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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잘린 응급 할머니 도운 풍동 ‘김현진 미용실’따뜻함 살아있는 동네사랑방의 힘
  • 이성오 기자
  • 승인 2018.01.05 02:06
  • 호수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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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실 가족 (왼쪽부터)남편 김영근, 아내 조성순, 아들 김우주.

군대 휴가 나온 미용실네 아들
병원까지 동행하며 5시간 간호
주변 독거노인 도와온 착한 가족
따뜻함 살아있는 동네사랑방의 힘


[고양신문] 30년 가까이 동네사랑방처럼 주민들의 휴식처가 되어준 미용실이 위기에 처한 할머니를 구했다. 지난 12월 30일 고양시 풍동의 한 아파트에 혼자 사는 박광자(75세, 여)씨가 요리 도중 손가락 끝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다. 놀란 박씨가 상처를 수건으로 감싼 채 무작정 달려간 곳은 다름아닌 동네 미용실이었다.

한참 일하고 있던 미용실 사장 조성순(46세)씨는 처음엔 박씨가 크게 다친 줄 몰랐다고 한다. “자세한 설명을 안 하시고 다쳤다고만 해서 우선 약국을 찾을 것을 권했죠. 나중에 알고는 크게 놀랐어요. 제 손이 덜덜 떨리더라고요.”

경황이 없어 지갑도 안 챙겼다는 박씨의 말에 조씨는 마침 군에서 휴가 나와 가게 일을 돕고 있던 아들에게 신용카드를 쥐어줬다. 특전사 하사로 근무하는 아들 김우주(23세)씨가 약국에 도착해 보니 박씨의 상태는 심각했다. 상처 부위를 확인한 약사가 이미 119를 부른 상태였다. 김 하사는 박씨와 함께 응급차를 타고 동국대일산병원으로 향하며 지혈을 도왔다. 병원에서도 미용실 가족의 도움은 이어졌다. 절단된 부위를 찾아오라는 의사 말에 김 하사와 어머니 조씨가 나섰고, 아들은 병원을 다시 찾아 수술이 끝날 때까지 5시간이 넘도록 박씨를 보살폈다.

박씨는 병원에서 김 하사에게 ‘우주야 배고픈데 이제 밥 먹으로 들어가라’고 말했는데도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자신과 함께 있어줬다며 고마워했다. 김 하사는 “부모님과 가족처럼 지내는 할머니인데 어떻게 모른 채 할 수 있겠냐”며 “응급실을 함께 간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박광자씨는 "미용실 가족의 도움으로 치료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일산동구 풍동 성원2단지 상가에 자리한 ‘김현진 미용실’은 이 동네에서만 30년 가까이 장사를 해온 오래된 가게다. 미용실을 운영하는 남편 김영근(53세, 개명 전 이름이 김현진)씨와 아내 조성순씨는 동네 주민들과 살갑게 지내는 것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부모가 그래서인지 아들 김우주씨도 가게를 찾는 동네 어르신들과 친밀하다. 이번에 사고를 당한 박씨와 같은 단골들은 ‘우주야’하며 이름을 부를 정도로 막역하게 지내고 있다.

자연마을이 아닌 일산의 아파트촌에서 어떻게 이런 옛정이 살아있는 가게가 운영될 수 있었을까. 이유는 손님을 이웃처럼 대하는 주인 부부의 따뜻한 마음 때문이다.

“젊어서부터 이곳에 미용실을 개업해 일했죠.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부터 일했으니 원주민 단골이 지금도 많아요. 손님 중에는 아파트에 혼자 사시는 노인분들이 많아서 가끔 집안일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하세요. 싱크대 문짝이 떨어졌다, 전기가 안 들어온다, 못을 박아달라는 등의 부탁인데 그때마다 매번 도와드리고 있어요.”

미용실을 찾는 이들 중에는 뜨내기손님이 거의 없다. 손님과 주인 부부는 집안 대소사까지 서로 챙겨가며 안부를 묻는다. 취재차 찾은 미용실에서 마주친 손님들도 대부분 군인 아들이 응급실까지 찾아가 도운 이야기를 이미 알고 있을 정도다. 평소 김씨 부부는 집 앞마당에서 기른 채소를 손님들에게 나눠주고 손님들은 김장김치를 선물한다. 손님들끼리 간식을 가져와 나눠먹기도 한다. 남편 김씨는 여름에 밖에 아는 얼굴이라도 지나가면 들어와서 에어컨 바람이라도 쐬고 가라고 말하는 살가운 남자다. 아내 조성순씨는 “올 겨울 손님들에게 받은 김치만으로 김치냉장고 두개가 가득 찼다”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지난 여름 휴가 나와 동네 자원봉사에 참여한 김우주 하사(사진 오른쪽 군복차림).

이곳 17년 단골이라는 박순옥씨도 이들 가족을 칭찬했다. 그는 “요즘 사람 같지 않고 정이 많은 가족이다. 오늘도 춥다고 손을 감싸고 들어왔는데 사장님이 드라이기 따뜻한 바람으로 손을 녹여줬다”고 말했다. 이어 “아들 ‘우주’도 참 착하다”라며 “짧은 군 휴가 기간에도 동네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며 봉사하러 다니는 훌륭한 청년”이라고 엄지를 치켜들었다. 남편 김영근씨는 “아들이 사병으로 있을 때에는 동료들이 직접 추천해서 받은 모범표창이 3~4개나 된다”며 “군에서도 솔선수범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칭찬했다.

이 동네에서 서로 안부 묻고 지내는 단골 손님만 해도 200명은 훌쩍 넘는다는 사장 부부는 미용 가격을 쉽게 올릴 생각도 없다. “동네분들 덕분에 제가 터 잡고 장사해 돈 벌 수 있었는데, 고마움 마음이 더 커서 많이 받을 생각 못해요.”

젊은이들부터 어르신들까지 찾는 풍동에선 소문난 동네사랑방 ‘김현진 미용실’. 단골인 박순옥씨는 “부부가 운영하는 작은 미용실인 이곳은 아파트가 빼곡한 신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사람 사는 옛정을 느끼게 하는 오래된 가게”라며 “고양시 동네 곳곳에 이런 가게들이 많이 생겨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성오 기자  rainer4u@mygo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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