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르포> 폐지수집인들의 눈물

반토막 난 폐지 값, 장기적 해결책 없어
수집인들에게는 생명줄 죄는 두려움
"하루 종일 일 해봐야 만원도 벌기 힘들어"

 

힘겹게 손수레를 끌고 폐지고물상으로 향하는 서정순(가명)씨. 손수레에 실린 종이박스를 넘기고 이날 서씨가 받은 돈은 달랑 2000원이다.

 
[고양신문] 봄꽃은 빈부를 차별하지 않는다. 고급 주택가의 정원에도, 가난한 달동네의 뒤란에도 똑같은 색깔과 향기로 새 생명의 잔치를 벌인다. 하지만 사람 사는 세상은 다르다. 누군가에겐 단순한 불편함의 문제가 누군가에게는 삶을 벼랑 끝으로 내 모는 가혹한 사태가 되기도 한다. 최근 불거진 재활용쓰레기 문제가 그렇다.
아파트단지를 중심으로 비닐과 플라스틱 등 재활용쓰레기 수거에 차질이 생겨 온 나라가 들썩거린다. 중국의 수출길이 막혔기 때문이란다. 환경부와 지자체가 서둘러 대책을 마련해 급한 불을 껐다며 한숨을 돌리지만, 손수레를 끌고 골목길을 누비는 폐지수집인들의 사정은 심각하다. 폐지값이 두어 달 만에 반토막이 났기 때문이다.
연약한 삶의 뿌리마저 흔들리고 있는 폐지수집인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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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시청 인근 고물상 10여 곳,
밑바닥 삶의 마지막 기댈 언덕 


고양시청 앞을 가로지르는 교외선 철로 교각 아래로 이어진 샛길을 따라 들어가니 대풍자원이 나온다. 비철, 고철, 파지 등 다양한 재활용품을 취급하는 고물상이다. 울타리 삼아 늘어선 비닐하우스 주변으로 벚꽃과 매화가 만발하다. 시청에서 직선거리로 400여m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주변 풍광은 한적하지만, 울타리 안에서는 고철을 분해하고, 파지를 쌓는 등 너댓 명의 일꾼들이 각자의 일거리를 처리하느라 바쁘다.

전영시 사장은 원당에 자리 잡은 지 30년이 넘었다며 나름 터줏대감이라는 자부심을 드러낸다. 대풍자원에는 하루 종일 폐지를 싣고 오는 수집인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어림잡아 40여 명이 이곳에서 수집한 폐지를 부려놓는다. 대개 주교동과 성사동 인근에 거주하는 노인들이 대부분이지만, 아직 노인 소리를 듣기는 이른 젊은 축도 꽤 된다.

수집인들의 행색은 각양각색이다. 손수레 한가득 빽빽이 종이를 야무지게 쌓아 온 이도 있고, 유모차 위에 겨우 몇 덩이를 달랑 싣고 와 지폐 한두 장을 받아가는 이도 있다.
폐지 수레가 가장 먼저 향하는 곳은 무게를 측정하는 계근장이다. 이곳에서 종류대로 무게를 단 후 계근직원으로부터 가격을 적은 영수증 한 장을 받아 사무실로 온다. 그러면 전 사장이 주머니에서 지폐를 세어 영수증에 적힌 금액을 수집인에게 건네면 거래가 마무리된다. 외상은 없다. 늘 현찰로 지불되니 고물상만큼 신사적인 업종도 없다.

반경 1㎞ 안에만 대풍자원과 같은 업소가 10여 곳이지만, 유독 이곳에 수집인들이 많이 몰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가장 값이 헐한 파지(종이박스)값을 다른 고물상보다 1㎏당 10원 더 쳐주기 때문이다.
10원을 더 쳐주면 얼마일까? 겨우 50원이다. 수레 한가득 파지를 모아봐야 100㎏ 안팎, 5000원을 손에 쥘 뿐이다.  
“몇 달 전부터 중국 수출이 막히면서 폐지값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어요. 앞으로도 값은 점점 더 떨어질 거예요. 국내 재생제지공장의 소화물량으로는 택도 없거든요.”  

파지수집인도, 고물상 주인도 살 길이 점점 막막해진다며 전 사장은 혀를 찬다. 중국으로의 수출길이 막힐 거라는 건 전 사장 같은 소규모 고물상 주인들도 진작에 예상했단다. 그럼에도 눈에 뻔히 보이는 사태가 코앞에 닥치도록 나라에선 아무 대비도 없었단다.
“진작부터 중국시장을 대체할 수출국을 찾든지, 아니면 국내 재활용가공시설을 늘리든지 했어야지요. 힘 있는 사람들의 생계가 달린 문제라면 이렇게 팔짱끼고 있었겠어요?”

전 시장의 말대로 재활용쓰레기 순환 문제는 단순히 수거 문제가 아니다. 수거해서 어떻게 소화할 것인지에 대한 해결책이 열리지 않으면 값은 점점 떨어져 수집인들의 마지막 생계를 잘라버릴 게 뻔하다.

대풍자원 마당 한쪽에도 출구가 막힌 거대한 페트병 자루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어쩔 수 없이 대풍자원도 더 이상 페트병을 받지 않기로 했단다. 이대로 가다간 머잖아 주택가 골목마다 아무도 가져가지 않는 재활용쓰레기가 쌓여갈지도 모르겠다.

대풍자원에 드나드는 폐지수집인들이 하루에 평균 얼마를 벌어갈까?
“요즘엔 부지런한 남자들도 1, 2만원 가져가기 어려워요. 노인네들은 겨우 몇천원이 고작이구요. 소일삼아 하는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폐지수집이 유일한 돈벌이인 양반들입니다. 그걸로 쌀 사먹고 반찬 사먹는 이들이에요. 여기서 폐지값이 더 떨어지면, 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뒤로 한 발 더 물러서라고 하는겁니다.”

이야기를 하는 사이 폐지 계근을 마친 한 수집인이 영수증을 들고 와 8000원을 건네받는다. 한쪽 손이 불편한 장애인이다. 전 사장은 “하루에 두세 번 들르는, 가장 부지런한 양반”이라고 귀띔해준다. 숨 고를 새 없이 돌아서려는 수집인에게 전 사장이 사무실에서 믹스커피나 한 잔 마시고 가라고 권한다. 고물상 사무실에서 얻어 마시는 믹스커피 한 잔은 폐지수거인들이 이 사회로부터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대접인지도 모른다.
 

시청 인근에 자리한 대풍자원 전용시 사장. 30년동안 재활용자원을 취급했지만, 요즘처럼 폐지값이 떨어져 시름이 깊은 적은 없었다고 말한다.


허리 굽혀 일하고 번 푼돈이 유일한 용돈
“길거리에서 거저 얻었으니 감사해야지”


일흔여덟 살 김영옥(가명)씨는 삼송에서 매일 지하철을 타고 원당으로 온다. 역에서 내려 아는 가게에 맡겨 둔 카트를 끌고 하루를 시작한다. 성사동과 주교동 골목골목 나름 정해 둔 코스를 돌며 폐지와 재활용품을 싣는다. 나이가 많아 건물 청소일을 할 수 없게 된 후 폐지를 줍기 시작한 지 3년쯤 됐다. 그래도 다른 폐지노인들과 비교해 보면 자신이 괜찮은 형편이라 말한다.

“영감하고 아들하고 같이 살아. 손자도 한 놈 있고. 며느리가 이혼하고 떠났지만 어쩌겠어. 그럭저럭 네 식구 밥 먹고 살면 됐지.”
집에서 놀자니 우울증이 생겨 폐지 모으는 일을 시작했다지만, 이 일을 해 얻는 약간의 수입이 김씨에게 얼마나 요긴할지는 짐작이 간다. 본인과 남편의 최소한의 용돈이 나올 곳이라곤 이 일밖에 없기 때문이다. 손자에게 과자 한 봉지라도 쥐어주며 할머니 노릇 하게 해 주는 것도 폐지수집 덕분이다.

“그런데 요새 종이값이 떨어져서 많이 섭섭해. 꼬박 이틀 일한 돈으로 달랑 과일 한 봉지 사 가자면 좀 슬퍼. 하지만 별 수 없지 뭐. 매일 뉴스에서 비니루 이야기 나오잖아. 종잇값도 나라에서 무슨 대책을 세워주시겠지. 설마 우리 같은 노인네들 죽으라고 두진 않을 거 아냐?”
김씨가 가져온 폐지를 계근대에 달아보니 파지가 36㎏, 흰 종이가 20㎏, 책이 10㎏이다. 손에 쥔 돈은 6300원. 그나마 값이 많이 나가는 흰종이랑 책이 있어서 다행이라며 김씨가 환하게 웃는다.
“길거리에서 거저 얻은 거니까 이거라도 감사해야지.”

80에 가까운 고령의 노인이, 남들은 미세먼지 두려워 잠시의 외출에도 마스크를 챙기는 날씨 속에서 매일 대여섯 시간 골목을 돌며 얻은 수입을 그는 ‘거저 얻었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질문은 김씨에게 사치다. 폐지값이 이 추세로 하락해 버린다면, 골목의 틈새에서 김씨가 땀흘려 찾는 작은 행복마저 날아가 버릴 게 자명하기 때문이다.     
 

계근(무게측정)을 마친 서정순(가명)씨가 폐지박스를 적치장으로 옮기고 있다.
김영옥(가명)씨가 받아든 영수증에는 하루 노동의 댓가인 6100원이 적혀 있다.

 
“배고프고 속상해 매일 울어”
골목길 폐지보다 헐한 노동의 무게


한눈에도 헐렁하게 채운 손수레를 몰고 고물상으로 향하는 서정순(75세. 가명)씨는 당뇨를 앓고 있지만 일을 놓을 수 없다. 역시 당뇨를 앓고 있는 남편은 증상이 훨씬 심해 10년째 자리에 누워 있고, 일정한 수입이 없는 아들로부터는 아무런 경제적 도움을 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애등급도 낮고, 명목상의 부양책임자도 있어 나라에서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부모의 형편을 가끔 들여다보던 딸마저 몇 해 전 불행한 가정사를 견디지 못하고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하고 말았다.

서씨는 일산읍 주엽리에서 태어난 토박이다. 일산초등학교를 나와 당시로는 남 못잖게 공부도 해 유치원 교사로도 일했지만, 대물림된 가난을 벗어나진 못했다. 평생을 식당을 전전하며 일했지만 몇 해 전부터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그마저도 일자리를 잡을 수 없었다. 보통 가진 것 없는 이들이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 식당일이나 청소일이라 하는데, 폐지수집은 그 일에서마저도 밀려난 이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마지막 일거리다. ‘인생 막차’라는 말이 빈말이 아니다.    

시청 근처 반지하 월셋방에 살고 있다는 서씨는 빌라와 자영업소가 많은 원당이 그나마 자신 같은 힘 없는 폐지수집인들에겐 가장 일하기 좋은 동네라고 말했다. 구석구석 골목을 매일 돌다 보면 나름대로 정기적으로 폐지를 내 주는 거래처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주 가끔이긴 하지만, 형편을 아는 이웃들이 그나마 돈이 좀 되는 고물이나 철물 등을 가져가라고 선뜻 내 주는 행운 같은 날이 찾아오기도 한다.  

“동회(주민센터)를 찾아가 쌀을 좀 달라고 해도 자격이 안 돼 줄 수가 없대. 일주일에 한 번씩 점심을 주는 교회 두 군데를 찾아가는 날이 그나마 따뜻한 밥을 먹는 날이야. 어제도 교회에서 밥을 먹고 나오는데, 나 사는 형편을 아는 여자 목사님이 글쎄 콩나물을 한 봉지 들려주는거야. 그걸 무쳐 저녁 반찬을 먹는데 얼마나 눈물이 나오던지….”

서정순씨는 이야기를 하다 말고 펑펑 울음을 터뜨려 기자를 당황스럽게 했다. 
“종이 주워서 한 달에 겨우 십 몇 만원 벌어 쌀이나 라면 사먹고 살았는데, 이제는 10만원도 못 벌어. 우리 식구 죽으란 얘기야. 요샌 구루마 끌고 다니며 배고프고 너무 속상해 매일 울고 다녀. 교회 다니는데 원망만 나와….”

한바탕 울고 난 서씨가 다시 구루마를 끌고 대풍자원으로 향한다. 이날 그의 손수레에 실려 있는 폐지를 건네고 받은 돈은 겨우 2000원이었다. 가난한 자의 노동의 값이, 고통과 슬픔의 무게가 폐지만큼이나 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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