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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시대, 철학과 예술의 자리는 어디일까조광제 철학자 귀가쫑긋 강연
  • 정미경 시민기자
  • 승인 2018.02.09 19:21
  • 호수 1358
  • 댓글 0

현대 예술, 낯섦과 이질성에 주목
로봇은 감각과 욕망이 없는 존재
“인공지능, 실제 예술을 향유하는 존재일까?”

 

지난 2일 인문학 모임 '귀가쫑긋'에서 '인공지능 시대에 다시보는 철학과 예술' 강연을 한 조광제 박사


[고양신문] 인공지능 시대가 점점 우리 앞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이에 따라 인간의 삶, 존재 자체가 근본적으로 변화할 것으로 예고되고 있다. 이런 때 일수록 인간성을 지속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근본 영역이 부각되기도 한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예술이다.

지난 2일 인문학 모임 귀가쫑긋에서는 철학자 조광제 박사가 ‘인공지능 시대에 다시 보는 철학과 예술’을 주제로 열띤 강의를 펼쳤다. 당일 강연장은 준비된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많은 시민들이 함께 해 뜨거운 관심을 표했다.

조광제 박사는 서울대 철학과 출신으로 그동안 대학에서 철학과 회화론에 관한 강의를 했고 현재 ‘철학아카데미’ 상임위원으로 도서관, 교도소, 문화센터 등 다양한 삶의 자리를 찾아가 강의를 하고 있다.

그는 『의식의 85가지 얼굴들』, 『몸의 세계, 세계의 몸』, 『존재의 충만, 간극의 현조 1,2』, 『회화의 눈, 존재의 눈』 등 다수의 철학 관련 책을 썼다. 이날 강의는 미술에 관한 철학적 해설서인 『미술 속, 발기하는 사물들』의 내용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철학과 예술 인간(homo artis)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강의였다. 강의 주요 내용을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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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간은 왜 행동할까?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항상 크고 작은, 혹은 단기적이고 장기적인 과제가 설정되게 마련이다. 이런 과제가 포함되어 있고 행동이나 욕망이 충족되는 전체적인 구조를 ‘상황’이라고 한다. 상황을 크게 보면 어떤 과제와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 타인과 연결되어 있는 것을 철학에서는 ‘대타성’이라고 한다. 우리의 모든 욕망과 모든 행동은 대타성을 띠게 된다.  

철학의 궁극의 목표는 생각이 아니라 행동하는 것이다. 사람은 끊임없이 새로운 욕망을 욕망한다. 교육이 새로운 욕망을 불어 넣는다. 어떤 욕망을 갖느냐에 따라 사람이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진다. 이때 행동은 누가 하는가? 바로 내가 한다. 이 경우 나는 타인이 아니고 ‘나는 나다’라는 생각을 ‘자성’이라고 한다. 나라는 것이 성립되기 위해 자성이 필요하고, 상대방과의 대타성을 통해 내가 내용을 갖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활동을 한다. 그것들은 지나가 버리지만 흔적과 기억을 남긴다. 지금 여기서 이루어지는 활동은 계속해서 흔적의 흔적으로 축적이 된다.

19세기를 마감하면서 예술은 신비감과 아름다움의 문제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존재론적인 문제, 특히 사물의 낯섦과 이질성을 근본 주제로 삼기 시작했다. 20세기 전반 세잔과 피카소를 거쳐, 현대 예술의 지형을 바꾼 마르셀 뒤샹, 앤디 워홀, 백남준 등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철학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이와 함께 대 격변이 예고되는 인공지능 시대에서의 예술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인간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로봇이 설사 초인간적인 인공 범용 지능(super-human 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을 갖춘다 하더라도 인공지능은 감각이나 욕망이 없다. 전자기적인 파동을 자극으로 받아 바로 행동으로 옮길 뿐이다. 예술은 감각을 바탕으로 해서 그 감각의 세계로 온통 뛰어듦으로써 성립된다.

로봇은 감각이 전혀 없는데도 우리가 보기에는 마치 감각이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인간이 파란색을 보고 빨간색을 볼 때 행동을 달리하는 것처럼 로봇도 그렇게 행동한다. 마치 색을 보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실제로는 보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소리를 듣듯이 듣는 것도 아니다. 로봇은 욕망이 없는데 상황 속에서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는 등 마치 욕망이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예술의 결과물을 염두에 두면 인공지능 로봇도 얼마든지 예술 작품을 만들 수 있다. 그들도 마치 예술을 향유하는 것이 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가능한 것처럼 보이는’지 ‘실제로 향유하는지’를 분간할 길이 없다. 우리가 이것의 차이를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가 앞으로 큰 이슈가 될 것이다. 이 문제가 오늘날 인간이 당면한 가장 중요한 철학적인 문제 중 하나다.
 

강의 중인 조광제 박사와 청중들

정미경 시민기자  gracesophi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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