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어』 장수연 PD 북토크

아이에게도 “무해한 사람이 되려면 끊임없이 살필 줄 알아야...”

[고양신문] MBC 라디오 PD, 딸 둘 엄마, 권태형 연인, 페미니스트, 취미는 음주와 독서, 장래 희망은 작가’. 장수연 MBC PD의 SNS 계정 자기소개글이다. 그가 작년 11월 출간한 『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어』는 음주와 독서가 취미였던 스물 몇 살의 대학생이 라디오 PD, 페미니스트, 작가, 아내, 엄마라는 프로필을 갖게 된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그의 책은 불과 두 달 만에 5쇄를 찍었다. 화제를 몰고 온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의 실사판 같다는 평을 듣는다. 지금은 밤 10시에 테이가 진행하는 ‘꿈꾸는 라디오’를 맡고 있다.
한양문고와 페미니즘 독서모임 달·살·려의 공동기획으로 지난 22일 장수연 PD의 북토크가 열렸다. 주요 내용을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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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한양문고에서 북토크를 진행한 장수연 PD


살면서, 직장 다니면서, 아이 키운 이야기를 쓴 건데 책 한 권이 나왔다. 그만큼 많은 일들을 겪는다는 의미다.
엄마가 아이를 낳고 나서의 감정은 매우 복잡하다. 그 느낌을 언어화해서 표현해 줬기 때문에 공감을 많이 하는 것 같다. 책에도 술과 담배를 즐긴다고 썼다. 임신 기간 동안 여름에 맥주 광고를 보는데 참기가 힘들었다. 책을 내고 나서 MBC 라디오 북클럽에서 “임신기와 수유기에 술, 담배를 참느라 힘들었다”고 간단하게 이야기 했다.

다음 날 비난하는 댓글이 엄청나게 올라왔다. 임신기간 중에 술, 담배를 했다는 것도 아니고, 단지 참느라고 힘들었다고 말했을 뿐인데 말이다. 다소 충격적이었다. 엄마라는 존재도 욕망을 가진 똑같은 인간이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회 분위기를 절감했다. 욕망을 말하지 말라고 해서 욕망하지 않는 건 아니잖은가. 사회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엄마상, 모성애상이 얼마나 우리를 옭죄고 있는가.

실제로 아이를 키우는 일이 거룩하고 행복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모든 것에 좋은 일과 그늘진 부분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좋은 점은 우리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라는 점이 아닐까. 아이에게 화낼 수 있지만 그러지 않는 것, 힘으로 누를 수 있지만 그러지 않는 것, 절대적으로 강자인 내가 철저히 약자인 누군가에게 가슴 깊이 우러나는 존중감으로 최선의 배려를 하는 것 말이다. 아이를 낳고 나서 조금 더 나은 사람, 조금 더 괜찮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엄마들은 악의가 없어도 아이를 힘들게 할 수 있다. 엄마들이 사실을 잘못 알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해한 사람이 되려면 끊임없이 살필 줄 알아야 한다”는 문유석 판사의 최근 글이 감동적이었다.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뭘 끊임없이 살피면 좋을까를 생각해 봤다.

첫째, ‘나’에 대해서 살펴야 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는 언제 화가 나는지, 어떻게 말했어야 하는가를 알아야 한다. 이는 아이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대신 훈육을 하기 위해 필요하다.

둘째, ‘너’에 대해. 내 아이는 어떤 사람인가를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모든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가 성소수자라는 것에 대해서는 상상도 못했다고 말한다. 이는 부모가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기도 하다.

셋째,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시스템과 조직적인 문제를 살펴야 한다. 우리는 왜 양가 부모님의 도움 없이는 아이를 키울 수 없는 걸까. 나는 왜 이렇게 시간이 없는 걸까. 딸을 키우기가 왜 이렇게 불안할까.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발표한 ‘세계 성 격차 보고서 2017’를 보면 한국의 성 격차 지수는 0.650으로 세계 144개국 중 118위다. 아프리카 튀니지(117)와 잠비아(119) 사이일 정도로 순위가 낮다. 남녀 간 임금 격차가 순위 하락을 주도했다. 이처럼 임금 격차가 큰 이유는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 때문일 수 있다.

‘미 투(Me Too)’ 운동이 한창인 요즘, 내 딸에게는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학교에서는 뭘 가르쳐주면 좋을까도 고민하고 있다. 그중 생각한 몇 가지는 ‘네 몸은 관상용이 아니다, 너는 성폭력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네가 맞고 세상이 틀릴 확률이 더 높다, 네가 할 수 없다고 판단하는 것에 대해, 한번만 더 생각해 봐라’이다. 앞으로는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보는 만화 영화 캐릭터에서부터 성역할을 규정하는 일이 줄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에게 고정관념을 가지지 않게 하면 좋겠고, 더불어 엄마들도 그런 고정관념을 가지지 않길 바란다.

 

한양문고에서 강연중인 장수연 PD

 

강연중인 장수연 PD
북토크 후 강수연 PD와 동네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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