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 소설가의 텃밭에서 세상읽기>

김한수 소설가

[고양신문] 입하를 넘기고 각종 열매채소 모종을 심었다. 뜨거운 햇살 아래서 작물들은 하루가 다르게 푹푹 큰다. 오월이 지나 유월로 접어들면 토마토를 시작으로 고추, 가지, 오이, 애호박, 참외가 주렁주렁 매달리고, 일주일에 두 번씩 수확을 해야 한다.

텃밭농사를 짓다보면 키우는 것 못지않게 때에 맞춰 수확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때를 놓치면 토마토는 터지고 애호박과 가지는 장정의 종아리만큼 커진다. 처음 농사짓는 이들은 수확시기를 놓친 애호박과 가지 크기에 소스라칠 듯이 놀란다. 마트에 진열되어 있는 애호박과 가지만 봐왔기 때문이다. 과장이 아니라 수확시기를 놓친 애호박과 가지는 커다란 사과상자에 대여섯 개밖에 안 들어갈 정도로 비대해진다.

초보농부들은 비대해진 애호박과 가지를 손에 들고 쩔쩔매다가 대부분 버린다. 보기에 낯설어서 그렇지 먹는 데는 별 문제가 없는데도 낯설다는 이유만으로 버려지는 것이다. 물론 맛은 제 때 수확한 열매에 비해 조금 떨어진다.

그러나 나이가 많은 이들은 비대해진 애호박과 가지를 보고도 당황해하지 않는다. 예전에 시장에서 팔던 애호박과 가지에 익숙해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재래시장에 가면 크기가 제각각인 애호박과 가지를 파는 곳이 있다.

그런데 마트에서 파는 애호박들은 어떻게 자로 잰 듯이 균일한 크기를 유지하는 것일까. 이유는 딱 하나, 어릴 때 비닐봉지를 씌우기 때문이다. 비닐에 갇힌 애호박은 성장을 멈출 수밖에 없다. 따지고 보면 애호박이 똑같은 크기로 시장에 나오는 것은 학대의 결과인 셈이다.

오이도 키우다보면 일자로 반듯하게 달리지 않는다. 크기도 제각각이고 반듯한 것 못잖게 구부러진 오이도 주렁주렁 달린다. 일부 오이는 타원형에 가까울 정도로 꼬부라지기도 한다. 그런 오이들은 쓸모없다하여 버려지기 일쑤다. 마트의 오이가 하나같이 반듯한 이유는 구부러진 오이를 내다버린 결과이다. 하지만 그런 오이들도 먹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봄에 많이 심는 채소 가운데 하나가 열무이다. 그런데 일명 톡톡이라고 불리는 벼룩잎벌레는 열무를 좋아해서 열무 잎사귀에 구멍을 송송 뚫어놓는다. 열무 잎에 구멍이 뚫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큰일 난 줄 알고 호들갑을 떨면서 농약을 찾거나 죄 뽑아서 버려버린다. 벌레 먹은 열무가 매끈한 열무보다 맛도 훨씬 좋고 영양도 풍부한데 그 가치를 몰라보는 것이다.

작물은 벌레의 공격을 받으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스스로 항생물질을 만들어 내뿜는다. 우리가 채소를 먹을 때 향을 느끼는 것은 이 항생물질 때문이다. 화학농약을 친 작물들은 벌레의 공격을 받지 않기 때문에 항생물질을 만들지 않고 그 탓에 아무런 향도 나지 않는다. 이 또한 자연스러움을 빼앗은 학대의 결과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채소들에 너무 익숙하게 길들여져 있다.

농사는 아이를 키우는 것과 하등 다를 바 없다. 아무리 열심히 돌보아도 작물들은 농부의 뜻대로 자라지 않는다. 농사는 사람이 짓지만 그 결과는 하늘이 주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수많은 채소들이 볼품이 없다하여 버려진다. 사람들의 왜곡된 시각이 채소들의 쓸모 있음과 쓸모 있음을 결정하는 잣대가 되는 것이다.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은 겉으로 드러나 결과만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 식탁에 오르는 채소들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자랐는지를 알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번듯한 겉모습에 현혹당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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