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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의 상록수, 양곡 이가순 이원재 부자<최재호의 역사인물 기행>
  • 최재호 고봉역사문화연구소장
  • 승인 2018.05.03 11:59
  • 호수 1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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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호 전 건국대 교수, 고봉역사문화연구소장

[고양신문] 일제강점기 독립 운동가이자 농촌 지도자였던 양곡(陽谷) 이가순(李可順, 1867~1943) 선생은 전주 이씨 익양군파(益陽君派) 12세손 종성(宗成)과 어머니 해주 오(吳)씨 사이의 큰아들로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선생은 청년시절부터 만주와 연해주를 오가며 독립운동에 열중했고, 1919년 원산에서 3‧1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옥고를 치러야 했다. 이후 원산 감리교회 장로로 재직하며 “조국을 위해 죽기를 각오하라”는 말로 동지들을 격려하며 독립운동을 이어가는 한편, 신식교육기관인 대성학교와 신간회 원산지회를 세웠다.

1933년 일제의 탄압과 함께 감시가 심해지면서 행동에 제약을 받게 된 선생은 68세라는 노구를 이끌고 민족의 경제적 자립에 남은 생을 바치기로 결심, 종친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고양으로 이주했다. 1934년 토당동 삼성당 마을에 거처를 마련한 선생은 백석, 장항, 신평 인근의 땅 10여만 평을 구입 개간해 복숭아, 사과, 배 등 과수재배에 들어갔다. ‘백석(白石)농장’이란 이름을 달고 힘차게 출발했으나 농장 경영은 고전을 면하기 어려웠다. 문제는 용수(用水)를 제대로 공급할 수 없다는 데 있었다.

당시 이곳은 일본정부가 1920년에 이어 1925년 을축년 대홍수 이후 용산, 마포, 고양, 파주, 탄현에 이르기까지 장장 12년간에 걸쳐 한강제방을 쌓는 대공사를 벌였던 곳이다. 이후 풍수해는 일부 줄었다고는 하나, 배수시설이 제대로 되지 않아 농민들은 여전히 홍수로 인해 피해를 입기 일쑤였고, 갈수기에는 물레방아, 용드레, 들통 등으로 샛강의 물을 퍼서 농업용수로 사용하는 실정이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과수재배가 목적인 ‘백석농장’으로서는 근대식 관개시설이 절실히 필요했다.

부친인 양곡 선생으로부터 이 같은 소식을 전해들은 큰아들 원재(元載,1886~1950)는 아버지를 돕기로 결심했다. 그는 젊은 시절 독립운동에 전념했던 부친으로부터 경제적으로 별다른 도움도 받지 못한 채 고학으로 서울의 세브란스 의전(醫專)을 나와 강릉에서 병원을 개업해 의사생활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는 그동안 강릉지역에 사 뒀던 농토와 자신이 설립한 ‘관동병원’을 정리해 능곡으로 달려왔다. 그는 동네 주민들과 함께 양수장 부지로 행주산성이 자리한 덕양산 아래 행주외동 173번지 일대 땅 1만여 평을 구입해 양수장 건설에 착수했다.

토당동에서 백석동으로 이어지는 이가순 수로.

1939년, 돌산을 깎고 발파해 양수장을 만들고 물이 흘러갈 수로(水路)를 만드는 대역사는 초기 양곡 선생이 진두지휘했으나, 연로하신 관계로 장남 원재가 주로 담당했고, 뒤이어 원산에서 올라온 차남 형재(亨載,1888~1964)가 돕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그러던 1943년 양곡 선생은 그토록 기다리던 해방을 두 해 앞 둔 채 75세를 일기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된다. 하지만 아들 원재와 형재는 용기를 잃지 않고 공사를 계속해 행주외리에서 행주내동, 토당동, 삼성당 마을을 지나 내곡, 백석에서 장항리까지 15㎞에 달하는 수로를 완성시켜 1945년 3월 수리조합으로 인가를 받았다.

현재 ‘행주양수장 1호 용수간선수로’라는 명칭의 이 수로는 그간 연차적으로 보강되면서 고양과 파주의 경계를 넘어 삼남리까지 총 길이 100여㎞ 주변의 농경지 4500여 ha(헥타르)를 푸르게 적셔주는 젖줄이 되고 있다. 양곡 이가순 선생은 지난 2009년 ‘자랑스러운 고양인’에 선정됐고, 향토 유적 제 64호로 지정된 그의 ‘관개송덕비’와 ‘이가순 숭모사업회’의 ‘이가순 추모비’가 행주 역사공원과 호수공원에 각각 세워져 있다.

 

최재호 고봉역사문화연구소장  webmaster@mygo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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