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앞두고 시장 출마자 책 봇물

'출판기념회'용 소모품으로 폄하되지만
인물과 정책에 대한 소소한 정보 가득
선거 승리하면 책도 덩달아 '주가 상승' 

 

선거를 앞두고 쏟아지는 정치인의 책은 '선거용'으로 치부되곤 하지만, 잘 활용하면 흥미로운 정보를 두루 얻을 수 있다. 사진은 시장선거 출사표를 던진 더불어민주당 주자들의 책. (가나다순. 사진 왼쪽부터 김영환 도의원, 김유임 도의원, 박윤희 전 시장, 이재준 도의원, 최성 시장)


[고양신문] 봄에 새끼를 낳는 동물이 있고, 가을에 열매를 맺는 식물이 있듯 정치인의 책에게도 탄생의 계절이 있다. ‘선거철’이다. 총선이나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인의 책은 우후죽순 앞을 다퉈 세상에 얼굴을 내민다. 적어도 국회의원이나 시장 급의 자리를 노리는 인사라면 당연지사 책 한 권쯤은 내 주는 게 기본이다. 책이란 게 누군가의 생각과 의견을 담은 것이니 책을 내는 행위 자체를 고깝게 볼 필요는 없으리라. 더군다나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을 겪고 있다는 소리가 엄살로 들리지 않을 만큼 침체된 출판계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사람 만나랴 행사 치르랴 동분서주하는 정치인들이 바쁜 와중에도 차분히 마음 가다듬고 한 권의 책을 집필해 세상에 선보였다는 사실에 박수를 보내 줄만도 하지 않은가. (※ 더불어민주당 시장후보 출마자 5인의 책에 대한 소개는 하단 관련기사 참조)
 

■ 환호와 외면 교차하는 슬픈 운명의 책

그렇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정치인의 책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본다. 물론 이유가 있다. ‘출판기념회’라는 뻑적지근한 행사를 치르기 위한 도구로 책을 펴낸다는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 정치인의 책은 출판기념회에서 얼굴마담을 하는 것으로 제 역할을 다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출판기념회만 놓고 보면 정치인의 책만큼 화려한 팔자도 없으리라. 아무리 위대한 문호라도, 또는 잘 나가는 베스트셀러 작가일지라도 킨텍스나 한국예탁결제원 같은 웅장한 자리에서 수백 명, 수천 명 청중의 열띤 축하 속에 책을 선보이는 자리를 어찌 마련할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저자를 소리 높여 연호하고, 너도 나도 ‘책값’이 든 봉투를 준비해 와 책과 맞교환을 해 간다.

하지만 책의 관점에서 보자면 분위기는 어딘지 그로테스크하다. 분명 행사 제목이 출판기념회인데 행사장 앞자리에 누가 앉았나, 사람들은 몇 명이나 모였나, 경쟁 후보의 출판기념회에 비해 분위기가 괜찮은가 등등이 관심사일 뿐, 정작 진지한 눈빛으로 책 내용을 펼쳐 보는 이는 찾기 힘들다.

심지어 시장 출마를 선언한 모 도의원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한 지역 국회의원은 마이크를 잡고는 한껏 필자를 비행기 태운 후 “어차피 책들은 안 읽으실 테지만, 잠깐 보니 내용도 참 괜찮은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출판기념회에 와서 축사를 하는 이가 책 안 읽을 거라는 ‘막말’을 해도 결례가 되지 않는 행사가 바로 정치인의 출판기념회라는 얘기다. 그렇게 정치인의 인맥과 조직력과 세 과시를 위해, 그리고 당당하게 정치후원금을 모을 수 있는 요긴한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폼 나는 소모품’으로서의 사명을 다 하고 나면 책은 관심의 영역 밖으로 퇴장을 준비해야 한다. 불꽃처럼 장렬하다 하기엔 어딘지 처연하다.
 

■ 묵히기에는 아까운, 숨은 가치 찾아내기

6월로 다가온 지방선거를 앞두고 고양시장 자리를 본인에게 맡겨달라는 이들이 윤곽을 드러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만 봐도 최성 현 시장을 포함해 김영환·김유임·이재준(가나다 순. 순서에 민감해하지 마시기를) 도의원과 박윤희 전 시의회의장까지 다섯 명이 출사표를 던졌다. 당연한 수순처럼 하나같이 책 한 권씩을 고양시민 앞에 상재하고 차례차례 출판기념회도 치렀다. 그러다보니 신문사 사무실에도 이들의 책이 무심히 나뒹군다. 얌전히 서가 한켠에 꽂아놓을까 하다가 문득 궁금했다. 무슨 이야기가 쓰여 있을까.

가장 먼저 손이 가는 책부터 집어 들고는 펼쳐 읽었다(그 책이 누구의 책인지는 역시나 궁금해 하지 마시기를). 표지를 살피고 목차를 살피고 눈길 가는 대목을 찾아 읽어보았다. 문학책처럼 흥미롭거나 인문서적처럼 폼 나지는 않았지만, 나름 재미가 있었다. 내친김에 다섯 권을 차례차례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섯 권의 책을 뒤적이며 정치인의 책이 지닌 가치가 뭘까 생각해봤다. 몇 가지가 떠오른다. 우선 지은이를 조금 더 알기 위한 좋은 참고자료가 되지 않을까. 정치는 우리 일상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영역이다. 그 일을 자임하고 나선 이에 대해 우리는 좀 더 진지한 애정과 냉철한 비판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지지하기 위해서도, 또는 누군가를 비판하기 위해서도 뭔가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얘기다. 제대로 알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정치인의 책을 적극 활용해보자.

조금만 눈여겨 읽는다면, 생각보다 많은 정보가 책 속에 담겨 있다. 무엇보다도 책은 단순히 한 정치인이 구상하는 정책이나 활동을 넘어, 그 사람의 면면과 스타일이 책 속의 행간에 어른거리게 마련이다. 소설가에게만 문체가 있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글에는 문체, 곧 한 사람의 ‘인간적 스타일’이 담길 수밖에 없다. 

한 가지 걸리는 것은 대필에 대한 우려다. 솔직히 정치인의 책 중 적잖은 숫자가 ‘고스트 라이터’에 의해 부분적으로, 심지어는 전면적으로 대필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책을 읽으며 어디까지가 필자의 글인지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스스로 집필을 한 경우에도 최소한 주변 보좌진의 도움에 많은 부분을 기댔을 게 자명하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책의 전반적인 내용과 구성의 최종적 결과물에는 저자의 생각과 색깔이 깃들 수밖에 없다. 유능한 보좌진을 운영하는 것도 정치인의 능력이라고 본다면, 책은 어쨌든 이름을 단 주인공의 정치가로서의 자장의 폭을 방증하는 자료임에 분명하다.
 


■ 책 읽고 나니 “정치가 한뼘 친근해졌네”

지역 현안에 대해 다각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점도 지역 정치인이 쓴 책이 품은 미덕 중 하나다. 눈앞에 놓인 책만 해도 그렇다. 다섯 명의 필진들이 누군가? 100만이 넘는 거대도시 고양을 자신에게 맡겨 달라고 손 번쩍 들고 나선 이들이다. 지역에 대한 관심과 열정만큼은 이들을 따라갈 자 없으리라. 그들이 짚은 고양시의 문제점은 무엇이고, 그들이 제안하는 고양시의 미래 비전은 무엇인지가 책의 갈피마다 빼곡히 담겼다.

다섯 권 책을 나란히 비교해 읽어본다면 더욱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도 있다. 특히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특정 사안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를 비교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여러 사람의 책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용어가 있다면, 그건 이 시대의 시대정신을 대변하는 항목이라 봐도 좋다. 예를 들자면 지방분권, 사회적 경제 등의 단어가 복수의 책에서 주요 생각거리로 등장한다. 그밖에도 글쓴이의 정치적 계보가 누구인지, 어떤 이들과 친하게 지내는지 등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은 덤이다.  

책을 읽기 전에는 ‘다섯 권 다 읽고 나서 선호의 순서를 명쾌하게 정해보자’고 야무진 계획을 세웠지만, 실패다. 각자 매력과 단점을 골고루 가지고 있으니 판단은 더 오리무중이 됐다. 책을 읽고 나니, 누군가를 지지하거나 비판하는 일이 참 쉽지 않은 일이라는 사실을 새삼 자각하게 된다. 그렇지만 다섯 명 모두 책을 읽기 전보다 내 마음에 한 뼘 더 가까워졌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어딘지 거리감이 느껴지던 정치인들에게 호기심과 궁금증이 생겼다는 건 나름 좋은 현상이다.
 

■ 스페셜 원, 행운의 주인공은 누구?

대부분의 책이 출판기념회를 마치면 소명을 다 하지만, 시장 후보들의 책들은 하나같이 마지막 한 번의 반전 기회를 기다린다. 글쓴이가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고 시장에 당선되는 순간, 그의 책도 뒤늦게 찬란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될 것이다. 특히 시장의 직접적 영향권에 자리하는 공무원 조직, 이런 저런 방식으로 시정과 파트너가 되고픈 이들, 또는 시장을 제대로 비판하고 싶은 이들에게 ‘새 시장님’의 시정 구상이 담긴 책이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 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과연 다섯 권 중 행운의 주인공이 나올까? 흥미의 끈을 유지하며 ‘저자’들의 레이스를 끝까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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