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윤의 하류인문학>

김경윤 인문학 작가

[고양신문] 암을 치료하는 신약이 개발되고 있다고 치자. 임상실험 결과 100명 중 10명은 완치이고, 20명은 병증이 호전되고 있으며, 30명은 별효과가 없었고, 20명은 더 나빠졌으며, 20명은 악화되어 사망에 이르렀다면 이 약을 시판해도 될까?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결코 이 약은 시판되어서는 안 된다. 아니 100명 중 단 한명이라도 치명적인 부작용을 일으킨다면 이 약은 시판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약(?)이 너무도 오랫동안 버젓이 성공이라는 이름으로 팔려왔다. 성적과 입시라는 약이다. 

학생들은 자신의 고유한 능력과 상관없이 국가에서 지정된 시험을 통해 9개로 등급이 매겨지고, 그 등급은 고스란히 입시와 연결된다. 대량생산을 위한 공장시스템은 불량품 0을 꿈꾸며 공정을 조정하고 향상시키는데, 시험과 성적, 입시에 목숨을 건 학교는 운영할수록 대다수의 불량품이 생산된다는 점에서 공장보다도 후진시스템이다. 활기차고 생기발랄하게 자신의 꿈을 키워나가야할 청소년들은 학교 시스템에 들어가면 꿈을 키워보기도 전에 대다수가 불량품으로 낙인이 찍히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통계청과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7년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청소년 중 46%가 전반적인 스트레스를 느끼며, 사망원인의 부동의 1위는 9년째 ‘자살’인 것으로 드러났다. 청소년은 4명 중 1명 꼴로 성적 스트레스에 따른 우울증과 싸우고 있으며, 하루 평균 1.5명의 청소년이 성적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살 원인으로는 1위가 부모와의 갈등, 2위가 학업으로 나타났다. 학생들이 무엇으로 부모와 갈등을 겪겠는가? 바로 학업과 성적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이를 살려야할 가정과 학교에서 아이를 죽이고 있다는 끔찍한 현실이 확인된 셈이다.

일찍이 이오덕 선생님은 이렇게 학생들을 죽이는 교육을 ‘살인교육’이라 말했고, 학생 간의 경쟁을 부추기는 교육시스템을 ‘식인교육’이라고 말하며 분노했다. 이오덕 선생님이 돌아가신 지금은 사정이 나아졌는가? 결코 나아지지 않았다. 사정이 이럴진대, 우리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

맘 같아서는 모든 학부모를 선동하여 학교 안보내기 운동이라도 하고 싶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학부모들도 선생들과 마찬가지로 경쟁과 입시를 통과한 우수한 학생들이 성공할 것이라는 거짓이데올로기의 선동자이며, 동조자이고 방관자들 아닌가? 사회와 학교가 경쟁과 입시의 광란에 빠져 있을 때라도 자식을 제대로 보호할 생각이었다면 가정만큼은 경쟁과 성적, 입시와는 다른 사랑과 신뢰의 장소여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아이들을 죽음의 시스템으로 강제로 밀어 넣었던 장본인들 아닌가? 아니 그도 못 미더워서 학교가 끝나면 학원에서 학원으로 뺑뺑이를 돌리며 아이들을 조리돌림해 온 불쌍한 경쟁시스템의 희생자들 아닌가?

이 세상에 좋은 선생, 부모가 많다지만, 그 좋은 선생들과 부모들이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이 교육현실을 외면하거나 방관하고 있다면, 이제 이 엄청난 살인과 식인 시스템을 누가 멈출 것인가? 아이들에게 직접 너희들을 불량품으로 만드는 시험 따위는 보지 말라고 선동해야 하는가? 살인과 식인현장에서 벗어나라고 외쳐야 하는가?

이 땅에 혁명이 필요하다면 가장 먼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할 것은 교육현장이며, 그 교육현장을 살인과 식인의 장소로 만들었던 입시제도이다. 성적 따위로 아이들을 판단하고, 아이들의 꿈을 짓밟는 이 현실의 근본적 혁명 없이는 그 모든 선거, 그 모든 승리, 그 모든 정권교체도 다 헛짓이다. 아이들은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데, 어른들이 희희낙락해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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