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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정세 대격변기에 떠오르는 ‘칼 폴라니’의 경고
  • 권태상 동국대 북한학 박사
  • 승인 2018.04.02 15:27
  • 호수 1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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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신문] 북한학박사라고 소개를 하면 흔히 많이 물어보시는 것이 “통일이 될까요?”, “북한은 왜 그래요?”라는 질문이었다. 초면에 모른다고 매몰차게 말하기 어려우니 “저도 잘 모르지만…”이라고 전제하고 조심스럽게 말씀드리면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본인의 생각과 고민을 줄줄 말씀해 주시는 경험을 종종했다. 그래도 기왕에 원고를 청탁받았으니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함부로 예측하지도, 모르는 걸 아는 척하지 않으면서 남북관계의 새로운 국면에서 우리가 한번 고민해보아야 할 문제를 이야기해보겠다.


칼 폴라니(Karl Polanyi)라는 경제인류학자가 있다. 그는 『거대한 전환』이라는 저서에서 인간의 이기심에 기초한 경제활동(특히 시장경제)은 호혜성과 재분배의 원리에 따라 조직된 인간사회에 묻혀있었다고 봤다. 그는 인류학적 방법론을 통해 인류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호혜성과 재분배 원리에 입각한 인간사회의 가치와 도덕 관습에 기초해서 경제활동을 해왔음을 입증했다. 

그런데 사회에 묻혀있던 혹은 사회적 질서에 의해 통제되던 경제활동(시장경제)이 19세기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거꾸로 사회를 지배하게 되었다고 본다. 즉, 시장자본주의의 탄생이다. 인간은 이기적 존재이며 시장을 통해 경제활동이 이뤄지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믿음이온 사회를 지배하게 되었다. 그 결과 원래 상품일 수 없는 노동, 토지, 자본이 상품이 되고 각각 시장이 형성됐다. 인간은 자식을 낳을 때 새로운 노동력으로 공급하기 위해 낳지 않으며, 토지는 단지 자연일 뿐이고, 화폐는 교환에 용이하도록 사람들 사이에 약속한 것일 뿐인데 이것이 상품이 되고 거래가 되는 세상이 만들어 졌다.

폴라니는 사회적 통제를 뚫고 나와 오히려 사회를 지배하게 된 시장자본주의를 ‘사탄의 맷돌’에 비유한다. 여기서 ‘사탄의 맷돌’은 윌리엄 블레이크의 서사시 밀턴(Milton, 1804)에 나오는 모든 것을 갈아버리는 맷돌을 의미한다. 즉, 시장자본주의가 모든 것을 상품으로 만들어버리고 결국은 인간의 삶을 파괴하고 말 것이라는 경고다. 

폴라니의 이러한 경고를 요즘 한반도의 남과 북을 보면서 공히 떠올리고 있다. 남과 북은 1945년 해방이 되면서 각기 다른 길을 선택했다. 시장자본주의를 받아들인 우리는 경제권력이 사회 전반을 장악하고 범죄자의 재판도 좌지우지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삼성공화국’이라는 조어(造語)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 북한은 소위 1994년 ‘고난의 행군’ 이후 ‘선군 정치’라는 것을 통해 ‘강성대국’을 이루겠다고 했지만 실제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시장을 허용했다. 한번 허용한 시장은 걷잡을 수 없이 성장했고 이제는 노동시장, 부동산 사용권 시장, 고리대까지 등장했다. 남북한이 시장경제를 매개로 만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조건의 성숙은 이윤획득과 경쟁에 익숙한 사고를 낳았고 남과 북의 미래와 관련해서 우리는 남북경제협력을 이야기하면서도 이윤동기를 중심으로 설명한다. 그 결과 흔히 ‘값싼 노동력’, ‘풍부한 지하자원’, ‘한국경제의 새로운 블루오션’ 류의 표현을 사용해서 북한이 우리경제에 새로운 활로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언론에서는 남북경제협력 국면에서 북한의 어디에 부동산 투자를 하면 좋은지 다루고 북한지역에 SOC투자가 늘어나면서 우리 젊은이들이 북한에서 직장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 하며 통일의 당위성과 경제협력의 당위성을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협력의 동기가 이윤획득이라면 시장자본주의로 이뤄지는 경제협력은 폴라니가 경고했던 사탄의 맷돌이 남북의 시민과 인민의 삶을 갈아버리는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 작년까지 유행했던 ‘헬조선’의 전 한반도화가 이뤄질 수도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한반도의 경제체제를 만들어 가야 할까? 우리와 북한 인민들의 삶을 어떻게 ‘악마의 맷돌’로부터 지켜 낼 것인가? 이런 고민에 대한 대답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다. 

한국사회에서 유행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운동의 기반이 되는 ‘연대의 경제’, ‘신뢰의 경제’를 남북경제협력에도 적용하고 실험해보는 것이다. 남북경제협력의 성과가 이윤이 목적이 아니라 ‘사회적 성과’를 얻어내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지난 2000년 6·15 공동선언이후 개성공단을 비롯한 많은 남북협력 사업이 추진되었다. 북한과의 경제협력은 북한의 값싼 노동력 공급을 전제로 추진되었다. 시장화가 진행됨에 따라 북한의 경제는 성장하고 있다. 더 이상 20여 년 전과 같은 조건으로 노동력을 공급할 수 없게 되었다. 경제논리에 따르면 인건비가 상승해서 더 이상 경쟁력이 없다면 남북경제협력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더 이상 이윤이 안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새롭게 진행될 남북경제협력은 새롭게 재구성되어야 한다. 이윤의 논리가 아니라 남과 북 시민과 인민들의 연대와 신뢰를 중심으로 우리의 삶을 복원하기 위한 남북공동체의 원리로 재구성해야 한다. 바로 이 이야기가 이 글의 결론이다. 우리는 새롭게 열리게 될 남북 경제협력의 기회를 어떻게 맞이하게 될 것인가? 우리는 저들을 이윤획득의 대상으로 볼 것인가? 함께 공존하고 연대할 대상으로 보는가? 지금부터 우리가 고민해볼 문제다.
 

 

권태상 동국대 북한학 박사  webmaster@mygo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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