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범구 대사의 독일편지>

[고양신문] 고양의 이웃이었던 정범구 독일대사가 SNS를 활용해 흥미로운 일상을 들려주고 있다. 내용 일부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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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디자인으로 장식된 베를린의 고급백화점 쇼윈도.

며칠 전 멕시코 대사의 저녁 초대를 받아 다녀왔다. 그 자리에는 나 말고도 칠레,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대사 내외가 초대되어 늦은 시간까지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런데 나 빼고는 멕시코 포함 네 나라 대사가 모두 스페인어로 웃고 떠든다. 나라는 다 다르지만 언어가 하나인 것이다. 주한 대사로 5년간 근무한 적이 있는 Morfin 대사가 특별히 나를 초대해 준 것이 고맙지만 따발총처럼 쏘아대는 스페인어의 매력을 톡톡히 느껴야 했던 밤이었다.

그 때는 나라가 달라도 같은 언어를 쓴다는 게 꽤 부럽게 느껴졌다.

어제 오후에는 ‘세계 국제결혼 총연합회’ 임원진이 인사차 대사관을 방문했다. 외국인과 결혼한 한국여성들 모임으로, 전 세계에 5만 명 이상의 회원을 갖고 있다는 이 단체 회장을 독일에 거주하는 정명렬 여사가 맡고 있다.

정 여사는 과거 동독지역이었던 포어폼먼 메클렌부르크(Vorpommern-Mecklenburg) 주에서 독일인 남편과 호텔을 경영하면서 민간인 문화대사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그녀의 그런 활동은 KBS TV의 ‘인간극장’을 통해 국내에 소개되기도 했다.

정 회장 등 임원진들과 얘기를 나누다 다시 멕시코 이야기가 나왔다. 얼마 전 총연합회 연례모임이 멕시코 칸쿤에서 있어 다녀왔는데, 그들은 따로 자기들 말이 없이 스페인 말을 쓰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 말과 글자를 갖고 있는 우리나라가 새삼 자랑스럽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물론 멕시코에는 아즈텍 문명이 있었고, 중남미에는 마야, 잉카 등 고유의 고대문명이 있었지만 유럽의 침략을 받아 자신들의 고유문화를 상당 부분 훼손당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자신들의 언어를 잃어버린 것이다.

새삼 생각해 본다. 전 세계에 200개 가까운 나라가 있지만 자기 말과 글자를 갖고 있는 나라가 얼마나 될까? 터키나 베트남만 하더라도 말은 있지만 글자는 편의상 알파벳을 차용하고 있지 않은가? 일본의 ‘가나’도 독창적인 글자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유럽의 식민지가 되었던 아프리카 국가들도 설사 일부 부족 언어를 유지하는 경우에라도 글자는 부득불 로마 알파벳을 빌려 쓸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아침 출근길에 이곳 번화가인 쿠담거리(Kudamm Str.)를 지나오는데 뭔가 익숙한 그림이 지나간다. 베를린의 고급백화점 카데베(KaDeWe) 쇼윈도가 한글 디자인으로 장식되어 있는 것이다.
4월 한 달을 아시아 주간으로 설정했다던데, 그걸 표현한 것 같다.
한자 디자인? 못 봤다.(4월 12일).

정범구 독일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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