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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윽한 정취 품은 숲길에서 봄을 만나다<공감공간> 고양 서오릉
  • 유경종 기자
  • 승인 2018.04.23 14:14
  • 호수 1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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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오릉을 대표하는 명릉. 비각 오른쪽 위편으로 숙종과 인현왕후의 쌍릉이 보인다.

 

[고양신문] 미세먼지와 꽃샘추위가 번갈아 찾아오는 심술궂은 날씨가 이어졌지만, 그래도 봄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봄나들이의 대명사는 꽃구경이지만, 그에 못잖게 싱그러운 봄기운을 즐길 수 있는 나들이가 나무에 돋는 연둣빛 새순을 만날 수 있는 숲길 나들이가 아닐까.
인근에서 가장 깊고 그윽한 정취를 품고 있는 숲길을 만나보기 위해 고양시의 남동쪽, 서울 은평구와 경계를 이루는 창릉동에 자리한 서오릉을 찾았다.

고양땅과 인연 깊은 숙종 임금의 명릉 

도심에 인접한 왕릉들이 대개 그렇지만, 서오릉으로 들어서는 초입에도 화원과 음식점이 늘어서 있어 조금 혼잡하다. 하지만 매표소를 지나 경내로 들어서면 정갈하고 그윽한 느낌이 사방을 감싼다. 바깥세상과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르는 공간에 살짝 발을 들인 기분이랄까. 긴 세월을 감싸안은 오래된 능의 완만하면서도 풍성한 봉분과 그 앞을 장식한 석물들, 그리고 정자각과 비각 등 최소한의 건축물들이 소박하면서도 품격 있게 조화를 이루며 제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는 공간이 바로 조선의 왕릉이다.


이러한 특별함을 인정받아 조선의 도읍 한양 인근에 차례차례 조성된 마흔두 개의 조선왕릉 전체가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세계유산 등재를 계기로 조선왕릉의 위상은 더 이상 죽은 이의 땅이 아닌, 현재를 살아가는 후손들과 호흡하는 소중한 역사문화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서오릉은 서울 동쪽 동구릉 다음으로 많은 다섯 개의 능을 한꺼번에 품고 있다. 가장 먼저 만나는 명릉에는 조선 19대 임금 숙종과 둘째, 셋째 왕비인 인현왕후, 인원왕후의 무덤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숙종이 누구인가. 인현왕후와 장희빈이 등장하는 궁중비사를 다룬 사극의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하는 임금인데, 실제로는 당대의 파벌과 세력싸움을 정략적으로 조정하며 강력한 왕권을 휘두른 군주였다. 그는 무려 47년 동안 왕위를 지키며 다양한 업적을 남겼는데, 북한산의 대표적 역사유적인 북한산성을 축조한 것을 비롯해 고양땅과 특별한 인연을 보여준다.
살아 생전 연을 맺었던 세 명의 왕비에 후궁 장희빈의 묘(대빈묘)까지, 숙종을 둘러싼 파란만장한 이야기들이 고스란히 서오릉에 남아있다.
 

능의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인 재실.


왕릉을 감싸고 흐르는 맑은 실개천

명릉을 지나면 왕릉의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인 재실이 나타난다. 각종 제기와 예복, 향과 축을 보관하기도 하고, 제사를 준비하는 이들이 미리 와 묵기도 한다. 제실 주변에는 수령이 지긋한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을 만날 수 있다. 벚꽃은 이미 짧고 강렬한 열정의 시간을 마감하고 바람이 불 때마다 아쉬운 마음을 우수수 실어 보내고 있다. 담장 옆에 몇 그루 서 있는 목련은 공원에서 흔히 만나는 중국목련이 아니라, 꽃봉오리가 작고 가느다란 우리나라 토종 목련이다. 
재실을 지나면 작은 개울이 나타난다. 왕릉에 잠든 이들을 깨우지 않으려는 듯 소리 없이 흐르는, 앵봉산 골짜기에서 계곡을 따라 내려온 실개천이다. 조용히 다가가 살펴보니 지난 가을 떨어진 낙엽이 퇴적된 맑은 물 위로 송사리떼가 헤엄친다. 그들만의 작은 세상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조용히 물러나온다.     
 

좌우로 도열한 나무들이 능 주인을 향해 절을 하고 있는 풍광을 보여주는 익릉.

 
능을 둘러싼 나무들의 풍광 빼어난 익릉

개울을 따라 올라가며 만나는 익릉은 숙종의 첫 번째 왕비인 인경왕후의 능이다. 이곳에서는 주변을 둘러싼 숲의 풍광에 눈을 돌려보자. 어로의 좌우편을 따라 늘어선 키 큰 소나무들이 마치 능의 주인에게 경배를 올리듯 중앙을 향해 비스듬하게 몸을 기울이고 있다. 비록 왕후의 능이지만 무덤을 둘러싼 소나무숲의 경관만큼은 조선왕릉 전체를 통틀어도 손가락에 꼽힐 만큼 아름답다.

홍살문 앞 숲속 쉼터는 방문자들에게 최고의 명당이다. 키 큰 소나무 그늘 사이에 통나무 의자가 군데군데 놓여 있어 잠시 숨을 고르며 익릉의 풍광과 서오릉 뒤편 앵봉산의 은근한 능선을 감상하기에 더없이 좋다. 발 아래를 자세히 살피면 작고 앙증맞은 들꽃이 인사를 건넨다. 익릉을 거쳐 순창원과 경릉, 대빈묘까지 살펴보면 대략 한 시간 코스에 해당한다.

시간 여유가 좀 있다면 언덕길을 넘어 만날 수 있는 홍릉과 창릉까지 마저 들러보자. 혼자만의 여유를, 또는 동행한 이와의 오붓한 분위기를 누리기에 적당하다. 창릉은 조선 8대 왕 예종과 계비 안순왕후의 능이다. 창릉동, 창릉천이라는 이름이 바로 이 능에 호적을 둔 이름인 셈이다.
 

익릉 주변의 키 큰 소나무숲.
영조의 원비 정성왕후의 능인 홍릉.

 
단단한 목질 뚫고 돋는 연둣빛 봄 잎싹

서오릉은 능도 유명하지만, 최근에는 뒷산의 아름다운 숲길로도 명성을 얻고 있다. 앵봉산 중턱을 횡으로 잇는 서어나무길은 이름처럼 서어나무가 군락을 이룬 숲이다. 서어나무는 목질이 단단하고 수피가 울퉁불퉁 독특한 질감을 과시한다. 덕분에 ‘숲속의 보디빌더’라는 별명이 붙은 근육질의 나무다. 짙게 태닝을 한 우람한 보디빌더들이 도열한 숲길을 걷는 기분이 특별하다. 단단한 표피를 뚫고 파릇파릇 돋은 새순은 더없이 부드럽다. 

세심히 살펴보면 서어나무뿐 아니라 다양한 나무들이 경쟁하듯 자라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앞서는 이가 있으면 뒤따르는 이가 있듯, 나무들이 잎싹을 내는 시기도 각각 다르다. 벚꽃이나 목련, 산수유는 잎보다 꽃이 먼저 피지만, 가장 먼저 초록색 잎을 틔우는 나무는 바로 귀룽나무다. 커다란 수형에 비해 작고 소박한 흰색의 꽃망울을 나무 전체에 매달고 있다. 

서어나무 숲길을 40여 분 걸었을까. 숨이 찰 무렵 고갯마루에 다다르면 바람 속에 은은한 솔향기가 배어난다. 길은 어느새 울창한 소나무 숲 사이로 이어진다. 조림한 지 20여년밖에 안 된 숲이지만  소나무 특유의 멋스러움을 잔뜩 품고 있다. 어느새 기운 저녁 햇살이 소나무 줄기 사이를 통과하며 환상적인 색감을 연출한다.

소나무, 서어나무, 귀룽나무, 오리나무, 팽나무, 벚나무, 목련, 갈참나무,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은행나무…. 서오릉 숲길을 걸으며 차례차례 마주친 나무 이름들을 떠올려본다. 연둣빛 새잎싹이 들려주는 여리지만 꿋꿋한 생기를 나들이꾼의 마음속에 저장한다. 마침내 봄, 나무들의 찬란한 한해살이가 비로소 시작됐다.
 

숲속의 보디빌더라는 별명이 붙은 서어나무의 몸통.
서오릉 뒷동산의 소나무 숲.



고양 서오릉

고양시 덕양구 서오릉로 334-32
관람요금 : 1000원(고양시민 500원)
정기휴일 : 매주 월요일
문의 : 02-359-0900 
 

눈부시게 흰꽃을 가득 매달고 있는 귀룽나무.
다양한 나무들이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서오릉 산책로.

유경종 기자  duney78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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