스티벌은 그동안 잘 몰랐던 서로의 활동 모습을 들여다보고 격려하는 유쾌한 시간이었다. 각자가 읽은 책을 전시하기도 하고, 갓 태동한 동친중창단은 노래를 발표하기도 했다. 페미니즘 동아리 달살려는 회원들이 직접 만든 소책자를 인기리에 판매하기도 했다.
 

결성하자마자 동아리 페스티벌 무대에 선 중창동아리 '왓뚜와리'. <사진제공=동네친구>



동네친구를 처음 만들 때부터 참여한 민정씨는 모임 성장보다 모임에 참여하는 개개인의 성장을 지켜보는 일이 더 놀랍고 보람 있다고 말했다.
“처음엔 스스로를 잘 드러내지 못하던 이들이 몇 개월 만에 당당하고 자신감에 찬 모습을 보여주곤 해요. 또 한 가지 자랑은, 동네친구 멤버들은 대개의 ‘엄마’들이 주로 하는 자녀교육이나 시댁 등의 수다를 거의 안 해요. 굉장히 의미 있는 변화죠.”

헌임씨도 회원들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한다.
“우리나라 여성들은 ‘여자는 조신하고 겸손해야 한다’는 사회적 시선에 짓눌려 스스로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자발적인 분위기에서 동아리 활동을 하다 보면 각자에게 잠재된 능력들이 자기도 모르게 발휘되지요.”

일반적인 동네모임과 달리 동네친구에서는 나이에 상관없이 서로를 ‘누구누구 쌤’이라고 부르는 문화가 자연스레 정착됐다.
“나이를 기준으로 위아래를 나누다 보면 아무래도 보이지 않는 권력관계가 생기게 마련이거든요. 하지만 서로를 동등하게 부르다 보면 각자를 한 명의 자존적 인격체로 바라보는 대화가 가능해져요. 동네친구에서는 더 이상 누구의 아내, 또는 누구의 엄마가 아니어도 하나도 불편하지 않답니다.”
따뜻하면서도 씩씩한 헌임씨의 말 속에서 평등한 관계를 토대로 신나고 열정적인 삶의 주체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동네친구의 일관된 지향점이 오롯이 감지된다.


고양 여성동아리 플랫폼 ‘동네친구’

동친살롱 : 한양문고 주엽점(일산서구 중앙로 1388)
문의 : 010-4840-3800(조이헌임 대표)


 

그림책 읽기 모임 '같이앤가치'. <사진제공=동네친구>
어린이의 말을 기록하고 존재를 탐구하는 동아리 '어린이 탐구생활' <사진제공=동네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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