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떤 시민인가> 문은희 한국알트루사 여성상담소장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과 이웃 바라보며
엄마와 자녀의 건강한 관계 격려

 

문은희 (사)한국 알트루사 여성상담소장.


[고양신문] 문은희 ㈔한국알트루사 여성상담소장은 정신건강 사회운동을 펼치고 있는 행동하는 여성 지식인이다. 일제강점기와 해방정국에서 실천적 기독교신앙을 지킨 민족지도자 문재린 목사와 김신묵 사모의 막내딸로 태어난 그는 군부독재에 맞서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을 펼쳤던 문익환·문동환 목사의 동생이기도 하다. 일산서구 주엽동 문촌마을에 살고 있는 문 소장은 지역의 크고 작은 모임에 남편 박영신 명예교수(연세대 사회학과)와 함께 늘 다정한 모습으로 동행해 이웃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한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맑은 생각과 뜨거운 가슴을 품고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을 향해 따뜻한 손길을 내밀며 살아가고 있는 문은희 소장을 만나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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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속에서도 가족이 있어 든든했던 어린 시절 

나는 일제강점기에 북간도 용정에서 개신교 목사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맏이 큰오빠와는 21살 나이차가 난다. 대가족이 함께 살며 할머니 품에서 어리광 피우며 자란 여자아이가 어느덧 80이 됐다. “나도 꼬맹이였던 시절이 있었다”고 말하면 젊은이들이 놀란다(웃음).

일제 탄압을 견디며 용정에 정착했던 우리 가족은 해방 후 공산당의 위협에서 벗어나고자 남쪽으로 내려왔다. 피난민으로 서울에 들어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6·25가 터졌다. 피난과 전쟁을 겪으며 초등학교를 다섯 군데 전전해야 했지만, 혼란한 시대 상황에서도 부모님께서 시기를 놓치지 않고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돌봐주셨다.

서울 돈암동에서 6·25를 겪었는데 철이 없어서 무서운 줄 몰랐다. 학교에 가니 선생님이 김일성 찬가를 가르쳐줘서 다음날부터 학교에 안 가고 골목에서 3개월 동안 친구들과 실컷 놀았다.
어머니는 아이를 억울하게 하면 안 된다, 너무 엄격하면 아이들이 거짓말 하게 된다, 등 나름의 원칙을 지키며 자녀들을 교육시켰다. 막내딸이 아무 걱정 없이 뛰놀 수 있게 마음을 써 주신 어머니 아버지가 너무 감사하다. 

‘포함단위’라는 개념으로 우리나라 어머니의 심리적 특징 짚어 

여고를 졸업한 후 의사가 되려고 세브란스 의대에 입학해 본과 2학년까지 다녔는데, 중도에 꿈을 접었다. 생리학 실습을 하며 피를 뽑아야 하는데, 가슴이 떨려 주사바늘을 도저히 못 찌르겠더라. 결국 연세대 교육학과에 다시 들어갔다. 같은 학교 사회학과에 다니던 남편(박영신 교수)을 만나 평생을 함께 하게 됐다.

대학원을 마친 후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상담학을 공부했고, 한국으로 돌아와 연세대에서 상담학 박사과정을 마쳤다. 그 후 영국 스코틀랜드 글라스고 대학에서 쉰이 넘은 나이에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당시 학위 논문은 우리나라와 영국 어머니들의 우울증을 비교 연구하는 것이었다. 특히 우리나라 어머니들이 개인으로 존재하지 않고 가정이나 가족 등 자기를 포함하는 행동단위에 종속되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을 짚었다. ‘포함단위’ 안의 다른 사람 때문에 우울하다는 우리나라 어머니들의 정서를 당시 영국 교수들은 좀처럼 이해하지 못했다.

사회운동하며 만난 또 하나의 가족

남편 박영신 교수가 늦은 나이에 목사 안수를 받아 내 인생이 목사 딸, 목사 동생이었다가 결국엔 목사 부인까지 됐다(웃음). 대학 교정에서 만나 늘 같이 다녀버릇 하다 보니 지금까지도 어느 자리든 같이 다닌다.

아들 둘은 미국에서 생활할 때 길렀는데, 가능하면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하고자 했다. 미국에서 공부하다가 한국 학교로 오니 아이들이 너무 힘들어했다. 항상 줄을 서야 하는 교육 현장과 부딪히며 자기주장을 계속 하면서 자랐다.

지금 첫째는 아일랜드에 살고 있고, 둘째도 런던과 브라질 등등 세계 이곳저곳을 오가며 자유로운 삶을 산다. 큰아이는 악보 없이 연주하는 즉흥 음악을 창작하고 있고, 둘째 아들은 건축과를 나와 애니메이터로 일한다. 학교 다닐 때는 머리를 길게 기르더니 요새는 빡빡 깎고 다닌다(웃음).

아이들이 가까이에 없지만 섭섭하지는 않다. 정신건강 사회운동을 하며 만난 이들이 식구들이요, 손주들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각자가 살아가고 싶은 인생이 따로 있게 마련이다. 자유로운 영혼을 품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산다는 게 얼마나 좋은가. 다섯 살 손녀는 발레하는 고생물학자가 꿈이라고 하더라. 손녀의 꿈도 꼭 이뤄졌으면 좋겠다.
 

문은희 소장과 남편 박영신 명예교수(사진 아래 왼쪽에서 두번째)는 아람누리도서관을 빌려 모이는 작은 독서모임에 항상 다정한 모습으로 함께 참석한다.


무료 심리상담 꾸준히 진행하며 “타인 속에서 나를 발견”

㈔한국알트루사는 1917년 미국에서 시작된 여성들의 봉사단체다. 내가 연세대 여자 동문 모임을 이끌고 있을 때 우리나라 최초 여자 대통령에 출마한 홍숙자 선생이 한국 알트루사를 만들자고 제안하셔서 함께 시작했다. 

알트루사는 국내 유일의 정신건강 사회운동 단체다. 현재 계동 작은 한옥에서 무료상담을 오랫동안 진행하고 있는데, 상담을 받은 이들이 회원이 돼 핵 없는 세상 만들기, 난민 돕기 등 여러 가지 활동을 함께 한다.  

알트루사에서는 십 년 넘게 계간지를 내고 있다. 지금까지 50호가 나왔는데 매 호 주제를 정해 특집 기사를 싣는다. 최근 다룬 주제로는 ‘어른답다는 게 무엇인가’,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등이다.

심리상담도 꾸준히 진행 중이다. 물질적 고민과 가정의 염려에 사로잡혀 있던 이가 심리학교실에 참여하며 안목이 넓어지고 정체감의 범위가 타인에게로까지 성장하는 모습을 목격하곤 한다. 반대로 상담을 하며 나 역시 인간에 대해 끊임없이 배우게 된다. 나에 대한 타인의 반응이 내 자아의 거울인 셈이다.

상담은 지금까지 늘 무료로 진행했다. 최소한의 비용을 받는 게 효과적이라는 충고도 듣지만, 비용을 받았다면 가족보다 더 가까운 사람을 얻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삶을 살아가는 귀한 관계는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세상에는 물질로 얻을 수 없는 것이 분명히 존재한다. 

엄마와 아이가 함께 행복한 세상을 꿈꾸며…

책을 여러 권 썼는데 『엄마가 아이를 아프게 한다』라는 책이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이 아이를 건강하게 기르는 것을 굉장히 힘들어한다. 육아를 사랑의 기쁨을 누리는 시간보다는 치러야 할 의무로 취급하는 게 안타까웠다. 사람에겐 어린 시절의 경험이 참 중요하다. 인생살이가 어렵고 바빠도 한발짝 물러나 여유 있게 바라보는 눈을 주는 힘은 어린 시절에 쌓는 것이다.

어려서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느끼는 게 소중하다. 엄마들이 아이를 묵묵히 기능적으로 키우기만 하면 엄마노릇 다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지 돌아봤으면 좋겠다.

사실 출판사에서 정한 책 제목을 읽을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책 표지에 그려진 아이의 뒷모습을 보고 “이 아이가 어릴 적 나같다”고 말하는 독자들의 반응을 들으면 가슴이 아프다.  “내가 너보다 너를 더 잘 알아”, “엄마말 들어서 나쁜 것 없어”가 우리나라 엄마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그런데 그런 생각들이 얼마나 우리 아이들을 외롭게 하는지를 책 속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문은희 소장의 베스트셀러 <엄마가 아이를 아프게 한다>(예담). '사랑인 줄 알고 저지른 엄마들의 잘못'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나에게 주어진 소중한 시간들

내가 살아오면서 소중했던 게 무엇이었을까. 어릴 적 받은 장난감, 손잡이가 반짝이는 사금파리, 겨울날 밖에서 놀다 들어오면 엄마가 손을 뺨에 대 녹여주시던 기억, 아빠가 나를 사랑의 눈빛으로 봐 주시던 것, 문학소녀 언니가 들려주던 아름다운 이야기…

슬픔이라는 걸 알았던 첫 기억도 떠오른다. 5살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어머니가 우셔서 ‘나도 울어야 되나?’ 생각하고 있는데, 큰오빠가 “은희 너는 안 울어도 된다”고 말해줘서 마음이 놓였다. 그런데 가족들이 할머니를 산에 묻고 돌아서는 게 아닌가. 울음이 터졌다. 할머니 데리고 가야 한다고 큰소리로 울어 모두를 울렸던 것 같다.

성장해서는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교인들, 또는 친구들과의 관계가 소중했다. 내 가정보다 더 큰 관계에 대한 생각을 품게 만들었다. 결국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었다. 사람을 위해 일하는 것, 다른 사람의 행동 동기를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는 열망이 내가 살아온 길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이가 80세가 되니 남아있는 날 하루하루가 무척 소중하다. 스스로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면 다른 이도 제대로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게 주어진 남은 시간도 나를 사랑하고, 또한 다른 이를 사랑하며 소중히 사용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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