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권우 도서평론가

[고양신문] 나이가 오십 줄을 넘어선 지 한참 지났다. 살아가는 꼴을 보면 아직 20대인 줄 알

고 천방지축이지만. 그래도 나이는 속일 수 없는 모양이다. <논어>에 나온 지천명(知天命)이라는 구절을 자주 곱씹는다. 이 말에 저항감이 있었다. 천명이라 하면 이미 정해진 그 무엇이 있고 이를 따라야 한다고 여기기에 십상이다. 천이라는 말에 들어 있는 무게감을 느껴서일 테다.

지천명을 달리 해석하는 데 도움이 된 책이 있다. 강상중의 <구원의 미술관>이다. 이 책에 보면 디아스포라 예술가 이야기가 나온다. 본토와 아비의 집을 떠나 유랑의 삶을 살아야 했던 이들에게 공통점이 있으니, 도예가였다는 점이다. 이 이야기를 하며 강상중은 ‘받아들이기’를 말한다. 도예가는 자신의 예술혼으로도 통제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빚은 자기를 가마에 넣고 구울 때다. 가마에서 꺼냈을 적에 그 작품이 성에 차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받아들여야 한다. 강상중의 받아들이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부숴 버리고 다시 빚어 가마에 넣고 또 굽는 일까지를 포함한다. 그러니 디아스포라 도예가의 삶은, 아 놀라워라, 그들의 예술과 상동하다. 산산이 부서진 삶을 받아들이되, 그 가혹한 운명에 무릎 꿇지 않고 각고의 노력으로 예술가로 거듭났으니까. 강상중의 책을 읽으며 나는 천명을, 진인사(盡人事)하되 대천명(待天命)하고, 그 결과에 따라 다시 진인사하는 시시포스적 삶이라 판단했다.

동양에서 천명은 본디 하늘과 왕자의 관계방식을 가리켰다. 은나라 시절까지 천명은 일방성이었다. 하늘의 뜻을 이어받은 왕조의 영속성을 강조하는 지배이데올로기로 작동했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왕조가 교체되면서 천명은 일방성에서 쌍방성으로 바뀌었다. 백성이 지지하는 정치세력이 천명을 받은 것으로 이해되었으니, 신정근은 이를 ”명은 하늘과 왕자가 사물과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것만이 아니라 사람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지속과 단절로 나뉠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내게 되었다”고 풀이했다. 이를 흥미롭게 확인할 수 있는 게 명과 관련한 낱말을 훑어보는 일이다. 다시 신정근의 글을 인용하자면, “명의 방향과 정체를 아는 것이 지명(知命)이고, 알게 된 명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순명(順命)이고, 주어진 명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 위명(委命)이다. 주어진 명을 어기는 것은 위명(違命)이고, 더 적극적으로 주어진 명에 거스르며 맞서는 것이 역명(逆命)이고, 그보다 더 나아가서 현재 정당한 명을 뒤엎고 새로운 정당한 명을 만드는 것이 혁명(革命)이다.”

명에 관련한 낱말 다발을 보면 그것은 결국 “벗어날 수 없는 한계이면서도 그 안에 자신의 최대치를 해내게 하는 범위”를 뜻한다는 신정근의 풀이에 동의하게 된다. 살면서 우리는 삶의 한계를 이겨내기 위해 애를 썼다. 그래서 좌절과 고통을 겪었지만 오늘 나의 삶을 일구어냈다. 그런데 곱씹어 볼 문제가 있다. 지천명이라는 깊은 깨달음을 내뱉은 공자의 나이가 50이었다는 점이다. 그때도 그는 한계를 돌파하는 것만을 지천명의 뜻으로 풀이했을까? 사(士) 계급 출신이지만 대부의 자리에 올랐고, 자신의 정치철학을 설파하려고 중국 땅을 주유했다. 환대받기도 차별받기도 하고, 목숨이 위태로워지고 했고, 조롱을 당하기도 했다. 그 숱한 영욕의 세월을 거친 50의 나이에 공자가 말한 명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 나이가 지나보니, 삶의 지혜 가운데 하나는 한계를 아는 것, 강상중의 표현을 다시 빌리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싶다.

참된 공부가 무엇인지 고민한 엄기호의 글에서도 나와 비슷한 깨달음을 발견한 기쁨을 누렸으니, “아는 것과 모르는 것, 할 줄 아는 것과 할 줄 모르는 것을 아는 사람이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한계를 알기 때문에 섣불리 나서서 세상을 망가뜨리지 않는다. 오히려 세상을 조심스럽게 다루며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물론 그 한계에 머무르지도 않는다. 한계를 알기 때문에 오히려 조심스럽게 그 너머를 보며 성장을 도모한다”라고 말했다.

우리 테니스 역사에서 최초로 그랜드슬램 4강에 오른 정현은 부상 탓에 더 좋은 경기를 보여줄 수 없자 기권했다. 그에게서 공자가 말한 지천명의 뜻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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