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 소설가의 텃밭에서 세상읽기>

김한수 소설가

[고양신문] 오랜 시간, 참 많은 아이들과 농사를 지어왔다. 학교의 요청으로 텃밭동아리 강사를 맡기도 했고,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텃밭에서 대안교실을 열어 아이들과 알콩달콩 놀기도 했다.

아이들과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은 고양청소년농부학교를 만들면서부터이다. 참고할만한 사례가 아예 없어서 청소년농부학교를 만든 첫 해에는 참 고생도 많이 했지만 행복해하는 아이들의 모습 앞에서 우리들 또한 마냥 즐거웠다.

몇 년간 청소년농부학교를 운영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아이들은 스스로 자란다는 사실이다. 아이들은 가르침을 통해서 배우는 게 아니라는 걸 난 텃밭에서 만난 아이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생명을 키우는 과정을 통해 어떤 아이는 분노조절장애를 극복해냈고, 짱은 아이들에게 주먹을 휘두르지 않게 되었으며, 소문난 왕따였던 아이는 아이들 속에서 웃음을 되찾았다. 무기력의 대명사로 불렸던 아이들은 왕성한 활동력을 뽐냈으며, 자퇴를 고민하던 아이는 무사히 졸업을 했다.

청소년농부학교를 만들었던 우리들이 한 일이라곤 아이들 곁에서 농사짓는 방법을 알려준 것밖에 없다. 그런데 아이들은 스스로 변화를 이끌어냈고 성장을 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개입할 때 성장을 멈춘다. 실제로 부모의 강권에 마지못해 끌려온 아이들은 내내 인상만 쓰다가 중도에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아이들을 보면 정작 배움이 필요한 건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들은 우리의 아이들이 훌륭한 시민으로 성장하길 바라면서도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아이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많다. 일찍이 노자는 아이를 보호하는 그 순간 그 아이는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된다고 이야기했다. 아이들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삶을 매 순간 당당하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하고 어른들은 아이들의 곁에서 의연하게 믿고 기다려야 한다.

아이들과 함께 텃밭을 일구다보면 아이들만 성장하는 게 아니다. 어른들도 함께 성장한다. 자연과 아이들이 어른들을 배움의 길로 이끌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시간을 아이들과 함께 농사지어오면서 난 전국의 모든 초중고에서 정규수업시간에 아이들에게 농사를 가르쳤으면 좋겠다는 꿈을 꾸게 되었다.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난 텃밭교육이 학교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훌륭한 매개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지난 2년간 청소년농부학교에서 동고동락을 해왔던 강사들과 함께 청소년농사교과서를 만들어왔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달에 ‘청소년농부학교’라는 결과물을 내놓게 되었다.

당장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언젠가는 전국의 모든 아이들이 학교에서 텃밭을 일구며 환하게 미소 지을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다고 믿는다. 그때가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아이들은 학교에서 국영수가 아닌 의식주를 배우면서 자기 삶의 주인으로 우뚝 서고, 자아를 넘어서 세계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아직은 요원한 이야기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우리 모두가 가능하다고 믿는다면 불가능도 현실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의 삶을 생각하면 가급적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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