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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아리 지붕 위로 둥그런 하늘이 열리네<공감공간> 일산 밤가시초가
  • 유경종 기자
  • 승인 2018.03.30 21:41
  • 호수 1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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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물결 이겨내고 홀로 자리 지켜
자연과 조화 이룬 옛 사람들 삶의 흔적
절기에 맞춰 다양한 체험교육 진행

 


[고양신문] 일산이라는 지명 뒤에는 지금도 ‘신도시’라는 단어가 따라다닌다. 개발의 손길이 일산 들녘을 아파트 숲으로 변모시킨 게 어느새 30여 년 전 일이니 신도시라는 말을 이젠 떼어버릴만도 한데 우리의 관념 속에 일산은 여전히 ‘신도시’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 한강변에 펼쳐진 광활한 논밭과 얕은 구릉을 등진 전통마을의 풍경이 한순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래된 책갈피에서 발견된 빛바랜 사진 한 장이 유년의 시간을 고스란히 담고 있듯, 신도시 한가운데 과거의 시간을 오롯이 붙들고 있는 건물이 있다. 정발산 기슭에 자리한 밤가시초가다.

중부지방 유일의 ㅁ자 초가집

밤가시초가는 일부러 높은 둔덕을 쌓고 집을 올린 듯 보이지만, 사실 정발산과 연결된 완만한 구릉지의 끄트머리에 지어졌다. 초가가 자리하고 있는 땅의 높이 자체가 개발되기 이전 마을의 지형을 짐작케 한다.

밤가시초가라는 이름처럼 집은 밤나무로 기둥과 들보를 짰다. 단양이씨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살던 마을 산자락 주변에는 예로부터 밤나무가 지천이어서 집 짓는 재료로 사용된 것이다.

집이 지어진 지는 150여 년이 됐다. 그리 길지 않은 역사지만, 우리 땅의 모든 옛것들이 그렇듯 밤가시초가도 여러 차례 사라질 고비를 넘겨야 했다.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를 외치며 새마을운동이 밀어닥치던 시절, 집주인의 후손 이경상(당시 18세)씨가 낫과 호미를 들고 초가를 지켜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20여 년 후 일산신도시가 개발되는 과정에서 밤가시 초가는 다시 한 번 사라질 위기에 처하지만, 역시 이경상씨를 비롯한 지역 토박이들의 노력 끝에 1991년 경기도 민속문화재 8호로 지정됐다. 이후  주변이 정리되고, 민속전시관이 차려지며 선조들의 삶의 흔적을 살필 수 있는 소중한 공간으로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다양한 농기구와 생활용품이 전시된 민속전시관 모습.


햇살도 마당도 지붕 닮아 둥글둥글

안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마당 위로 동그랗게 열린 하늘이 눈에 들어온다. 초가를 둥글게 두른 모양이 머리에 얹는 또아리를 똑 닮아 ‘또아리 지붕’이란 별명이 붙었다. 신세대들에게 이름을 붙이라면 ‘베이글 지붕’이라 붙이지 않으려나. 또아리 지붕을 통해 바라보는 하늘은 눈부시지 않아서 좋다.

ㄱ자나 ㄷ자 모양의 일반적인 초가와 달리, 밤가시초가는 ㅁ자 모양을 하고 있다. 밤가시초가에서 문화재활용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컬처앤로드 이동범 대표는 이렇게 설명한다.
“원래는 ㄱ자 모양이었는데, 가족이 늘며 공간도 함께 늘려 ㅁ자 모양이 됐습니다.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참 살기 좋은 집이지요.”

이 소장의 말대로 밤가시초가로 들어서면 무척 아늑하고 평온한 느낌이 전해온다. 가운데가 움푹 파인 마당은 봉당이라고 부르는데, 둥그렇게 열린 또아리 지붕과 마주보듯 닮았다. 돌로 턱을 쌓아 기능과 멋을 더했고, 봉당과 턱을 이룬 마당 위에 주춧돌을 놓고 밤나무로 기둥을 세운 후 흙을 발랐다. 거기에 짚을 두툼하게 엮은 지붕을 얹고 새끼줄로 당긴 후 대나무를 걸고 서까래에 고정시켰다. 흙과 돌, 나무와 짚 등 자연에서 고스란히 옮겨 온 재료들이 어느 것 하나 튀지 않고 겸손하게 조화를 이룬다.

둥그렇게 열린 또아리 지붕 사이로 역시나 둥그런 햇살이 들어와 초가의 흙벽을 타고 돈다. 이곳에서 살던 이들은 햇빛의 그림자가 머무는 위치를 보며 시간을 가늠했다고 한다. 집 전체가 거대한 해시계인 셈이다. 일상에 조바심이 고일 때면 초가를 찾아 툇마루에 걸터앉아 시간이 느릿느릿 둥그런 몸을 굴리는 모습을 지켜봐도 좋겠다. 마음의 맥박이 조금은 느긋하게 뛸지도 모른다.
 

둥근 또아리 지붕으로 들어온 둥근 햇빛이 흙벽을 타고 흐르는 모습은 밤가시초가가 만들어내는 가장 아름다운 광경이 아닐까.


문화유산활용 프로그램 연중 열려

밤가시초가 아래엔 작은 민속전시관이 꾸며졌다. 안방과 건넌방, 외양간과 헛간, 그리고 부엌과 사랑방을 골고루 갖춘 전시관에는 옛사람들이 사용하던 200여 점의 농기구와 생활용품이 전시돼 생활사 교육장으로 활용된다. 건물 끄트머리에 툭 튀어나온 사랑방은 주말이면 고누, 산가지놀이 등 선조들의 놀이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개방된다.

기자가 찾은 날 마침 컬처앤로드가 진행하는 생생문화재사업 프로그램인 ‘밤가시초가에서 함께 부르는 농가월령가’ 수업이 열리고 있었다. 이날 수업과목은 해시계로 알아보는 전통과학 이야기. 해와 달과 별을 보며 시간을 재고 절기를 감지했던 조상들의 지혜를 체험을 통해 배워보는 시간이다. 전통과학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이동범 대표는 세종대왕이 만든 앙부일구 실물 모형을 직접 제작해 들고 왔다.
“앙부일구(仰釜日晷)는 하늘을 우러르는 가마솥 모양의 해시계란 뜻이지요. 시간만 알려주는 서양시계와 달리 앙부일구는 태양의 황도를 고스란히 눈금으로 옮겨 시간은 물론, 절기까지 정확하게 알려줍니다.”

자연의 순리를 살피려는 궁리를 멈추지 않은 조상들의 과학적 지혜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수업에 참가한 어린이들의 눈동자도 호기심으로 반짝인다. 
 

강사로 초청된 김지현 천문대장이 아이들에게 앙부일구 보는 법을 설명하고 있다. 김 대장은 우리 별자리를 연구하는 천문학자다.

 
밤가시초가에서 진행하는 체험 프로그램은 절기에 맞춰 농사를 짓는 농경문화체험 프로그램으로 연중 내내 진행된다. 4월 볍씨 고르기를 시작으로 감자캐기, 고구마심기 등 계절 따라 농사체험이 진행되고, 허수아비만들기, 짚풀공예 등 만들기 수업도 진행된다. 전부치기, 군밤굽기처럼 놀이와 미각을 함께 즐기는 시간도 준비한다. 매 시간 전문가가 강사로 초청돼 흥미로운 강의를 분야별로 진행할 예정이다. 자라나는 세대에게 조상들의 지혜를 들려주기에 가장 좋은 장소, 밤가시초가는 그렇게 우리의 마음 밑바닥을 채워주는 건물로 든든하게 존재한다.
 

밤가시초가에서 함께 부르는 농가월령가

진행 : 컬처앤로드 문화유산활용연구소 
모집 : 매회 초등학교 1~3학년 25명
신청 : 네이버카페 밤가시초가에서 프로그램 시작 2주 전 선착순 신청
(카페주소: cafe.naver.com/bamgasi)
문의 : 02-719-1495
 

세종 시절 전통과학의 수준을 증명해주는 앙부일구는 시간과 절기를 동시에 표시해주는 편리한 해시계다. 사진은 컬처앤로드에서 교육용으로 특별 제작한 앙부일구 복제품.
밤가시초가에서 생생문화재사업을 진행하는 이동범 대표가 프로그램에 참여한 어린이들에게 밤가시초가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유경종 기자  duney78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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