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스콜레, 김이듬 시인 초청 강연

인문학스콜레에서 강연 중인 김이듬 시인

 
[고양신문] 시를 읽다보면 어렵고 난해한 시도 가끔 만나게 된다. 시인이 직접 설명을 해준다면 훨씬 쉬워진다. 일산 호수공원 근처에 북카페를 낸 김이듬 시인이 인문학 스콜레(리더 하재일)의 초청으로 지난 24일 한양문고 주엽점에서 강연을 했다.

행사를 연 하재일 시인은 전위적이고 체험적이고, 실험적인 김이듬 시인을 ‘한국 시단의 여전사’로 칭했다. 김 시인은 독자와 함께 자신의 시를 낭독한 후 ‘시는 언제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김 시인이 들려준 자신의 시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보자.

“불안과 슬픔이 모두 시의 재료”

▲ 나는 나무를 이해한다 
여성전용고시원에서 몇 달째 혼자 힘든 나날을 보낼 때 쓴 시다. 일요일 오후 건물 옥상에 올라갔다가 줄기와 잎사귀만 보이고 뿌리는 보이지 않는 나무가 초여름 바람에 막 흔들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알 수 없는 앞날에 대한 불안, 두려움, 현재 뿌리박고 있는 현실에 대한 막연한 슬픔을 표현했다.

▲ 언니네 이발소
세상을 향해서 나아가고자 할 때 남도로 여행한 적이 있다. 늦은 봄날 처음 간 곳이 광한루였다. 만복사지를 찾았을 때 길가 땅속에 반쯤 묻힌 석상의 머리를 봤다. 석상을 보고 흙먼지가 이는 만복사지 길바닥에 쭈그려 앉아서 쓴 시다. 그 맞은편에는 이발소가 있었다. 그 석상의 머리를 감겨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나를 천재인 줄 아는데 엄청난 노력파다(웃음). 시를 쓰기 위해 감각의 촉수를 세상의 바다에 넓게 던져놓는다.

▲ 푸른 수염의 마지막 여자
시는 상상속에서도 찾아온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 중 하나는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울한 시간을 보낼 즈음에 쓴 시다. 열심히 시를 써도 상을 못 받고, 교수가 되고자 지원했으나 최종심에서 계속 떨어졌다. 실패한 자, 무가치한 인간이라는 좌절감 속에서 ‘나는 살아 있지만 죽어서 지하에 묻혀있는 여자’라고 상상하며 약간의 분노와 참혹감 속에서 쓴 시다.

▲ 운석이 떨어지는 밤에 
보이스피싱을 당하고 난 이후에 쓴 시다. 요즘은 살다 어려운 일이나 나쁜 일이 있으면 ‘나에게 시가 오려고 내 영혼의 문을 쿵쿵 타격하는구나’ 생각한다. 시련이 왔을 때, 슬픔과 상실감이 들 때 시가 온다.

▲ 시골 창녀 
연꽃이 더러운 곳에서 피듯이 더러워야 시가 오는 경우도 있다. 시는 고귀하고 영롱하고 깨끗한 곳에서만 오는 게 아니다. 서정시나 아름다운 시도 있고 읽으면서 기분 나빠지는 시도 있다. 예쁘고 사랑스럽고 위로가 되는 시만을 원한다면 차라리 성경이나 불경을 읽어라. 무조건 위로가 되고 기분 좋아지는 시만 있는 게 아니다. 시는 어루만져주기만 하는 위안부가 아니다. 다를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해주고 인식의 영역을 확장시키기 바란다.

“지역 인문학 활동 활발히 펼칠 것”

인문학 스콜레는 2014년 하재일 시인이 주축이 되어 만든 인문학 모임으로, 회원수는 전국적으로 3300여명 정도다. 현역 시인, 소설가, 비평가와 선생님, 교수, 화가, 음악가, 의사 등 직업과 경력도 다양하다. 예비 작가들과 인문학을 좋아하는 고급 독자들도 많다. 모두 글쓰기를 좋아하고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는 공통분모를 공유하는 사람들이다. 매월 작가를 초대하거나 출판기념회 등 여러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하재일 시인은 이번 행사를 열게 된 이유를 “지역서점을 살리자는 취지에 공감했기 때문”이라며 “지역에서 열리는 인문학 모임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했다.

 

24일 인문학스콜레 강연에서 김이듬 시인(오른쪽)을 소개하고 있는 하재일 시인(왼쪽)
김이듬 시인을 소개중인 하재일 시인과 회원들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