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마을 21단지 주민들은 경비·청소원들도 우리의 이웃이기 때문에, 최저임금 인상을 이유로 해고되거나 부당한 처우를 받는 걸 막아야 한다는 뜻을 모아왔다. 이를 위해 입주자대표회의 참관, 주민토론회 개최, 주민안건 발의, 소식지 배포, 발언권 요청 등의 활동을 해왔다. 하지만 결국 입주자대표회의는, 주민이 내는 경비비는 휴게시간 1시간을 늘려서 한 푼도 인상을 하지 않고 정부가 주는 지원금 13만원만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주변에서는 그런 노력 때문에 해고를 막았고 어쨌든 임금이 13만원 올랐으니 ‘그나마 다행’이란다. 하지만 우리가 이 과정에서 느낀 건 소통이 불가능한 ‘철벽’이다. 

마을미디어 행신톡이 주최한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경비원 해고?’ 주민토론회는 그래도 희망적이었다. 우리 동네의 아파트 주민들은 물론, 경비원, 관리소장, 동대표들, 그리고 우리 지역 민경선 도의원 등 이해당사자가 모두 참여했기 때문이다. 서로 이해관계가 다른 사람들이 입을 모아 내린 결론은 ‘소통’이었다. 서로 소통만 잘 된다면 상생하는 아파트 문화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다들 말했다. 

하지만 이후 21단지에서 일어난 일들을 보면 ‘소통’이라고는 1도 없었다.

지난해 10월 입주자대표회의에 발의한 주민안건은, 인원감축을 하지 말아달라는 주문과 함께 그래도 감축하려 한다면 주민 의사를 물어서 결정해달라는 것이었다. 50세대가 넘는 주민들이 연서명을 했지만 입주자대표회의는 이 논의를 12월로 미루면서 사실상 안건을 폐기처분했다. 주민안건 발의 조건(20세대 연서명)의 두 배를 훌쩍 넘긴 주민들의 뜻을 깔끔히 묵살한 것이다.

12월 입주자대표회의가 다가오자, 주민이 내는 경비비는 올리지 않고 정부가 주는 지원금 13만원을 받아 8만5000원만 인상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이는 사실상 주민들 지원금의 나머지인 4만5000원을 떼어먹겠다는 소리다) 소식지를 만들어 전 세대 우편함에 꽂았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 이 소식지는 관리소장 지시로 경비원들의 손에 수거‘당했다’. 규약에 ‘10인 이상 주민들이 자율적으로 주민자생단체를 만들어 활동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음에도, 우편함에 뭔가 꽂으려면 관리주체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관리소장을 찾아갔더니 ‘동의’ 주체는 규약 상 관리주체(관리소장)이지만 사실상 입주자대표회의의 권한이라며 발뺌했다. 이에 대해 국토부에 질의를 했더니 지자체로 민원을 떠넘겼고 고양시는 이게 ‘동의 대상에 해당되는지 여부에 대하여 관리주체로 하여금 재고토록 권고했다’는 무책임한 답변만 반복했다.

그리고 12월 입주자대표회의. 무려 9명의 주민이 참관을 했다. 당연히 임금 조정 안건을 지켜보고 의견을 내기 위해서였다. 입주자대표회의는 이 안건이 오래 걸린다는 이유로 마지막 순서로 미뤘고 결국 참관인들은 2시간 반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그렇게 상정된 직원 임금 조정안건과 관련한 자료배포와 발언권 요청은 모두 묵살됐다.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은 결국 폐회를 했고, 발언권을 주지 않은 이유에 대해 선 ‘밥 안 먹은 동대표들도 있다’는 어이없는 대답을 했다. 참관 주민들은 그냥 ‘투명인간’이었던 것이다.

주민들은 분노와 절망에 휩싸였다. 하지만 따지고 따지면, 단지 일에 무관심했고 이런 소통 불능 끝판왕 입주자대표회의를 뽑아놓은 우리 주민들의 잘못이다. 그래서 자괴감과 비참함이 더 큰 것이다.

우리 21단지 주민들은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다. 요 몇 달간 깨닫게 된 소통 불능의 철벽…. 이 문화를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먼저, 내가 사는 공간에 대해 물리적인 것뿐 아니라 함께 사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해야 한다. 우리가 만들어 놓은 소통 불능 입주자대표회의, 입주자대표회의와 운명을 같이 하는 관리소장, 이 시스템 밑에서 그저 해고만 안 되길 바라는 경비·청소원들, 주민자생단체 활동에 대한 법과 규약에 대해 나 몰라라 하는 국토부와 고양시…. 이런 소통 불능 문화를 상생하는 문화로 바꾸기 위해서는 결국 주민들이 움직여야 한다. 위의 활동들은 그 움직임의 첫 출발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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