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사람들> 어린이도서연구회 일산지회

94년부터 어린이ㆍ청소년 책 보급
도서관ㆍ학교 찾아가 동화책 읽어주기 활동 

 

지역의 한 초등학교에서 동화동무 씨동무 활동을 진행하는 모습 <사진제공=어린이도서연구회>


[고양신문] 창 밖에는 연일 최저기온 기록을 갈아치우는 맹추위가 몰아치지만, 대화동 한 건물에 자리한 (사)어린이도서연구회 경기북부지부 일산지회(지회장 권진, 이하 일산지회) 사무실 안은 훈훈한 온기가 가득하다. 올해 사업계획을 논의하는 부서별 모임에 참여하는 회원들의 표정에 진지한 열정과 기대감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재밌고 가치 있는 책을, 좀 더 많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좀 더 많은 이들의 참여를 끌어 모아 소개할 것인가를 두고 유쾌하고 즐거운 이야기가 그칠 줄 모르고 오간다.

어린이 책 문화운동 개척

(사)어린이도서연구회(이하 어도연)는 어린이 책 문화 운동을 하는 모임이다. ‘겨레의 희망, 어린이에게 좋은 책을’이라는 모토에서도 알 수 있듯 이 땅의 모든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보다 좋은 책을 보다 가깝게 접할 수 있도록 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지역별로 조직을 꾸려 운영되는데, 2017년 기준으로 전국 12개 지부, 90개 지회에 3000여 명의 정회원과 2200여 명의 후원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어도연이 활동을 처음 시작하던 80년대 초만 하더라도 어린이책은 세계명작동화류가 거의 전부였다. 물론 국내 작가들이 쓴 좋은 책들이 꾸준히 나왔지만, 그 책의 가치를 알아봐주는 이들은 드물었다. 그래서 어린이도서연구회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우리나라 작가가 쓴 우리 책 보급운동이었다.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은 어린이책을 발견하면 서로 돌려 읽고 주변에 권하는 일을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골라진 책들은 어도연 권장도서 목록으로 갈무리했다. 지금도 매년 발간되는 ‘어린이도서연구회가 뽑은 어린이·청소년 책’ 소책자는 가장 공신력 있는 추천 도서 목록으로서의 위상을 지키고 있다. 일산지회 양혜진 회원은 어도연 선정도서의 가치를 이렇게 설명했다.

“전국의 수많은 회원들이 지속적으로 읽고 토론하며 찾아낸 책들 중 신중하게 골라 목록을 선정합니다. 현장에서의 경험과 아이들의 반응이 함께 반영됐다는 게 특정 서점이나 평론가가 선정한 추천도서와 다른 점이지요. 소책자 발행작업도 광고를 일절 받지 않고 회원들의 회비만으로 진행합니다.”

그런 까닭에 매년 어도연 선정도서 목록을 기다리고, 독서운동 현장에서 유용하게 활용하는 이들이 많다.
 

세월호 3주기 추모문화제 활동 <사진제공=어린이도서연구회>

좋은 책 추천 넘어 찾아가 읽어주기

어도연 일산지회는 일산신도시 입주가 시작되던 해인 1994년 결성됐다.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이사를 온 젊은 엄마들 사이에서 아이에게 좋은 책을 읽어주고, 비슷한 육아 경험을 하는 이들과 교류하고자 하는 열망이 뜨거웠던 것이다. 현재 일산지회는 76명의 정회원과 48명의 후원회원이 각자의 여건과 역량에 따라 다양한 활동을 펼치며 전국에서도 가장 모범적인 지회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일산지회는 좋은 어린책에 대한 정보를 서로 공유하는 일과 함께 아이들이 있는 곳을 찾아가 책을 직접 읽어주는 일을 병행하고 있다. 회원 가정의 자녀뿐 아니라, 이 땅의 어린이와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책을 읽을 권리를 동등하게 누려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이런 취지를 실현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는 공공도서관이었다. 일산지회 역시 활동 초기부터 가장 먼저 만들어진 마두두서관을 찾아가 도서관 견학을 온 유치원생 등을 대상으로 책 읽어주는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범위를 점점 확장해 지난해 공공도서관, 학교, 마을의 작은도서관과 지역아동센터, 복지기관 등 15개 장소에서 책읽기를 진행했다. 양혜진 회원은 “최근에는 아이들의 접근성이 가장 좋은 학교로 직접 들어가 책을 읽어주는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험이 쌓이다 보니 전문적 노하우와 소양이 축적돼 어린이 독서운동 활동가들을 꾸준히 교육하고 배출할 수 있었다. 현재 일산지회에서 책읽기 교육을 받은 활동가들이 지역의 독서생태계를 구성하는 크고 작은 장소마다 포진해 있다.

올해 새롭게 일산지회를 이끌게 된 권진 지회장은 “선배들이 든든한 뿌리가 돼 주고, 꾸준히 들어오는 신입 회원들이 새로운 열정을 보태 올해도 신나고 보람찬 일들을 많이 펼칠 것”이라며 관심을 부탁했다.

현재 일산지회는 2018년도 신입회원을 모집하고 있다. 신청자는 소정의 교육을 받은 후 활동에 참여하게 된다. 문의 010-2456-0906(일산지회 교육부장)    
 

<호수공원작은도서관에서 진행한 즐거운 책읽기 행사 <사진제공=어린이도서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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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가족의 삶을 바꿔 준 어린이 책 

▲ 회원들이 말하는 어도연 활동의 매력

어린이도서연구회 일산지회 회원들은 “외형적 활동의 확대보다 더 중요한 것은 회원 개개인의 변화와 성숙”이라고 입을 모았다.
회원들이 처음 일산지회의 문을 두드린 동기는 대개 비슷하다. 한마디로 “우리 아이에게 읽어 줄 좋은 책을 추천받고 싶어서”다. 하지만 활동에 참여하며 책과 독서 행위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변화를 경험했다.

아이들이 다 자라 어린이책을 놓을 나이가 돼도 여전히 어도연에 남아 활동하는 회원들이 많은 데는 이유가 있었던 것. 일산지회에도 10년 이상 활동한 회원들이 상당수이고, 20년 이상 활동한 회원도 있다.
 

어린이도서연구회 일산지회에서 활동하는 김경희, 양혜진, 신정욱, 이혜원, 배준희, 오연원, 권진(현 회장), 김경민 회원.

 
이혜원씨는 친밀하고 정겨운 모임 문화를 일산지회의 매력으로 꼽았다.
“여기에 오면 만날 웃게 돼요. 성향은 각각 다르지만, 책이라는 매개가 있어서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되더라구요. 좋은 책도 만나고 좋은 사람들도 만날 수 있어 늘 고맙지요.”

2013년 말 일산으로 이사를 와 도서관을 찾았다가 일산지회에 들어온 김경민씨는 1년 동안 신입회원 교육을 받으며 공부에 대한 열정이 자신도 모르게 샘솟았다고 말했다.
“어린이책이 단지 어린이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내 마음을 움직이고, 나를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들이 가득했거든요. 새로운 책을 하나하나 만나는 설렘이 너무 즐거워요.”

그렇게 어린이책의 세계 속으로 본인 스스로가 깊이 들어가게 되니 자연스레 아이와의 소통의 폭도 넓어졌다. 일상적인 소재를 넘어서는, 보다 확장된 관심사를 아이와 교감하는 재미를 어린이책이 선물해 준 것이다. 

100일이 지난 아이를 업고 어도연의 문을 두드렸다는 신정욱씨는 “산후우울증에서 어떻게든 벗어나려는 이기적인 마음에서 일산지회를 찾았다”고 웃으며 말했다. 정욱씨에게도 어도연 활동은 ‘나와 가족의 삶을 바꾸는’ 소중한 인연이 됐다. 
“내가 책을 펼쳐들면 자연스레 아이가 다가와 함께 봐요. 신랑도 이번에 읽는 책은 뭐냐며 관심을 보이구요. 가족만의 교집합이 생긴 부분이 너무 재밌어요.”
그는 현재 8살과 4살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아이들이 자라서도 ‘항상 책을 읽어 준 엄마’로 기억해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배준희씨 역시 어린이책과 단단히 사랑에 빠진 회원 중 하나다.
“예전에는 소설을 많이 읽었는데, 요즘에는 무거운 내면적 정서에 빠져드는 소설보다는 아름답고 예쁜 이야기가 담긴 동화책이 더 좋아졌어요. 내면의 에너지를 충전해준다고나 할까요.”
준희씨는 현재 학교를 찾아가 동화책을 읽어주는 동화동무씨동무 활동을 하고 있고, 복지기관에서도 책읽기 봉사를 펼치고 있다.
“결혼과 출산을 하며 ‘경력 단절’에 대한 허전함이 있었는데, 작은 사회활동을 시작하는 보람을 느낍니다.”

올해로 9년째 활동하고 있는 김경희씨는 큰아이가 성년이 됐는데도 일산지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개인적인 고민이 있으면 세상에 그것밖에 안 보이는데, 여기 와서 내 문제를 작게 보는 법을 배웠어요. 책의 힘이지요. 어도연이 아니면 만나지 못했을 책들이 많아요. 예를 들자면, 전쟁이 끝난 후 나온 동화들은 무척 감동적이에요.”
경희씨는 평생 마음에 품고 갈 ‘나만의 독서 목록’이 차곡차곡 쌓이는 것이 기쁘다고 밝혔다. 나아가 우리나라 작가들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깊어지며 어린이 출판 시장 전체를 읽는 시선도 생겼다고 말했다.

일산지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오연원씨는 지역아동센터나 복지기관, 작은도서관, 학교 등을 찾아다니며 책읽어주기 활동에 폭넓게 참여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확장되는 것을 경험했다고 한다.
“책읽어주기를 하려면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어떤 책을 선택해 가야 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내 아이와 주변 친구들만 바라보던 시선에서 벗어나 다른 형편과 처지의 아이들을 들여다보게 되지요.”

시야의 확장은 지역 공동체, 나아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공공적 의제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일산지회가 세월호 연대 활동이나 도서정가제 토론 등에 참여한 이유다.
연원씨는 “연차가 쌓일수록 지역공동체로 관심이 자연스레 확장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걸 강요하지는 않는 것이 또한 모임의 장점”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올해 일산지회장을 맡게 된 권진씨는 6년 동안의 어도연 활동이 삶을 대하는  태도를 변화시켜줬다고 말했다.
“재작년에 아이 학교에서 책읽어주기 프로그램을 제가 적극적으로 진행했어요. 원래 나서거나 뭔가를 권유하는 성격이 전혀 아닌데, 예전에는 상상도 못할 엄청난 변화죠. 혼자 할 수 없는 일을 함께 할 수 있도록 용기 얻는 곳, 제게 어도연은 그런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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