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특수교육지도사가 사라진 학교에 딸아이를 보내며…

[고양신문] “쟈 갖고 되것나? 아직 젊을 때 하나 더 낳아야지.” “내일 현장학습인데 보내시게요?” “중국 가면 수술시켜준대. 웃돈 더 주면 빨리 할 수 있고.” “자폐가 장내 미생물 때문에 생기는 거란 기사 봤어?”

아이를 기르며 수없이 들은 이야기입니다. 눈치채셨나요? 네. 결혼 10년만에 얻은 우리 지율이는 자폐2급입니다. 사실 이 말은 제 필살기에요. 아이 때문에 문제가 생겼을 때 이 말을 하면 사람들이 다 불쌍히 여겨 그럭저럭 넘어가요. 아이랑 식당에 가면 막 걱정돼요. 키즈카페에 가면 긴장되고요.  버스를 타면 심장이 쿵쾅거려요. 유치원에 가면 주눅이 들고요. 명절엔 슬퍼요. 그럴 땐 부적처럼 이 말을 품고 있어요. “결혼 10년만에 얻은 우리 지율이는 자폐2급이랍니다.”

그런데 점점 이 부적의 효험이 떨어져요. 제가 옆에 지키고 앉아서 시의적절하게 이 카드를 내밀 수가 없거든요. 지율이가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이 됐어요. 초등학교 입학할 땐 하루하루가 지옥이었어요. 그런데 저만 지옥이었나 봐요. 지금 보니 우리 지율이는 지난 1년 동안 자라고 있었더라고요.

발달장애 아이를 일반학교에 보내면서 큰 기대를 하진 않았어요. 한글도 셈도 영어도 제가 가르쳤고 피아노도 그림도 저랑 하면 되거든요. 사람들 속에서 생활하는 거 그거 하나만 해줬으면 했어요. 그런데 우리 지율이가 그걸 해요. 아는 친구 이름도 많고 친구가 좋다고도 합니다.
돌아다니는 친구를 앉혀놓고 선생님께 고자질도 해요. 선생님 칭찬에 우리 지율이가 기분 좋아 할 줄도 알더라구요.

모두가 특수교육지도사 선생님 덕분이에요. 특수교사를 도와 아이들의 생활을 돌봐주시는 특수교육지도사 선생님은 가정에서 신경 써야 할 일들을 챙겨주셨어요. 제가 잘 모르는 전문지식도 나눠주시고 제 얘기도 들어주시고 문제가 생기면 방법도 같이 연구하고 그랬어요.

전 특수교육지도사가 어떤 일을 하시는지도 몰랐어요. 선생님을 처음 뵈었을 때 ‘우리 지율이를 싫어하면 안되는데…’ 그런 생각만 했거든요. 학년이 끝나고 지도사 선생님이 가시면서 많이 우셨어요. 지율이의 1년을 함께한 선생님이 너무 고마워서 저도 막 울었어요.

그런데 이제 우리 지율이 학교엔 특수교육지도사 선생님이 없어요. 경기도 교육청의 예산이 부족해서 배치를 못했대요. 점점 지도사가 줄어든다더니, 이젠 지율이 순서가 온 거였어요.
지율이가 다니는 학교처럼 특수교육지도사가 배치되지 못한 학교의 비율이 경기도가 가장 높대요. 고양시만 들여다봐도 올해 112개 유치원과 각급 학교에서 특수교육지도사 배치를 경기도 교육청에 신청했는데 91개 학교에만 선생님이 배치됐어요. 21개 학교는 안타깝게도 특수교육지도사 선생님 없이 특수교육을 진행해야 한다는 말이에요.

저는 이제  필살기 카드를 버리려고요. 우리 지율이도 자라는데 저도 자라야죠? 저도 사람들이랑 눈 맞추면서 당당히 얘기할래요. 예산은 늘 부족하잖아요. 우리 집도 만날 생활비가 부족하더라고요. 공과금도 내야하고, 부모님 용돈, 대출금, 부조도 해야 하고…. 돈 쓸 일이 너무 많아요. 그래도 우리 공주 예쁜 봄옷은 사 주려구요. 부쩍 커버려서 작년에 입었던 바지가 짤록해졌으니까요. 돈이 부족하다고 꼭 지출해야 할 돈을 쓰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어요.

교육정책도 마찬가지 아닌지요. 예산이 부족해도 꼭 필요한 인력은 반드시 배치해야 되는 게 상식이라고 생각해요. 사회는, 무엇보다도 학교는 장애학생들이 기본적인 교육 권리를 지키는 문제를 개인의 몫으로만 돌려서는 안 되기 때문이지요. 이건 비장애 학생들을 위한 문제이기도 해요. 우리 사회가 다른 이의 아픔을 해결하기 위해 함께 고민하고 모두가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끔 노력하는 것이 더욱 가치 있는 교육일 테니까요.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에요. 모든 학교가 실시하는 장애인식교육은 장애의 뜻을 알게 하고, 인권존중과 배려라는 교육적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동시에 쓸쓸한 낙인효과도 만들었어요. 특수교육지도사 선생님은 그런 부작용으로부터 장애학생들을 지켜줄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에요.

장거리를 뛰어갈 때 인내심이 필요하듯, 단순한 돌봄을 넘어 아이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기다려줄 수 있는 전문 보조인력이 바로 특수교육지도사 선생님이니까요. 대한민국이 자라는 아이 몸에 옷을 입혀줄 경제력은 되는 나라 아니던가요? 그치요, 교육감님? 대통령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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