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이야기 ⑧소만

5월 21일은 만물이 성장해 가득 찬다는 소만(小滿)이다. 소만은 입하와 망종 사이에 들어 햇볕이 풍부하고 만물이 점차 생장해 가득 찬다(滿)는 의미가 담겨있다.

잠시 짬을 내어 공원을 산책하기만 해도 성장의 기운이 느껴진다. 땅에 깔린 풀들은 색색의 꽃을 피우고 있고, 우뚝 선 나무들은 연초록의 여린 잎을 수줍게 내밀던 시절은 잊은 듯 위풍당당하게 초록 잎을 키우고 있다. ‘잎이 더 커지고 뻣뻣해지기 전에 먹을 테야’라고 작정이나 한 듯이 각종 애벌레들이 나타나 나뭇잎을 먹으며 몸을 키운다. 숲에 들어가면 녀석들이 잎사귀 갉아먹는 사각거림이 들릴 것만 같다. 메뚜기도 한철이라지만 애벌레 녀석들도 한철이다. 열심히 먹고 자라야 나비가 되고 나방이 된다. 

배움에도 때가 있고 성장에도 때가 있다. 애벌레의 처지에서는 잎이 억세지면 먹지 못하니 지금이 열심히 먹을 때다. 애벌레의 성장과 때를 맞춰 온갖 새들은 알을 품고 새끼를 기른다. 이때를 놓치면 아기새를 키울 수가 없다. 지난해 어미 잃은 참새 새끼를 4시간 돌본 적이 있다. 새를 잘 아는 선생님에게 물어보니 ‘어린 새는 메뚜기나 실잠자리는 소화를 잘 못 시켜 애벌레나 지렁이를 먹여야 한다. 소화력이 좋아 한 시간에 한 번씩 배불리 먹여야 하고 반나절 이상 먹이를 먹이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고 했다. 한 목숨 살려보겠다고 애벌레를 잡으러 열심히 돌아다녔으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4시간 만에 참새 보모를 포기하고 참새집 근처에 새끼를 데려다 놓았다. 엄마가 없으면 이모 참새라도 거둔다고 하니 이모의 사랑을 기대하며 새끼의 운명을 맡겼다. 

먹성 좋은 새끼를 먹여살리기 위해 어미새들은 새벽부터 부지런히 벌레를 잡으러 사냥을 나선다. 참새 보모를 4시간 하면서 어미 참새들 삶이 참 고단하구나, 싶었다. 물론 사람살이의 부모노릇도 쉽지는 않지만 말이다. 

여린잎이 나오는 것과 때를 맞춰 애벌레는 알에서 깨어나 먹이활동을 하고, 애벌레가 토실토실 살이 오를 무렵 새둥지에서는 아기 새들이 밥 달라고 짹짹 입을 벌린다. 어쩜 자연의 이치는 톱니바퀴 맞물려 돌아가듯 착착 맞아 돌아가는지, 그저 신기하고 감탄스러울 뿐이다. 

그런데 요즘처럼 갑자기 기온이 올라가서 꽃들이 순서 없이 일제히 꽃을 피우고 나뭇잎이 일찍 나오면 곤충들의 한해살이에 문제가 생기고 아기새들도 자랄 수 없다. 한꺼번에 피어난 꽃을 보며 “와, 화려하다, 멋있다”하고 감탄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다. 자연의 순리가 깨지면 그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감히 예상하기 어려워 염려스러울 따름이다. 

소만의 절후현상으로는 초후에 씀바귀가 뻗어오르고, 중후에는 냉이가 누렇게 죽어가며, 말후에는 보리가 익는다고 한다. 5월 둘째 주 성사천변을 걷노라니 하얀꽃을 피운 선씀바귀, 노란 좀씀바귀, 씀바귀, 고들빼기 꽃이 한창이었다. 여린 꽃줄기 끝에 작은 꽃을 피워내는 모습이 대견하고 사랑스러웠다. 냉이는 이미 꽃이 지고 열매가 주렁주렁 열렸다. 무한한 하트를 날려주는 냉이, 커다란 부채같은 열매를 달고 있는 말냉이, 황새다리처럼 길쭉한 열매를 맺는 황새냉이, 코딱지만 한 열매를 많이 달고 있는 다닥냉이…. 냉이도 종류가 참 많다. 소만 말후에는 보리가 누렇게 익어 6월 초순이면 추수한다. 

소만 무렵은 ‘보릿고개’란 말이 있을 정도로 양식이 떨어져 힘겹게 연명하던 시기이다. 모내기 준비하랴, 밭에 김매랴, 보리 추수하랴, 농사일은 산더미 같은데 작년에 추수한 쌀은 바닥이 나고…. 주린 배를 움켜쥐고 농사일에 매진해야했던 옛 사람들을 떠올리니 처연한 마음이 든다. 

‘오뉴월 하루 놀면 동지섣달 열흘 굶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농사에는 때가 있으니 게을리 하지 말라는 뜻이다. 잎이 아직 여릴 때 애벌레가 태어나고, 애벌레의 성장에 맞춰 아기새가 태어난다. 이렇듯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다. 우리도 때를 알고 준비하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나저나 소만 초후를 전후해 죽순을 따다 고추장 살짝 찍어먹으면 별미라고 한다. 죽순 맛을 볼 때를 놓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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