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은 박애재단 이사장

군 제대후 인연 맺은 후 정신장애인 돌봄 한 길
노인요양시설·새희망둥지로 약자위한 돌봄 영역 넓혀
“생활인의 삶의 질 높이는 다양한 방법 고민해”


 


고양시 일산동구 설문동에 자리한 박애원은 성인 정신장애인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는 요양시설이다. 사회복지법인 박애재단에서 운영하는 이곳은 매 년 보건복지부에서 실시하는 평가에서 10년 연속 최우수등급을 받으며 정신요양시설 운영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1954년 고아원으로 출발한 박애원은 70년대 중반 정신장애인 요양시설로 제2기를 시작한 후 내실 있는 성장을 해 현재는 260명의 정신장애인들이 생활하는 박애원 외에도 60여 명의 어르신들이 생활하는 노인요양시설 공경의 집, 그리고 30여 명의 정신장애인들이 사회복귀를 준비하는 새희망둥지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박애원이 걸어온 발자취 하나하나에는 긴 세월 생활인(시설에서 생활하는 정신장애인들을 일컫는 약식 표현)들과 함께 한 박성은 원장의 땀방울이 배어 있다.

“군에서 제대한 1976년, 선친(고 박춘식 목사, 박애원 4대 원장)을 돕기 위해 박애원에 발을 들인 후 40년의 시간이 훌쩍 흘렀습니다. 원장직을 맡게 된 지도 30년이 넘었구요. 그동안 세상도 많이 변했고, 박애원의 환경도 정말 많이 좋아졌지요.”  

선친의 뜻 따라 요양시설 운영 맡아

박애원 설립자인 장덕수 초대 원장은 미군의 도움을 받아 전쟁고아들을 돌보기 위한 시설을 마련해 20여 년간 운영을 했다. 하지만 미국으로부터의 후원이 끊기며 고아원은 문을 닫아야 했다. 폐허가 된 시설을 인수해 정신장애인을 돌보는 시설로 재 개원을 한 이가 바로 박 원장의 부친 박춘식 목사다. 당시만 해도 정신장애인들은 국가와 사회의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고 버림받은 생활을 하던 시절이었다.

“기피와 격리의 대상으로만 여겼던 정신장애인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돌보는 일이 쉬울 리 있겠습니까. 살림살이도 늘 빠듯했습니다. 국가에서 주는 지원이라는 게 현물로는 쌀·보리, 현금으로는 1인당 하루 100원이 책정된 부식비가 전부였으니까요. 겨울이면 연탄을 4명당 하루 한 장 주었으니 기본적인 난방도 제대로 하기 힘들었습니다.”

사회가 감당해야 할 역할을 민간에서 대신 하는 대가로는 너무도 형편없는 처우였다. 게다가 정신장애인들을 편견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도 넘기 힘든 벽이었다.
“한창 꿈 많고 혈기왕성하던 젊은 시절엔 선친의 일을 계승하기가 싫었어요. 그저 잠깐 돕고만 싶었는데, 할 일이 너무 많아 도저히 손을 뗄 수가 없더라구요.”

자신에게 주어진 숙명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하고 나니 방향이 선명하게 잡혔다. 박애원 시설을  좀 더 편안하고 쾌적하게 하는 것이 가시적인 과제였다면, 생활인들이 보다 자유롭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장기적이고 궁극적 목표가 되었다. 

아픔과 보람 마주하며 삶의 목표 다잡아

정신장애인과 함께 하며 가슴 아픈 사연도, 눈물겨운 순간도 헤아릴 수 없이 겪었다.
“소액의 입원비를 내지 못할 정도로 가난한 가족이 찾아와 ‘이제는 함께 죽으러 가는 길 밖에 없다’고 하소연하는 소리를 듣기도 했고, 중병에 걸린 노모가 정신장애인 아들을 남겨두고 떠날 수 없다며 ‘나보다 먼저 죽게 해 줄 순 없느냐?’고 눈물을 흘리며 한탄했던 기억도 쓰린 상처처럼 남아 있습니다.”

반면 보람된 일도 많았다. 정신장애인을 치료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던 가족들이 종교를 받아들이게 된 후 삶이 완전히 바뀌는 것도 목격했다.
“이전까지 원망과 불평 뿐이었던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니 기도의 내용도 달라졌다고 고백하더라구요. 막무가내로 병이 낫게 해 달라는 기도 대신, 늘 행복하게 웃는 환자가 되게 해 달라는 기도로 말입니다.”   

환자와 가족들이 긍정적으로 변하는 모습은 박 원장에게도 커다란 깨달음을 주었다.
“세상에서 성공한 친구들과 나를 비교하던 마음을 어느 순간 버리게 됐습니다. 박애원을 보다 좋은 곳으로 가꾸어 많은 이들이 인정하고 격려하는 시설로 만든다면, 의미 있고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나 스스로에게 말해 줄 수 있지 않겠어요?”  

 

2018년 어버이날 행사.

 
“개방시설 늘려 생활인 만족도 높이고파”

박 원장의 일관된 운영원칙에 따라 박애원은 생활인들이 시설 밖 일반인들과 자연스럽게 접촉하고 만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덕분에 생활인들의 자존감과 행복감도 어느 요양시설보다 높다. 정년을 4년 앞둔 박 원장은 남은 임기 동안에도 박애원이 추구해온 운영방향을 더욱 정착시키는 일에 자신의 여력을 집중하려 한다.

“가급적이면 생활인들을 자유롭게 개방시켜주고, 사회와의 접촉을 늘리려고 노력합니다. 현재 15%에 머물고 있는 개방 생활시설을 최종적으로는 50%까지 늘려야지요. 제 임기 중에 도달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힘닿는 데까지 기초적인 토대를 놓고 떠나려 합니다.”

새해 소망을 묻자 박 원장은 결혼 후 오랫동안 아이가 없었던 딸이 임신을 해 가정적으로 큰 기쁨을 선물 받는 해가 될 거라며 밝게 웃었다. 그러면서도 또 다시 정신장애인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을 부탁한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사실 독하고 성취욕 강한 사람에 비해 법 없이도 사는 사람들이 정신질환에 오히려 잘 걸립니다. 근본 심성은 참 착한 사람들이라는 것이지요. 새해에는 뜻하지 않은 병을 안고 고통받는 이들이 한 명이라도 더 당당하게 사회와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기를 함께 기원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박애동산교회와 공경의 집.
전국에서 가장 모범적인 정신장애인 요양복지시설로 평가받고 있는 박애원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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