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강연>

제64회 고양포럼 - 시민 주권을 위한 두 가지 제안

[고양신문] 올해 6월 지방선거는 분권시대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하는 첫 선거다. 건국 이후 지속돼 왔던 중앙집권적 체제에서 분권체제로 전환되는 역사적인 길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시민의 참여’다. 시민의 참여도와 역량에 따라 분권이 실현될 수도, 아니면 기대에 못 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 19일 일산동구청에서 열린 64회 고양포럼은 두 명의 강사를 초청해 분권의 핵심인 ‘마을자치권’과, 다양한 계층의 정치참여 보장을 위한 ‘선거제도’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과거 촛불을 들고 거리에서 정치개혁을 외쳤다면, 이제는 시스템 내에서 시민의 참여로 정치문화를 바꿔야 한다. 제도개혁으로 시민 참여를 강화할 수 있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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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변호사이자 시민운동가인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강연이 있기 직전인 지난 13일 문재인 정부는 개헌안을 자문할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를 출범시켰는데, 하승수 대표가 부위원장직에 깜짝 발탁됐다. 이날 강연에서 하승수 대표는 “민주주의의 근간은 선거제도”라며 “비례대표제를 전면 시행하는 것이 우리 삶의 문제를 푸는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강연 내용을 요약한다.

민주주의의 기초는 선거제도

지금의 대한민국은 민주주의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체제가 아니다. 국정농단 사태, 정경유착이 반복되는 이유는 민주주의라는 집을 제대로 설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시스템은 기초와 기둥이 다 썩어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집을 다시 짓는 것이다. 집의 기초는 ‘선거제도’이고 선거제도 위에 서 있는 두 개의 기둥은 ‘지방분권’과 ‘직접민주주의’이다. 마지막으로 집의 지붕은 ‘정부형태’라고 할 수 있다.

집을 새로 지으려면 기초와 기둥부터 바꿔야 하는데, 지금 우리나라의 개헌 논의는 거꾸로 가고 있다. 즉 기초를 바꾸려 하지 않고 지붕(정부형태)을 어떻게 바꿀까만 얘기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정치인들이 권력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이 지붕에만 관심을 가질 때 국민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집의 기초, 즉 ‘선거제도’다.

촛불혁명 이후에도 시스템은 그대로

2016년 10월부터 긴 시간 동안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왔다. 그리고 대통령을 탄핵시켰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정치제도와 시스템은 바뀐 게 하나도 없다. 국회에선 선거법과 개헌 논의가 진행되지 않고 있고, 그나마 시·도별로 할 수 있는 선거구획정도 지연되고 있다.

그래서 지금이 중요하다. 문재인 정부가 개헌안을 발의하겠다고 한다. 3월 20일경 초안이 나오면 개헌은 앞으로 두 달 사이에 향방이 결정되고, 선거구획정은 3월 중순에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선거법은 개헌과 맞물려 결정될 것이다. 촛불혁명 이후 민주주의 시스템을 결정지을 수 있는 현 시점부터가 매우 중요하다.

19일 열린 제64회 고양포럼. 강연 이후 방청객들이 참여하는 질의응답도 진행됐다.


“정당 지지율만큼 의석수 배분”

그럼 선거제도를 어떻게 바꿔야 할까. 답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다. 굳이 ‘연동형’이란 말을 앞에 붙인 이유는 현재 우리나라가 비례대표제를 시행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겨우 10% 정도의 의석만 ‘비례대표’라고 뽑고 있는데 지금의 비례대표는 장식품에 불과하다. 우리는 비례대표가 있지만 비례대표제를 하고 있지 않다.

진짜 비례대표제는 전체 의석을 정당지지율대로 배분하는 것을 말한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선거는 1등만 뽑아왔다. 국회의원과 경기도의원은 1등을 해야 당선된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승자독식 선거제도를 가진 나라는 상대적으로 적다. 이 방식이 민주주의를 하기에는 문제가 많다는 것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발명된 선거제도가 ‘비례대표제’다.

60% 득표에 90% 싹쓸이 옳은가?

비례대표제의 장점은 표의 가치가 동등하게 유지되는 점이다. 예를 들어 10%의 정당지지율이 나오면 전체 100석 중 10석을 확보하게 된다. 40%의 정당지지율을 받은 정당은 100석 중 40석을 가져간다.

우리나라 현 선거제도 하에서는 의석이 어떻게 나눠지나? 2014년 경상남도의회를 보면 새누리당이 59%를 득표했는데 전체 55석 중 50석을 가져갔다<표 참고>. 득표율은 약 60%였지만, 의석수는 90%를 싹쓸이한 것. 다시 말해 지금의 선거제도는 표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럽의 복지국가들은 이미 100여 년 전부터 비례대표제를 선택했다. 핀란드는 100년 전 내전을 겪고 좌우갈등이 심각했지만 비례대표제로 정치적 갈등을 막아냈다. 국민들의 지지를 받으면 딱 그만큼의 의석을 가져가는 정직한 선거제도가 좌우갈등을 치유했고 복지국가로 갈 수 있게 만들었다.

비례대표제는 민심 그대로 선거제도

독일과 뉴질랜드 등이 택하고 있는 비례대표제는 우리 유권자들이 적응하기 아주 쉽다. 투표방식은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지역구 1표, 정당에 1표씩 투표한다. 단 의석을 나누는 방법만 달라진다. 만약 10%의 정당지지를 얻은 A당은 전체 100석 중 10석을 가져간다. 10석 중 지역구에서 3명이 이겼다면 3명을 먼저 인정하고, 나머지 7명은 비례대표로 채우는 방식이다. 만약 지역구 당선인이 없다면 10명 모두를 비례대표로 채운다. 즉 정당에게 중요한 것은 지역구 선거보단 정당지지율이다.

이 방식은 이미 2015년 중앙선관위가 권고한 방식이고, 작년 문재인 후보가 대선공약으로 내세운 선거방식이다. 당시 안철수, 심상정, 유승민 후보도 찬성했다. 주요 대선 후보들이 찬성했고, 상당히 많은 국회의원들이 지지하고 있다. 또한 유권자들이 적응하기에도 너무 쉬운 방법이다. 비례대표제는 국회의원, 도의원, 시의원 모두 적용할 수 있다.

비례대표제는 ‘민심 그대로 선거제도’이다. 이제 결정만 남았다. 국회에서 선거법 개정 논의가 되지 않는다면, 대통령이 발의하는 개헌안에 이 내용을 넣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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