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 빛 시 론>

이태원 한국건설기술연구원 화재안전연구소장

[고양신문] 10여일 전 고양시 관내 화정동의 한 복합상가 건물에서 불이나 3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 건물 7층에 있는 사무실 벽면에서 누전에 의해 불꽃이 걸려있던 옷에 옮겨 붙으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불과 수개월 전, 제천과 밀양에서 큰불로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것을 본 터라 전해 온 화재소식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 건물이 지어진 1995년에는 소방법령에 따라 지하주차장 이외에는 스프링클러의 설치가 의무화되지 않아 불이 순식간에 번졌으나, 건물의 상층부에서 난 불이 빠른 조치로 그나마 피해가 그만한 게 다행이란 생각이다.

전국적으로 수많은 화재가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고양시에서도 크고 작은 화재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2014년 고양종합터미널 화재로, 지하 1층 공사 현장에서 용접 작업 중 튄 불꽃이 주위의 가연성 자재 등에 옮겨 붙으면서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불은 20여분만에 진화되었지만, 실내 계단과 에스컬레이터 통로 등을 통해 유독가스가 건물 내로 빠르게 퍼지면서 짧은 시간 동안 진행된 화재치고는 사망 6명, 부상 42명의 희생자가 발생하는 큰 사고로 기록되었다.

국내에서만 해마다 4만 건 이상의 불이 나 수백 명의 귀중한 생명을 잃고 수천 명이 다치는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때마다 대책이 마련되지만 불행한 사고는 줄어들 줄 모른다. 불과 얼마 전에도 지방의 스포츠센터와 요양병원에서 불이 나 많은 생명을 잃었다. 건축주와 관리자가 구속되고, 스스로의 안전도 돌보지 않으며 불을 껐던 소방관들이 비난을 받기도 했다.
건물에서 불이 나는 현상에도 어떤 자연의 법칙이 숨어 있는 건 아닐까? 그 법칙을 어긴 인간에게 자연이 역습을 하는 건 아닐까?

먼저, 지나치게 속도와 효율을 중시하는 사회문화를 꼽을 수 있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다. 합리적인 인간은 효율을 중요시한다. 다시 말해 자신이 가진 제한된 자원으로 최대한 욕망을 충족시키고자 애쓴다.

건물을 지어 임대를 하거나 장사를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합리적인 건물주는 최소한의 비용을 들여 건물을 짓고 최대한의 수익을 올리고자 한다. 경제적, 특히 금전적 고려가 앞서고, 도덕적 또는 윤리적 판단은 뒷전으로 밀려나는 경우가 다반사다.

둘째로,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판단을 하더라도 검토 범위가 근시안적이다. 건물을 지을 때도 설계비와 시공비만을 주로 따진다. 사용단계에서 지출되는 운영비와 불가피한 부대비용은 간과되기 일쑤다. 예를 들어 건물이 지어져 사용되다가 용도 폐기되는 전체 기간 동안 들어가는 총 비용의 85% 정도가 실제 사용단계에서 투입되는 게 보통이다. 따라서 건물을 지을 때 운영비를 줄이기 위한 고민을 철저히 하면 오히려 더 경제적이다.

화재 등의 재난에 대한 대비도 마찬가지다. 설계와 시공 과정에서 방심해 허술하게 대비하다 불이 나면 훨씬 더 큰 비용이 들어감은 물론 패가망신할 수도 있다. 설마가 사람 잡는 격이다.

셋째, 정부에서 시행하는 강제규정의 함정을 들 수 있다. 정부는 합리적 경제인들이 함정에 빠져 공공의 이익과 안전을 해치는 일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강제로 지켜야 할 사항들을 법으로 정하고 있다. 건물만 해도 화재를 예방하고 유사시 대피하거나 불을 끄기 위해 갖춰야 할 사항이 여간 많은 게 아니다. 하지만 이들 규제는 지켜야할 최소한의 조건일 뿐이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이를 만병통치약으로 생각한다. 정부에서 정해놓은 규정이니 지키기만 하면 어떤 문제도 없을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요즘 건물의 복잡한 기능과 구조에 비해 정부의 규제는 기본적 수준일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건물에 불이 붙고, 퍼지는 것은 자연의 이치다. 높은 데 있는 물이 아래로 떨어질 수는 있지만, 떨어진 물이 저절로 다시 위로 올라가는 건 불가능한 것도 자연의 이치다. 자연의 이치에 거슬러 떨어진 물을 다시 위로 올리려면 펌프라는 장비가 필요하다. 이때 쓰이는 전기를 만들려면 자연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펌프의 효율을 높이려는 것은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되 그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다. 다만, 효율을 높이는 데 돈이 드는 게 문제다. 안전효율도 마찬가지다. 화재라는 자연의 이치에 거슬러 우리를 지키려면 안전효율을 높여야 한다. 여기에 드는 비용을 외면한다면 자연의 역습을 피할 길이 없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고, 자연의 법칙에 거슬러 행동을 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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