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인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강연>

신용인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제64회 고양포럼 - 시민 주권을 위한 두 가지 제안

[고양신문] 주민자치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신용인 제주대 로스쿨 교수는 우리나라 풀뿌리 자치의 규모가 너무 크다고 주장했다. 그는 시·군 단위가 아니라 동 단위 규모에서 주민자치가 이뤄져야 대한민국이 진정한 민주공화국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동장을 주민 손으로 뽑을 수 있다면 소수 엘리트가 아닌 시민이 통치하는 나라로 한걸음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며 “이번 지방선거 시장후보들에게 동장 주민선출제를 공약으로 요구하자”고 제안했다. 지난 19일 열린 고양포럼 '시민 주권을 위한 두 가지 제안'에서 강연자로 나선 신 교수의 강연 내용을 요약한다.

대한민국은 정말 민주공화국인가?

헌법 제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이 정말 민주공화국인지 확인해보자. 그러기 위해선 ‘민주’와 ‘공화’라는 개념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한다.

민주주의는 ‘시민이 통치한다’는 뜻이다. 대한민국은 시민들의 직접 통치가 아닌 선출한 대표자를 통해 대신 통치하는 대의민주주의를 채택했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의민주주의 문제점은 시민의 통치가 엘리트에 의한 통치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시민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대의민주주의 왜곡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공화주의는 어떤가. 공화국은 구성원 어느 누구도 특정 개인이나 계층의 지배를 받지 않는, 나라를 말한다. 그런데 현재 대한민국은 정치적으로 거대양당의 독점체제, 중앙집권형 체제에 있고 경제적으로는 재벌 중심의 빈익빈부익부 체제다. 권력과 자본이 소수에게 집중돼 있고 그들로부터의 지배현상이 심화된 나라가 됐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에 대한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선진국의 자치단위는 1만명 이하

문제의 핵심은 ‘너무 크다’는 데 있다. 커다란 국가단위로는 시민의 통치가 불가능하다. 권력과 자본을 잘게 나누는 방법밖에 없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을 진정한 민주공화국으로 만들 수 있는 자치규모에 대해 알아보자. 현대 선진국들의 모습을 살펴보면 프랑스의 풀뿌리 자치규모는 평균 1800명, 독일은 7000명, 미국은 7700명, 스위스는 3500명 정도다. 선진국의 풀뿌리자치 규모는 1만 명을 넘지 않는다. 이 정도의 규모에서 진정한 풀뿌리자치가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풀뿌리자치는 100만 명 규모

그럼 우리나라는 어떤가. 우리의 풀뿌리자치는 시·군·구다. 고양시는 광역시가 아니므로 구가 아닌 시가 자치단위인데, 인구가 100만 명이 넘는다. 100만 명이 넘는데 거기서 시민 통치가 가능할까. 고양시는 동 단위로 쪼개더라도 1개 동이 2만6700명이다. 상당히 크다. 우리나라에서 진정한 자치를 하려면 시·군·구보다는 읍·면·동이 적합하다. 자치권이 없는 읍·면·동은 시·군·구의 하부 해정기관일 뿐이다.

‘지방분권’이 아닌 ‘마을원권’이 맞다

자치활동의 우선권은 언제나 작은 단위에 있고, 작은 단위가 해결할 수 없는 것을 큰 단위가 보충적으로 처리하도록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우리사회는 반대로 돼 있다. 이렇게 보면 ‘지방분권’이란 말도 틀렸다. 권한의 원천이 애초에 중앙에 있고 그것을 지방에 나누겠다는 뜻인데, 사실 권한의 원천은 작은 단위인 마을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마을원권’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 지방분권이 아닌 마을분권을 구현해 ‘마을공화국’을 만들어야 한다.

동장을 ‘직선제’로 뽑아야 진짜 자치

마을공화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읍면동에 자치권을 부여해야 하는데, 이렇게 되려면 읍·면·동장 임명제가 아닌 직선제가 시행돼야 한다. 읍·면·동 차원의 작은 단위에서 대의민주주의가 이뤄져야 주민에 의한 통치가 가능하다. 과거 우리나라에 읍·면·동 풀뿌리자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제1·2공화국 시절에 시·읍·면은 자치제였고 동은 준자치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1962년 박정희 군사쿠데타 이후 읍·면 자치제가 폐지됐다. 해방 직후 어지러운 시기에도 했는데, 21세기인 지금은 왜 안 되겠는가.

고양시장 후보에게 공약으로 요구하자

작년 8월 문재인표 첫 번째 사회혁신으로 읍·면·동 혁신 방안이 발표됐다. 내용에는 읍·면·동장 공모제 또는 주민선출제가 포함돼 있었다. 올해 전국 200곳에서 실시하고 2020년엔 전국 모든 읍·면·동에서 실시될 계획이었다. 그러나 언론의 무관심과 정치권의 반발로 무산되고 말았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새정부의 사회혁신 1호 정책이었는데도 없던 일로 덮히고 말았다. 결국 풀뿌리자치가 되려면 밑으로부터의 운동이 중요하다.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이번 지방선거의 고양시장 후보들에게 동장 주민선출제를 공약으로 요구하자. 동장 주민선출제를 직선제로 하려면 지방자치법과 선거법을 바꿔야겠지만, 현행 제도에서도 공모제 또는 동장선출단을 구성함으로써 충분히 가능하다. 최근 서울 금천구와 광주 광산구에서 동장 공모제와 주민선출제 사례가 이미 있다. 장기적으로 고양시 39개 동의 마을이 연합하는 ‘마을연방자치시’로 갔으면 한다. 그런 모델을 전국 최초로 만들어서 고양시가 대한민국 풀뿌리자치를 선도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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