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 빛 시 론>

김종일 동화작가

[고양신문] 꽃들이 앞다투어 피어나 산하를 아름답게 수놓고 있다. 이처럼 뭇 생명들은 때가 되면 일제히 꽃을 피운다. 자연의 섭리는 이래서 오묘하다. 인위적인 인간 세상과는 다르게 순리에 따라 운행되는 것이다. 올봄은 작년 봄과는 달리 비도 자주 내려 봄 가뭄 걱정을 덜었다. 그런데 뒤늦게 때늦은 추위와 눈이 내려 봄 밭작물에 적지 않은 피해를 주었다. 남부 지방의 마늘이 동해를 입어 자라지 못하고 누렇게 입이 말라간다는 소식이 들리는 것이다. 기상 이변은 이제 다반사로 일어나 피해를 주고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대비책이 필요한 실정이다. 그러나 하늘이 하는 일을 인위적인 방법으로 예방하는 데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기상 이변은 인간이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것에 대한 일종의 경고다. ‘순천자는 흥하고 역천자는 망한다’라는 단순한 진리의 말이 여기에서도 일맥상통하는 말일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지난해와 올해 두 지도자의 몰락을 보면서 이 말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겠다. 하늘의 뜻에 순응한다는 말은 국민의 뜻에 따르는 순천자이고, 국민의 뜻을 저버린다는 것은 역천자에 속하는 말이다. 이 두 지도자는 공통적으로 국민의 뜻을 저버린 역천자가 된 지도자들이다.

‘붉은 꽃 열흘’이라는 말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한자어로 바꿀 수 있는데, 아무리 아름다운 붉은 꽃도 열흘 이상 가지 못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세상에 영원한 것이 없고 항상 변한다는 말이고, 시간이 지나면 변하게 된다는 의미다. 꽃도 그러하거니와 인간의 권세와 부귀영화도 언젠가는 다 없어져 버린다는 허무한 인생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 이런 단순한 이치를 인간은 깨닫지 못하고 눈앞의 이익에 급급하고 있다. 권세와 부귀영화, 돈도 일순간이다. 모든 것이 영원할 수 없다. 그런데도 인간은 탐욕에 눈이 멀어 자족하지 못하고 욕심을 부리다가 종국에는 파멸의 길로 들어서고 만다. 옛날 송나라 때의 비구니 스님이 지은 오도송(伍道頌)에 심춘(尋春)이란 시가 전해진다. 시의 전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尋 春(심춘)
盡日尋春不見春 (진일심춘불견춘)
芒鞋遍踏籠頭雲 (망혜편답농두운)
歸來笑撚梅花臭 (귀래소연매화취)
春在枝頭已十分 (춘재지두이십분)

날이 다하도록 봄을 찾아도 봄은 보지 못하고
짚신이 닳도록 이랑머리 구름만 밟고 다녔네
허탕치고 돌아와 매화가 피었기에 향기를 맡았더니
봄은 이미 가지 끝에 있었네

봄이 온듯하여 봄을 찾아서 종일 짚신차림으로 산속을 이리저리 헤매었다. 그러나 결국 찾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에 매화나무를 쳐다보니 이미 가지 위에 봄기운이 완연하더라는 뜻이다. 이 내용을 다시 살펴보면 봄은 이미 우리 가까이에 와 있는데 그것도 모르고 엉뚱한 짓으로 힘을 뺐다는 내용이다.

벨기에 출신의 작가 마테를링크의 파랑새라는 작품도 이와 흡사한 내용이다. 작품의 주인공인 치르치르와 미치르 역시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 꿈의 나라로 떠나지만 고생만 하였지 정작 찾고자 하는 파랑새를 찾지 못하였다. 천신만고 끝에 집에 돌아와 보니 찾고자 하는 파랑새는 집에 있었다. 이 작품에서도 행복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자기 주변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의미심장한 내용이다. 여기에서 심리학의 ‘파랑새 증후군’이라는 명칭이 생기기도 하였다. 파랑새 증후군이란 주어진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새로운 이상을 꿈꾸는 증세 즉, 정신적인 성장이 정지한 현상을 말하는 것이다.

두 전직 대통령도 이 파랑새 증후군에서 자유롭지 못하였던 듯싶다. 이런 일이 전직 대통령에게만 국한되는 것일까. 현대인들은 모두 ‘파랑새 증후군’을 앓고 있는지도 모른다.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