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철들어볼까요?> 절기이야기(3) 곡우

한 해 풍년농사를 약속하듯 곡우비가 내리고 있는 고양호수공원 풍경(4월 23일 촬영).

 
[고양신문] 4월 20일은 봄의 마지막 절기인 곡우였다. 곡우(穀雨)를 한자로 풀어보면 봄비가 내려 곡식을 기름지게 한다는 뜻이다. 곡(穀)자는 곡식이라는 의미 외에도 기르다, 양육하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곡우에 내리는 비는 그냥 비가 아니라 씨앗을 키우는 생명의 비다.

곡우에는 농사뿐 아니라 고기잡이도 활발해진다. 곡우 무렵에는 흑산도 근처에서 겨울을 지낸 조기가 북상해서 충청남도의 격렬비열도까지 올라와 황해에서 조기가 많이 잡힌다. 이때 잡히는 조기를 ‘곡우사리’라고 하는데 이때의 조기는 아직 살은 적지만 연하고 맛이 있어 황해는 물론 남해의 어선까지 모여든다. 한식사리, 입하사리 때보다 곡우사리 때 잡히는 고기가 맛이 좋아 곡우사리 조기를 으뜸으로 쳤다. 영광군에서는 이때를 맞춰 굴비축제를 열기도 했다.

지역별로 곡우와 관련된 풍습도 다양하다. 경기도 김포에서는 곡우 때 나물을 장만해서 먹으면 좋다고 했는데, 곡우가 지나면 나물이 뻣뻣해지기 때문이다. 또 경북 구미에서는 곡우날 목화씨를 뿌리며, 파종하는 종자의 명이 질기라고 찰밥을 해서 먹기도 했다. 

곡우 무렵은 나무에 물이 많이 오르는 시기로 ‘곡우물’을 먹으러 유명한 산을 찾아다니는 풍습도 있다. ‘거자수’라고 부르는데 거제수나무, 자작나무, 박달나무, 물박달나무 등의 자작나무류에서 채취한 수액을 가리킨다. 곡우를 전후해서 마신다고 해서 ‘곡우물’이라고도 부른다. 위장병이나 신경통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경칩 즈음의 고로쇠 수액은 여자물이라 해서 남자들에게 좋고, 곡우물은 남자 물이어서 여자들에게 좋다는 말도 있는데, 믿거나 말거나.

진달래로 만든 화사한 화관.

 

촉촉한 봄비에 젖은 호수공원 능수버틀.

 
곡우의 절후현상으로는 초후에 수중식물인 개구리밥이 생기고, 중후에는 산비둘기가 깃을 털며, 말후에는 뻐꾸기가 뽕나무에 내린다고 했다. 입춘 이후로 꾸준히 낮이 길어져 수온이 올라가면서 곡우 무렵 물속에는 다양한 생명이 꿈틀거린다. 고양호수공원에서도 거북이와 물고기가 알을 낳았고 고추잠자리 애벌레가 하늘을 힘차게 날아오를 꿈을 키우고 있다. 공원의 연못이나 무논에서는 청개구리의 노랫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곡우는 농사의 절기라고 하지만 도시민으로서 바라본 곡우는 아름다움이 절정을 향해 내닫는 시기다. 흐드러지게 피었던 목련, 개나리, 진달래, 벚꽃은 지고, 귀룽나무, 수수꽃다리, 조팝나무, 박태기나무 등 갖가지 색상의 꽃들이 만발했다. 눈물나게 아름다운 저 꽃들은 과연 누가 피웠는가. 꽃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해님의 사랑을 듬뿍 받아 피어난다. 

입춘에 발심해 부지런히 석 달을 달리다보니 벌써 지친다. 우리도 해님의 사랑을 먹고 피어나보자. 해님 사랑의 축제, 봄꽃을 먹어야겠다. 진달래 몇 송이 따다 찹쌀반죽에 노릇노릇 구워 화전도 지져먹고, 제비꽃, 냉이꽃, 꽃다지 조금씩 따다가 크래커에 얹어 봄꽃 카나페를 만들어보자. 좋은 벗들과 함께라면 더 좋겠다.

곱게 피어난 꽃을 바라보면 아이나 어른이나 마음이 설레고 행복해진다. 그래서 누구나 꽃을 사랑한다. 꽃도 나를 사랑할까. 꽃도 나를 보면 마음 설레고 행복할까.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잎을 보고 서있으니 벚꽃이 나에게 묻는다.
“너는 누군가에게 꽃이 되어본 적이 있느냐.”

가까운 공원길에서 봄꽃나들이를 즐기는 사람들.
꽃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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