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 빛 시 론>

유정길 지혜공유협동조합 이사장/불교환경연대 운영위원장

네 발밑을 잘 살펴라

[고양신문] 절 집의 마루기둥에는 조고각하(照顧脚下)라는 글이 자주 쓰여있다. 그 밑 댓돌에 하얀 고무신이 가지런히 놓여있는 것을 보면 마음이 정갈해지고 정돈되는 것을 느낀다. 조고각하는 ‘지금 발 밑을 잘 살펴보라’는 뜻으로 발 딛는 그 순간을 잘 살피라는 것이다. 신발을 벗는 그 순간 마음을 놓치지 않고 신발은 가지런히 벗어놓는다. 급히 벗어 던져 널부러진 것도 모르고 황급히 방에 들어갔다면 신발을 벗는 그 순간에 집중하지 못하고 마음은 이미 방에 먼저 들어가 있는 것이다. 마음이 현재에 있지 않고 앞질러 미래에 가있는 것이다.

10여년 전에 크게 인기를 얻었던 헐리우드의 에니메이션 ‘쿵푸팬더 1편’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Yesterday is history. <어제는 (지나간) 역사이고> 
Tomorrow is a mystery. <내일은 (알 수 없는) 신비로운 것> 
Today is a gift. <오늘은 선물이다.> 
That is why it is called the ‘present ’ <그래서 그것을 현재라고 부른다>”

알다시피 Present는 ‘현재’라는 뜻과 ‘선물’이라는 두 가지 뜻을 갖고 있다.

어제는 역사, 내일은 신비, 오늘은 선물

사람을 힘들고 괴롭게 만드는 것은 과거에 대한 기억에서 비롯된다. 과거에 받았던 심리적 상처와 열등의식, 피해의식과 좌절감과 박탈감 등이 스스로 자신감을 위축시키고 현재 삶의 긍정성을 약화시킨다. 그로 인한 자존감의 부족은 경쟁사회에서 끊임없이 주변사람과 비교하게 만든다. 자신보다 못했던 어린시절의 친구가 나보다 잘되어 나타날 경우 느끼는 피해의식, 옆사람이 하는 일을 따라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불안감 등이 엄습한다. 이러한 괴로움은 결국 과거 기억에서 비롯된다.

반면, 모든 걱정은 미래에 대한 생각 때문이다. 더 높고 좋은 학벌이 아니면 경쟁에 살아남을 수 있을지, 다양한 스펙을 쌓아놓지 않으면 뒤처지는 것은 아닐지, 현재의 직업으로 제대로 먹고 살게 될 수 있을지 항상 염려하고 걱정한다. 그래서 돈을 많이 저축해야 안심이 되고, 연금과 적금과 기타 재산이 충분하지 않으면 자신의 노후와 앞날, 미래가 불안하다. 보험, 연금, 장례 등의 산업은 이러한 미래불안을 증폭하거나 이용하기도 한다. 이렇듯 모든 걱정은 미래에 대한 생각 때문이다.

괴로움은 과거에서, 걱정은 미래에서

현대인은 이렇게 과거 때문에 괴로워하고 미래 때문에 걱정하며 살고 있다. 현재의 삶을 100이라고 하자. 그런데 과거에 대한 괴로움으로 30%를 소비하고,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30%를 소비한다면 현재의 삶에 그저 40%밖에 투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삶에 100%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 현존일념(現存一念)의 삶이 아닌 것이다.

생각해보라. 과거는 지나가서 사라졌다. 그저 자신의 기억 속에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기억상실증에 걸렸다고 가정하면 괴로워 해야 할 과거란 없다. 그러면 미래는 실재하는가? 미래는 오로지 상상과 생각, 염려 속에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과거와 미래 모두 있지도 않은 생각과 상상 속에만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어리석은 우리들은 사라진 과거를 현재로 끌어와서 괴로워한다. 또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끌어 당겨와서 미리 걱정을 만든다. 존재하지 않는 망념이 자신을 괴롭히며 갉아먹는 것이다. 미래는 걱정한다고 오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삶을 100%로 집중하여 최선을 다하다보면 그 현재가 차곡차곡 쌓여 생각지도 않은 다양한 길이 만들어지고 새롭게 보이면서 미래가 되는 것이다. 걱정은 결코 미래를 가져오지 못한다. 그래서 현존일념(現存一念)이다.

현존일념, 카르페 디엠

무술년의 새해가 시작되었다. 아무리 경제가 어렵다고 해도 우리는 GNP, GDP대비 전 세계 상위권의 풍요로운 나라다. 그런데 왜 행복하지 못할까? 사회안전망이나 보편적복지 시스템이 부족해서일까? 물론 시스템이 중요하며 할 수 있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나 깊은 행복감은 외부적 변화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물질적 풍요를 다스릴 품위 있는 정신적 풍요, 마음의 풍요는 이렇게 현존일념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잊지 말자. 현재 삶에 집중하자는 ‘카르페 디엠’도 결국 같은 지혜의 표현이다.

황금보다. 소금보다, 현금보다, 더 좋은 것 바로 ‘지금’이라고 하지 않는가. 과거의 괴로움과 앞날 걱정은 공연한 분별망상이다. 이 두 가지가 끊어진 경지, 현재 삶에 오롯이 집중하는 행복한 해가 되자.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