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경인의 정신의학칼럼>

[고양신문] 알코올 중독은 흔히 의지가 약해서 생기는 것으로 오해를 받고는 한다. 의지를 가지고 딱 끊으면 되는데 유혹에 넘어가는 것은 의지의 부족 때문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알코올 중독 환자만큼 의지가 강한 분들이 있을까 싶다. 폐암에 걸린 흡연자는 거의 예외없이 담배를 끊는다. 반면 간암에 걸린 알코올 중독자는 거의 대부분 술을 끊지 못한다. 이유를 물어보면 간암에 걸린 것이 너무 속상하고 괴로워 술을 도저히 끊을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음주로 인해 간암이 발병했을 가능성, 증상이 악화될 가능성을 생각하면 어불성설이다.

만성 췌장염으로 음주를 하면 지독한 통증에 시달리는 한 중독자는 매달 음주를 반복하며 진통제 주사를 맞기 위해 응급실에 달려온다. 온몸이 땀에 흠뻑 젖고, 이마 혈관이 지렁이처럼 튀어나올만큼 고통스러워 말도 잇지 못하는 환자는 마약성 진통제 주사를 맞고서야 겨우 숨을 돌린다. 그리고 지옥 같은 고통이었다며 다시는 술을 먹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매달 단골 고객처럼 같은 상황으로 응급실을 찾는다. 술에 대한 강한 의지가 술을 못 마시게 하는 모든 역경을 극복하는 것이다.

정신의학적 입장에서 보자면, 알코올 중독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물론 의지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나 알코올 중독의 본질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간암이나 폐렴이 의지만으로 낫지 않는 것처럼 알코올 중독도 의지만으로 치료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알코올 중독의 본질은 무엇일까? 바로 독성 물질에 의한 만성 뇌손상이다. 알코올은 살균을 하는 데 쓰이는 물질이다. 당연히 세포로 되어 있는 우리 몸도 파괴하는 독성이 있다. 그래서 술을 섭취하게 되면 간은 알코올이라는 독을 해독하기 위해 열심히 작동한다. 그런데 음주가 지속되면 간 손상이 심해지고, 더 이상 해독이 진행되지 못하면 뇌 손상으로 이어진다. 마침내는 알코올성 기억력 장애나 알코올성 치매로 진행된다. 이런 점에서 만성적인 중독으로 치매나 죽음에 이르게 하는 수은, 카드뮴 등 중금속 중독과 다를 게 없다. 다만 수은이나 카드뮴은 모르고 섭취하지만 술은 자발적으로 섭취한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술에 의해 손상되는 뇌의 부위는 어디일까? 우리가 술에 취했을 때 나타나는 모습이 손상되는 부위의 현상이라고 보면 된다. 이런 급성 손상이 누적되어 만성 손상으로 이어진다. 술을 먹고 종종 필름이 끊기는 사람은 나중에 술을 마시지 않는데도 늘 필름이 끊기게 된다. 알코올성 기억력 장애다. 이 상황에서도 꿋꿋이 음주를 하게 되면 알코올성 치매로 진행된다. 술을 마실 때 비틀거리는 사람은 나중에는 술을 마시지 않아도 보행장애가 생긴다. 

음주로 인한 손상 중 가장 문제가 되는 부위는 전전두엽이다. 이마 앞쪽에 있는 이 부위는 미래를 내다보고 계획하는 것을 관장한다. 우리가 직장에서 상사에게 더러운 꼴을 당해도 사표를 내지 않고 참을 수 있는 것은 전전두엽에서 사표를 내면 앞으로 어떻게 살까를 고민해주기 때문이다. 충동을 조절하고 사람을 사람답게 해주는 고위 능력인데,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넘어서야 이 기능이 활성화된다. 다섯 살짜리 꼬마는 마트에서 장난감을 사달라고 뒹굴지만, 성인은 그런 행위를 하지 않는다. 바로 전전두엽의 발달 여부로 설명되는 부분이다.

‘술을 마시면 사람이 개가 된다’는 말이 있다. 이는 술에 의해 전전두엽 기능이 마비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음주 상태에서는 충동적인 행동을 하거나 쉽게 흥분하기도 한다. 이러한 전전두엽의 손상이 누적되기 시작하면 술을 마시지 않아도 충동 조절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술에 대한 충동도 당연히 조절되지 않는다. 따라서 만성 알코올 중독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만성 뇌손상의 누적에 의한 중독 관리 능력의 상실 때문이다.

다섯 살 꼬마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앞에 두고 못 참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알코올 중독자의 전전두엽은 다섯 살 꼬마의 그것과 같아서 술이 억제되지 않는다.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먹고, 나중에는 술이 사람을 먹는다는 말도 이를 설명해주는 말이다. 단순히 의지의 문제로 본다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적절한 의학적 치료로 만성 뇌손상에서 회복되는 과정이 알코올 치료의 본질인 것이다.

설경인 정신과의사(상록의료재단 화정병원)


“우리는 알코올에 무력했으며, 우리의 삶을 수습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시인했습니다.”
알코올 중독치료 12단계의 첫 번째 선언이다. 의지의 문제가 아님을 시인하는 것, 그 것 이야말로 알코올 중독 문제 치료의 가장 중요한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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