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가장 완고하게 오래가는 습관이 장례문화와 음식문화라고 한다. 국토가 비좁다며 장례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사회 지도층이 나서서 자신이 죽은 뒤 화장 할것을 다짐하는 운동이 수년동안 펼쳐지고 있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면 정작 화장의 예는 좀처럼 찾기 어렵다. 아무리 돌아가신 분이 유언을 남겼어도 차마 자식 된 도리로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자신은 화장을 당연하게 여기는 경우도 부모는 자신의 손으로 화장을 못하겠다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입 맛 또한 어릴 적 들인 맛을 잘 잊지 못한다. 즐겨 먹던 음식 뿐 아니라 어른들은 저런 걸 뭐가 맛있다고 즐겨 드실까? 하고 이해를 할 수 없었던 음식도 어른이 된 다음 다시 찾는 예는 얼마든지 있다. 냄새 때문에 코를 싸 쥐고 도망가던 청국장을 맛있다며 눈을 동그랗게 뜨는 아이에게 억지로 먹여보려 한다든지 명란젓의 쌉싸름한 맛이 오히려 입맛을 돋우는 경우도 있다. 오죽하면 진저리치던 꽁보리밥이나 누릉지를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이 성황을 이룰까? 그걸 먹으면 그 어렵던 시절의 고생 냄새도 함께 따라오는데.

지금 우리나라의 학교 급식을 바라보면 자녀를 키우고 돌보는 어머니의 마음이 여간 불안하고 불편한 게 아니다. 잊을 만하면 터지는 식중독 사고도 그렇지만 그외 드러나지 않는 원재료의 문제도 답답하기만하다. 혹 자녀를 다 키워 급식에서 자유로운 사람이라도 무너져 가는 농촌을 생각하면 답답함을 넘어 아예 막막하다.

2002년 말 현재 우리나라 초 중 고등학교와 특수학교의 76.6%에 해당하는 약 601만의 학생이 학교에서 제공하는 급식으로 점심을 먹고있다. 이는 전체 인구의 8분의 1에 해당하는데다 급식 연령이 성장기의 청소년이고 이들의 37%가 아침을 거르고 학교에 온다는데 급식의 중요성이 더욱 대두되고있다. 매년 실시되는 학생들의 신체검사를 보지않더라도 우리 아이들의 키와 체중은 점점 늘어나는 게 눈에 뜨이지만 조사 결과를 보면 칼슘과 철분 섭취량은 5,60%에 불과하고 지방섭취는 지나치게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몇년 전부터 들어왔던 체격은 커졌으나 체력은 떨어진 것이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학생들의 주된 식사인 급식의 질이 떨어지는 것도 한가지 원인이 된다고 생각한다.

선진국의 경우 학교급식목표에 자국농산물의 안정적인 수급 조절 이라는 명목이 제시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청소년기의 건강이 국가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임에도 원재료의 안전성에 대하여 뚜렷한 원칙없이 최저가만을 강조하여 질이 낮은 농산물과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수입 농산물이 식재료의 절반을 차지하고있다. 그런데 빈번하게 일어나는 식중독사고에서 늘 문제로 지목받는 것은 위생상의 청결도이다.

이제는 우리가 더 이상 주린 배를 채우려 밥을 먹지 않는 것처럼 급식도 위생의 안전을 이야기 할 수준이 아니라 얼마나 안전한 재료로 아이들의 입에 맞으면서도 전통의 맛을 되찾고 이어갈지가 우선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이웃 일본에서는 건강식품으로 우리나라의 김치, 고추장, 참기름을 먹기위한 주부들의 모임이 활발하다는데 정작 우리의 급식 식단을 보면 조리의 간편함과 아이들 입맛에 맟춘다는 이유로 각종 인스턴트 음식과 외국 양념을 잔뜩 묻힌 튀김요리가 대부분을 차지하고있다. 우리가 우리의 소중하고 건강한 전통 음식문화를 외면하는 동안 일본에게 김치의 종주국이라는 명예를 뺏길 뻔한 어리석은 일이 또다시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한다.

우리의 식량 자급률은 쌀 시장이 개방되지 않은 시점에서는 29%, 쌀시장이 전면 개방 되면 5%를 밑돌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 우리 것으로는 밥상을 차릴 수 없을 때 우리가 느끼는 자괴감은 얼마나 클까를 생각해보자. 아무리 많은 돈과 재산을 남겨준다 해도 어느나라의 누가 어떤 마음과 방법으로 생산해 냈는지 모르고 주는 나라의 사정에 따라 못 먹을 수도 있는 밥상을 매일 차려내야 한다면 우리 주부들의 걱정은 얼마나 클까.

지금도 주부의 가장 큰 일상적인 고민은 ‘오늘 반찬은 무얼 할까’인데 거기에다 재료를 구할 수 있을지, 안전할지까지 걱정하고 판단해야한다면 참으로 시장가기가 겁이 날것이다. 옛말에도 사흘 굶으면 도적질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고 했는데 식량주권이 없는 나라의 자주주권이란 허구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사정을 헤쳐나갈 유일한 대안은 급식에서 우리 농산물을 소비토록 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농업 중에서도 우리 식생활의 기반이 되는 쌀 농사를 예로들면, 외국의 평균 농지 면적이 7-20ha인데 비해 우리는 1.7ha로 도저히 경쟁상대가 되지 못한다. 이런 규모의 차이면 일반 관행농법으로도 극복할 수 없으며 친환경 농업으로 특화해야 우리 쌀 농사가 살아남아 자손 대대로 우리 땅에서 난 안전한 쌀로 밥상을 차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하루 601만 명의 한끼 급식에 무농약 쌀을 먹는다면 한명이 100g을 먹는다고 할 때 600t을 소비할 것이고 일반 쌀에 비해 추가되는 금액은 하루 94원, 한 달 1400원쯤 될 것이다. 소비가 생산을 규정하는데 성장기 자녀들이 급식에 친환경 쌀 뿐아니라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생산하는 친환경 지역 농산물을 먹는다면 우리나라 전체 농업을 살리는 길일 뿐 만아니라 지역 경제를 살리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면서 생산농가의 일손돕기도 하고 생산자를 모셔다 직업교육이나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는 것도 훌륭한 교육이 되고 자연스럽게 음식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들어 감성, 인성교육이 되리라 생각한다.

많은 학부모들이 급식의 좋은 점을 도시락을 싸지 않는 편리함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렇게 말할 때에는 급식의 안전함이 전제되었을 때의 일이고 엄마의 편리함이 자식의 건강을 담보로 하는 것이라면 아마 다시 도시락을 싸주겠다고 할 것이다. 실제로 많은 학생들이 부실한 점심을 만회하기 위해서인지 집에 오자마자 밥을 달라거나 냉장고부터 열거나 학교 앞의 수많은 포장마차와 햄버거가게를 찾는다. 아침은 3분의 1이 굶고 점심은 저급한 수입농산물과 우리 농산물, 인스턴트 재료에 수상한 외국 양념을 잔뜩 발라 맛을 낸 급식으로 먹고 방과 후에는 저마다 얼음과자나 막대사탕을 입에 물고 다니느라 요즈음 우리 아이들이 각종 성인병이나 아토피 피부염과 알러지 등을 앓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금 이 시점에서 꼼꼼히 챙기고 고쳐나가야 할 것이다.

건강한 몸에서 건강한 생각이 나오고 건강하게 자란 세대가 건강한 사회와 국가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청소년은 우리의 꿈이며 희망이다라고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그들에게 차려내는 밥상이 우리의 미래와 꿈을 위한 제대로 된 건강한 밥상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 모두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집에서든 학교에서든 밥상을 제대로 차리는 것에 우리 농업의 살 길과 우리 아이들의 건강한 미래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모든 일의 책임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함께 져야하리라 생각한다.
<고양한살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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