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 도내동 구석기 유물 관련 설명회 개최

유물산포지 현장과 유물 일부 전격 공개
4만~7만 년 전 구석기 유적 8000여점 쏟아져
고속도로 건설, 문화재청 판단 등 변수 주목
최성 시장 “국립박물관 설립 정부에 건의할 것”

 

발굴 현장. 경사면을 따라 원석과 뭉칫돌이 뒤섞여있다.


[고양신문] 구석기 시대 유물 8000여 점이 한꺼번에 발견된 고양시 덕양구 도내동 발굴 현장이 공개됐다. 고양시는 8일 도내동 구석기유물 산포지(다수의 유물이 흩어져 발굴된 지역)에서 현장 설명회를 열었다. 최성 시장이 직접 나서 입장문을 발표한 이날 설명회에는 촉박하게 마련된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취재진과 관련 부서 공무원, 시민 등 100여 명이 참석해 최대 규모의 구석기 유물 출토 현장에 대한 각계의 비상한 관심을 증명했다.

수만 년 동안 땅속에 잠들어 있던 구석기 유물들은 서울~문산 간 고속도로 건설에 앞서 진행된 문화재 발굴조사를 통해 모습을 드러냈다. 발굴조사는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재)겨레문화유산연구원이 진행했다.
 

현장에서 공개된 발굴 유물 일부. 주먹도끼, 자르개, 찌르개 등 다양한 형태의 구석기가 한꺼번에 발견됐다.

 

원석과 다양한 구석기 유물 함께 발굴돼

가림막을 걷고 모습을 드러낸 발굴 현장은 놀라웠다. 4500여 평 발굴조사지의 경사면을 따라 구석기의 원재료로 추정되는 흰 바위들이 드러나 있고, 암석 층 사이사이로 채 수습되지 않은 돌뭉치들이 박혀 있었다. 공개 현장에는 돌날, 찌르개 등 수습된 구석기 유물 수백 점이 함께 공개됐다. 자르고 찍고 두드리는 기능을 함께 갖춰 ‘구석기 맥가이버 칼’이라는 별명이 붙은 주먹도끼도 참석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한반도 구석기 역사 밝힐 획기적 발견 평가

발견된 구석기 유물은 우선 수량에서 압도적이다. 현재까지 8000여 점이 수습됐는데, 2월부터 재개될 추가 발굴이 완료되면 최종 수습 수량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유물의 연대는 4만 년에서 7만 년 전으로 추정된다. 중기와 후기 유물이 한자리에서 나온 것. 하지만 유물의 연대가 아직 확증된 것은 아니다. 설명회에서 브리핑을 한 김우락 겨레문화유산연구원(발굴조사 진행 기관) 연구원은 “유적의 층이나 유물의 형태적 특성을 봤을 때 중기 구석기 유물로 추정되지만, 숯과 같은 연대 분석 가능한 시료가 발견되지 않아 아직 시기를 명확히 지정할 순 없다”고 밝혔다. 이어 “추가 조사와 유물 분류작업이 끝나면 구체적인 연대와 시기를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수량과 연대보다 더 주목해야 할 점은 발견 형태다. 한꺼번에 많은 양이, 그것도 중기와 후기 유물이 한 장소에서 집중 출토된 경우는 국내 최초인데, 이는 이곳이 오랜 기간 동안 ‘구석기 제조공장’으로 이용됐을 거라는 추정을 가능케 한다. 원석이 풍부한 이곳에서 구석기를 만들어 다른 곳으로 보급한 것으로 보인다. 조사를 통해 구석기 제조공장으로서의 기능이 학문적으로 확인된다면 고양시 도내동은 한반도 구석기인들의 생활상을 밝히는 가장 중요한 선사 유적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높다.
 

이날 설명회는 성과 보고, 입장문 발표, 질의응답, 현장 답사 순으로 진행됐다.
채 수습되지 않은 석기 파편들이 흙속에 파묻혀 있다.

 
최 시장 “고양시 전역 종합박물관으로 조성 추진”

유물 산포지는 지형적으로 창릉천과 성사천이 가까이에 흐르고 뒤편으로 나지막한 구릉(봉재산)이 펼쳐져 있으며, 지질학적으로 구석기를 제조하는 데 사용되는 석영 원석이 풍부해 구석기 제조공장으로서의 최적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지번은 고양시 덕양구 도내동 787번지 일원이며, 권율대로를 타고 이케아에서 행신동 방향으로 조금만 진행한 후 왼편을 바라보면 유물 산포지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최 시장과 고양시가 아직 문화재청의 평가작업이 시작되지도 않은 유물과 유적에 대해 서둘러 현장 설명회를 개최한 것도 도내동 유물산포지의 잠재적 가치를 매우 중요하게 평가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최 시장은 설명회에서 “도내동 발굴현장은 구석기 종합박물관이라 할 수 있으며 국사 교회서를 다시 써야 하는 일대 사건”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또한 한반도 최초 재배볍씨로 확인된 고양가와지볍씨, 덕이동과 탄현동의 구석기 유물 등과 연계해 고양시를 역사문화 중심도시로 부각시키는 핵심 콘텐츠로 활용할 것을 천명했다.

최 시장이 별도의 입장문을 통해 밝힌 핵심 내용은 ▲도내동 구석기 유적과 유물이 원형 보존되어야 하며 이를 문화재청 등 정부기관과 긴밀히 협의해 나갈 것 ▲고양시 곳곳에 산재한 문화유산을 자체 조사, 발굴하여 고양시 전 지역을 역사와 문화가 숨쉬는 종합박물관으로 조성할 것 ▲추진 중인 고양시 역사박물관 사업을 위해 국도비를 최대한 유치하고 국립박물관 유치도 정부와 적극 협의할 것 ▲그동안 중앙정부가 주도해 온 문화재 정책에서 벗어나 지방정부와 지역주민이 함께 참여하는 협치적 법 개정을 건의해 지방분권시대를 열어갈 것 등이다.

지역 원로들도 구석기 유물 발견을 반겼다. 이은만 문봉서원장은 “한반도 최초의 재배볍씨가 발견됐음에도 가와지볍씨가 발견된 유적이 개발 논리에 밀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선례가 있다”면서 “유물 보존을 넘어 유물이 발견된 유적의 원형이 절대적으로 보존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내동에 600여 년 대대로 살아온 지역 토박이 이세준 전 고양향교 전교는 “어릴적부터 도내동과 원흥동 일대는 돌이 많은 동네로 유명했다”고 회고하며 “흔하게 여겼던 돌멩이들이 어마어마한 역사를 품고 있었다니 놀랍고 감격스럽다”며 기뻐했다.
 

발굴 시행기관인 겨레문화유산연구원 김우락 연구원(사진 오른쪽)이 발굴 성과를 설명하고 있다.
유적 발견에 따른 고양시 입장문을 발표하고 있는 최성 시장.


고속도로 건설, 문화재청 판단 등 과제 산적

하지만 도내동 유물산포지가 원형대로 보존될지 여부는 섣불리 판단하기 힘들다. 앞서 밝혔듯 도내동 유물산포지의 위치는 서울-문산 고속도로 행신 나들목이 들어설 자리이기 때문이다. 유물은 수습해 보존하면 되지만, 유적을 보존하려면 나들목 위치 변경 등 공사 자체의 재설계가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고민을 반영하듯 최 시장 역시 현장에서 진행된 질의 응답에서 민감한 사안에 대해 말을 아꼈다. 서울~문산 고속도로 설계 변경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유물 가치는 최종적으로 문화재청에서 판단한다”면서 “향후 활용 방안에 대해 시민과 지방정부가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적극 협의해 갈 것이라는 의지를 표명하기 위해 설명회를 여는 것”이라는 원론적 입장만을 내놓았다.

최 시장의 답변대로 현재 발견된 유물과 유적에 대한 공식적 판단 주체는 문화재청이다. 따라서 아직 1차 발굴조사기관의 공식적인 발굴작업도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중앙정부와의 협의 없이 지자체장이 먼저 공개 설명회를 주관한 것은 절차상 섣부른 행보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최 시장은 문화재청과의 사전 협의는 없었음을 인정하며 “오늘 이후 문화재청과 공식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발굴조사는 동절기 날씨를 고려해 잠정 중단된 상태다. 겨레문화연구소 측은 “다음달 중순 이후 2차 발굴조사를 재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발굴된 유물과 유적에 대한 정밀한 조사를 바탕으로 가치를 평가해 추가 발굴과 현장 보존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5월 경 윤곽을 드러낼 문화재청의 결정에 귀추가 주목될 수밖에 없다.

 

고양시역사박물관 사업 가속도 붙을 듯

최 시장이 발표한 입장문에서 밝힌 것과 같이 고양시는 행정력을 집중해 문화재청, 국토교통부, 서울~문산 고속도로 시행사 등 유관 기관과의 긴밀한 협의를 진행하는 동시에 고양시에 산재한 다양한 역사 유물과 유적을 아우르는 종합적 문화유산 정책을 수립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구석기 유적 발굴을 계기로 지난해 추진위를 결성한 ‘고양시역사박물관’ 사업에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설명회 현장에서 만난 한 박물관 추진위원은 “그동안 고양시역사박물관을 대표할만한 역사 콘텐츠를 무엇으로 정해야 할지를 두고 추진위원들 간에 의견이 엇갈리곤 했는데, 이번 구석기 유적 발굴로 고민이 해소될 것 같다”며 기대감을 표했다.

이날 설명회에는 언론사 기자, 관련 공무원, 유관기관 관계자, 시민 등이 참석해 대규모로 모습을 드러낸 구석기 유물에 대한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관계자들과 현장에서 향후 일정을 논의하고 있는 최성 시장. 시의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 도내동 구석기 유적의 가치와 의의를 조명할 것을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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