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고>

박수택 SBS 선임기자. 18년째 일산동구 거주 시민

[고양신문] 겨울에도 마당엔 생기가 넘쳤다. 박새, 곤줄박이에 오색딱따구리. 녹두빛 몸통에 머리에 빨간 댕기를 올린 청딱따구리까지 찾아왔다. 해바라기씨를 사다 모이통에 부어놓으면 사나흘에 동이 날 정도였다. 쇠기름을 석쇠에 끼어 걸어놓자 새들은 더욱 많이 모여들었다.

봄에는 앞뒷마당에 달아둔 둥지상자에 박새와 딱새 부부가 보금자리를 폈다. 알에서 새끼가 나와 삐약 소리가 들릴 때면 어미와 아비는 벌레를 물어 날랐다. 짧게는 30초, 길게는 2, 3분마다 부지런히 먹이를 날랐다. 자식 키우는 부모의 수고는 사람이나 새나 다르지 않다. 고양이가 마당에 어슬렁거리면 수컷 딱새가 공중에서 날개를 파닥이며 공격태세를 펴고 딱따닥 소리를 냈다. 그래서 딱새라 부른다고 국립생물자원관의 전문가가 들려줬다. 아내와 자식을 지키려 분투하는 수컷 딱새에게서 인간사회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어린 새들은 부모의 보살핌을 받고 자라 둥지를 떠나 근처 숲으로 사라졌다.

자주 찾아오던 청딱따구리. 이제는 그 모습을 볼 수가 없다.<사진=박수택>

이번 겨울엔 모이통 해바라기씨가 좀체 줄어들지 않는다. 한 달 전에 1㎏ 한 봉지를 사서 부어주고 아직 절반이 남았다. 집 주변 언덕배기 숲이 지난 2년 사이에 모두 사라졌다. 대신에 나무 높이 서너 배 높이로 콘크리트 다세대 주택이 빼곡히 들어찼다. 이 일대는 원래 ‘식골’ 또는 ‘식굴’ 이라고 부르던 농촌마을을 감싸고 있던 야트막한 산자락이었다. 논과 밭, 묏자리, 나무숲 밀어내고 우뚝우뚝 고층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이름 하여 ‘숲속마을’이다.

고양대로 너머 식사동에도 역시 고봉산 자락 숲 언덕보다 세 배는 높아 보이는 고층 아파트 단지가 위용을 뽐낸다. 어린이 청소년들이 심신을 단련하던 풍동 서울YMCA캠프장도 벌겋게 밀려나갔다. 여름밤이면 개구리가 울어대고 낮이면 백로가 날아와 쉬던 논도 거의 다 메워졌다. 그 자리에 농사용이니 버섯재배용이니 내세워 지은 창고에 사람도 살고 화물차도 드나든다. 17년 전 퇴직금 중간정산까지 하며 지은 ‘전원주택’, 전원은 사라지고 주택만 남았다. 소음, 먼지에 쓰레기와 악취는 계속 늘고 있다.
 

<사진=박수택>

일산신도시가 완공될 무렵 고양시 인구는 50만도 안 됐다. 수도권 서북부의 도시와 농촌이 어우러진 쾌적한 ‘도농복합도시’로서 주목을 받은 적도 있었다. 그도 잠시뿐 지금은 난개발의 대명사로 꼽힌다. 고양시 도시부를 둘러싼 농촌 지대는 창고, 공장, 비닐하우스, 축사, 폐기물업체, 골재업체, 레미콘공장, 음식점, 요양병원, 다세대 주택, 심지어 골프장까지 온갖 용도의 건물과 시설이 뒤섞였다.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가며 얼마 남지도 않은 숲을 마저 밀고 논을 메워 빌라 단지가 우후죽순이다. 멀리 서울 남산에서도 보일 정도의 초고층 단지들이 기존 주거지역을 내려다보며 키 경쟁을 한다.

현재 고양시 인구는 100만을 넘었다. 시장이 거느리는 부시장과 간부 공무원 자리는 늘었다. 시민이 체감하는 생활 만족, 행복도도 함께 높아졌을까? 개발바람 타고 대형 상업시설이 밀려들어와 지역 영세 상권엔 찬바람이 돈다. 도로에 차가 넘쳐나 교통 혼잡이 심해졌다. 공기는 탁하고 쓰레기 탄내 악취가 머리카락과 옷에 배 불편하다는 소리가 도처에 들린다. 미세먼지 소굴이나 다름없는 곳에서 아이들 키우기 불안하다는 절박한 호소도 높다.

 

포클레인으로 벌겋게 밀려나간 풍동 서울YMCA캠프장.<사진=박수택>
난개발로 어지러운 일산동구 성석동의 모습<사진=박수택>

시민 세금으로 만드는 시정 소식지엔 이런 호소가 실리지 않는다. ‘전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라고 내세울 뿐이다. 온갖 외부기관 단체 평가에서 상 받았다는 자랑도 끊이질 않는다. ‘최초, 으뜸, 최고, 가장…’이란 최상급 표현이 넘쳐나지만 정작 시민의 삶을 제대로 반영한 것인지 묻고 싶다. 적절한 인구 규모가 있을 것인데 고양시는 수치를 계속 늘려 2030년에는 121만5000명으로 잡고 있다(경기도 승인 도시기본계획, 2016년 7월 5일). 지역의 숲과 농지는 더욱 줄어들고 초고층의 그늘은 더욱 길어질 판이다. 한강변 장항습지에 날아오는 재두루미가 낙곡 쪼며 배 채우던 장항, 대화, 송포 들판도 마저 콘크리트 성채로 덮을 요량이다. 새가 오지 않는 땅에서 사람인들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고양시의 주인, 시민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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