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떤 시민인가> 허경남 고양시새마을회 사무국장

새로운 발상으로 활동역역 꾸준히 개척
이동도서관ㆍ실버인력뱅크ㆍ일산역전시관 등 운영
"새마을은 고루하다는 편견 떨쳐버리고파"

 

[고양신문] 이웃과 함께 일상의 현장에서 시민다운 삶을 살아가는 ‘어떤 시민’에게 다가가는 시간. 2017년의 마지막 주인공은 허경남 고양시새마을회 사무국장이다. 고양시새마을회는 ‘새마을’에 대한 일반적 선입견에 대해 ‘해당 사항 없음’이라는 평가를 받곤 한다. 기존의 울타리에 머물지 않고, 지역사회와 소통하기 위한 문들을 하나하나 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 33년간 자리를 지키며 변화를 견인한 허경남 사무국장이 자리하고 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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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은 ㈔고양시새마을회(회장 김봉진)와 떼어서 말할 수 없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잠시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마음으로 고양시새마을회의 문을 두드린 게 1984년 3월이었다. 당시 고양군청 안에 사무실을 막 개청하던 때였다.

사무실을 드나드는 많은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딸같이 잘 대해 주시는 게 좋아서 무슨 일이든 열심히 배워보려고 했다. 그렇게 몇 년을 일하다 정규직 직원을 공채하는 기회가 찾아와 시험에 응시해 채용돼 지금까지 몸 담고 있다.

전경환씨가 수장으로 있던 80년대 새마을중앙회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좋을 리 없었다. 그래서 남들에게 그냥 시청 다닌다고 둘러대곤 했다(웃음). 결국 정권이 바뀌며 새마을 중앙회의 문제가 외부로 불거졌고, 고양시지회에서 함께 일하던 이들도 하나둘 떠나 95년부터는 달랑 나 혼자 근무를 하게 됐다.

가끔 새마을회를 떠나지 못한 이유가 뭐였을까 스스로 묻기도 하는데, 답은 언제나 분명했다. 새마을회 울타리 안에서 열심히 봉사활동을 하는 분들의 모습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다. 사실 그분들에게 특정한 정치적 입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지역을 위한 일이니까 순수한 마음으로 힘을 보태는 분들이 대다수다.
 

 

자원봉사센터 성공적으로 운영

스스로 고양시새마을회 일을 꾸리게 되면서 새로운 사업을 시도했다.
98년도에 자원봉사센터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새마을에서 펼치는 활동을 공식적인 자원봉사활동의 영역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99년도에 고양시 자원봉사센터를 위탁받았다. 그렇게 30대 중반에 시작한 자원봉사센터 일을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열심히 매달렸다. 주말을 포기해야 할만큼 바빴지만 정말 신명나게 뛰며 일을 만들고 사람들을 만났다. 그러다보니 자원봉사센터가 고양시 100여 개 단체를 아우르는 활동 영역을 갖게 됐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내적 갈등도 있었다. 고양시지회 내부에서는 “수고는 새마을에서 다 하는데 공로는 자원봉사센터에 가려진다”는 불만이 나왔다. 반대로 일부 외부인들은 “자원봉사센터를 빙자해 새마을 활동을 한다”는 오해의 시선을 보내기도 해 속이 상한 적도 많았다. 어쨌든 “새마을에서 왜 그런 일까지 해?”라는 질문을 끊이지 않고 들어야만 했다.

그럴 때마다 나 자신을 다시 세운 것은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평가가 아니라 스스로의 목표’라는 생각이었다. 한번은 새마을연수원에서 유명 강사가 강연을 하는데, 미래의 새마을운동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며 지역에서 자원봉사센터를 운영할 것을 제안하는 게 아닌가. 고양시지회에선 이미 하고 있는 일인데 말이다. ‘내가 선택한 이 길이 틀리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울컥했다.


지역공동체 아우르는 폭넓은 시야 얻어

한번 고민해서 결정하면 더 이상 고민하지 않는 게 내 장점이기도 하다. 막상 일이 시작되면 내가 뭘 고민했었는지도 잊어버리고 일에 매진할 만큼 단순하다고나 할까(웃음). 늘 예산이 모자라 여기저기서 후원을 받아야 할만큼 숨가빴지만, 전국 최우수 기관으로 선정될 정도로 자원봉사센터 운영은 성공적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시의 정책이 바뀌어 자원봉사센터를 독립 법인으로 만드는 일이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11년간 헌신한 조직에 대한 일말의 예의나 고마움도 표하지 않는 태도를 보며 많이 슬펐다. 1년만 더 운영하다 놓을 것을 요구했지만, 미련을 버리고 거절을 했다. 내가 일할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하면 그뿐, 그 이상은 내 몫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홀가분했다. 돌이켜보니 11년 동안 고양시 자원봉사센터를 위탁 운영한 경험은 내게 너무도 큰 선물을 안겨줬다. 고양시라는 지역 공동체 전체를 아우르는 넓은 시야를 갖게 됐고, 단체 이기주의가 강한 풍토 속에서 서로의 사정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니 말이다.
 


“새마을이라서 잘 할 수 있습니다”

이동도서관 사업을 시작한 건 2002년 부터다. 경기도에서 이동도서관을 운영할 단체를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무작정 손을 들어 차량을 지원 받아 시작했는데 참 재밌고 보람차다.

아직 우리사회에 노인일자리 문제가 보편화되지 않았을 때 시니어클럽 이야기를 처음 듣고 ‘우리가 하면 정말 잘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실버인력뱅크 위탁에 도전했다. 경기도에 자료를 제출하고 프리젠테이션을 하는데, 또다시 반복되는 질문을 들어야 했다. “왜 새마을에서 이런 걸 하려고 하세요?” 그래서 오기가 나 이렇게 대답했다. “새마을이라서 너무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 결과 전국에서 최초로 새마을지부가 시니어클럽과 실버인력뱅크를 위탁 받아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고양시 등록문화재인 구일산역의 위탁공고에 응하면서도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 부족함 없이 준비를 해 단독응모를 했는데 뜻밖에도 떨어지고 말았다. 알고 보니 심사과정에서 ‘새마을에 줄 수는 없다’는 견해가 나왔다는 것이었다. 또 색안경이야?
결국 적당한 응모자가 나오지 않아 2차 응모를 통해 위탁 결정을 받았다. 최근 우리가 전시관을 성공적으로 운영하는 것을 보고, 우리를 반대했던 상임위원이 “너무 잘 운영해줘서 고맙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새마을의 역량, 시민 위해 써야

2005년에는 총 예산 31억원을 들여 일산동구 무궁화로에 지상3층 지하1층의 고양시새마을회관을 건립했다. 국비와 도비, 시비를 끌어 모았지만 자금이 부족해 새마을지도자들이 십시일반으로 건립기금을 모아 건물을 완공했다. 

회관 활용에 있어서도 고양시새마을회는 다른 선택을 했다. 타 지역에서는 국가의 세금을 들여 지은 새마을회관을 상업시설로 임대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고양시새마을회관은 비어 있을 틈이 없을 정도로 각종 활동이 바쁘게 돌아간다. 물론 일부 회원들은 여전히 임대사업을 하면 수익도 낼 수 있는데, 뭣하러 힘든 사업들을 벌이느냐며 볼멘소리를 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늘 이렇게 대답한다. 국가와 시민의 세금이 들어간 건물이니 이 공간을 통해 뭔가 이웃들에게 유익함을 주는 역할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렇게 허심탄회하게 설득하면 대개는 이해해 주신다. 현재 고양시새마을회와 관련된 일을 하는 직원들이 40명에 이른다.
 

보배 같은 사람들 만나 행복해

일을 하면서 야간 대학을 다니며 학업을 마쳤다. 교회 오빠로 만난 남편과는 8년 동안 연애를 하다 결혼을 했다. 워낙 일을 여러 개 벌여놓다 보니, 월급을 서너 군데서 받으며 떼돈 버는가보다 오해하는 분들도 있다(웃음). 새마을에서 주는 월급 외에는 어떤 위탁기관에서도 보수를 받은 적이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또다시 웃음).

아직도 새마을에 있느냐는 이야기를 듣는 건 이제 만성이 됐다. 다행히 일을 열심히 하는 동안은 그런 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내가 하는 일의 매력과 장점이 과연 무엇일까를 생각해봤다. 답은 쉽게 찾았다. 내 주변에 모이는 분들은 모두 좋은 일을 하자고 모이는 분들이 아닌가. 손을 꼽기에 모자랄 만큼 보배같은 분들을 만났다. 한 자리를 오래 지킨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대가 바라지 않는 봉사자들 자랑스러워

그럼에도 고민은 여전히 반복된다. 사람들은 최근 들어 새마을에게 ‘적폐’라는 말을 붙이곤 한다. 그렇다면 나 역시 적폐인가? 내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고, 지역사회에 보탬이 되는 모임을 만들고자 열심히 뛴 나의 지난 날들이 모두 적폐의 시간인가?

사실 회관 건물에 매달린 태극기와 새마을기를 떼라는 민원이 끊이지 않는다. 새마을이라는 이름이 불편한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무런 명예도 대가도 없이 묵묵히 봉사의 손길을 놓지 않는 이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현재까지도 고양시새마을회의 이름을 걸고 활동하는 회원들이 1500명에 이른다. 이들은 그저 내가 사는 마을과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눔과 봉사에 동참하는 이들이다.

새마을회에 대한 불편한 시선과 선입견을 극복하기 위한 그동안의 노력이 얼마만큼의 결과를 얻었는지를 우리들 스스로 평가할 순 없다. 다만 새마을에 대한 색안경을 조금은 벗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편견 없는 시선으로 바라봐 주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함께 사는 고양시에서부터라도 말이다.

<사진제공=고양시새마을회>
<사진제공=고양시새마을회>
허경남 사무국장의 활동모습. <사진제공=고양시새마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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