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호순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고양신문] 민주주의 국가는 국민 다수의 판단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다. 다수의 선택이 소수의 선택보다 타당하고 합리적이라는 믿음이 그 기반이다. 소수자의 선택권도 중요하지만, 그러한 권리도 국민 다수가 인정하는 범위 내에서만 존중받는다. 그러나 다수결 제도가 무조건 타당한 것은 아니다. 다수와 소수에게 모두 선택에 필요한 정보와 기회를 ‘충분히’ 그리고 ‘동등하게’ 주어졌을 때에만 다수결 제도의 정당성이 성립된다.

다수결 원칙은 선거를 통해서 실현된다. 민주국가는 다수결 원칙의 정당성을 보장하기 위해 선거과정을 엄격히 규율한다. 한국의 경우, 1994년 통합선거법 제정 이후 부정과 불법이 판치던 과거의 선거문화가 크게 개선됐다. 그렇지만 유권자의 합리적 선택에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는 조건은 여전히 미흡하다. 특히 지방선거의 경우, 선거정보의 부족과 괴리 때문에 합리적 선거문화가 정착되지 못하고 그로 인해 지방자치의 정착이 지체되고 있다. 올해 6‧13지방선거의 경우, 유권자들이 특히 무관심하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그럼에도 왜 유권자들이 지방선거에 무관심한지 세심하게 따져보는 사람들은 드물다.

유권자들의 무관심이 후보자 탓일까? 후보자들이 유권자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주지 않은 탓일까?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어느 지역에서나 후보자들은 분초를 아껴가며 총력을 기울여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 분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을 알리기 위해 발이 닳도록 돌아다니고, 선거법에서 허용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인물과 공약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유권자 탓일까? 언뜻 보면 그렇다. 뜨거운 후보자에 비해 유권자들은 냉담하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에게 지방선거는 피곤한 행사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처럼 중요한 인물을 고르는 것도 아닌데, 선택해야할 후보자는 훨씬 많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유권자가 시도지사, 시장군수, 시도의원, 시도의원(비례), 시군구의원, 시군구의원(비례), 교육감 등 최소 7명을 선택해야 한다. 이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나선 후보들의 숫자는 그의 2~3배에 달한다. 일일이 후보들을 선별하기가 쉽지도 않고, 그만큼 할애할 시간 여유도 없다.

대선의 경우는 언론보도가 많은 도움이 되지만, 지방선거의 경우는 그런 기대를 하기도 어렵다. 지방선거 보도가 넘쳐나지만, 정작 유권자의 선택에 도움을 주는 뉴스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신문과 방송의 지방선거 뉴스는 대부분 서울시장, 경기지사, 경남지사 등의 후보자들에 관한 뉴스다. 충남도지사를 뽑아야하는 필자에게는 무용지물인 뉴스다. 필자의 경우, 거주지역 아산시의 시장이나 시도의원 후보에 관한 언론 뉴스는 아직 한 번도 접하지 못했다.

대다수 유권자들이 필자의 처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선택해야할 후보에 관한 뉴스보다는, 선택권이 없는 타 지역 유명후보에 관한 뉴스를 더 많이 접하고 있을 것이다. 선거뉴스는 풍성하지만 정작 유권자로서 자신에게 필요한 지역선거 뉴스는 없는 것이다. 자연 지방선거에 유권자들이 무관심해질 수밖에 없다.

한편 지방선거에 대한 유권자의 무관심을 은근히 반기는 사람들이 있다. 기득권 정당정치인들이다. 현행 지방선거 제도는 정당소속 후보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정당 브랜드만으로도 많은 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지도가 높은 정당의 후보는 더욱 유리하다. 자기능력이나 공약보다는 대통령이나 소속 정당의 인기를 이용해 쉽게 당선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의 대표자이지만 지역사회의 복지와 이익보다는 중앙당 지도부의 지침과 결정을 더 존중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이유다. 지역 고유의 현안이나 정책은 주목받지 못하는 선거, 중앙당의 인기투표로 변질된 지방선거에 유권자가 관심을 갖고 참여하길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지방분권국가를 지향하는 헌법을 만들겠다는 나라의 대다수 국민들이 지방선거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 결과는 지방선거를 통해 오히려 중앙의 지방 지배력이 더욱 심화되는 이율배반적인 현실모순이다. 지방선거에서 유권자가 무관심한 이유는 유권자 탓이 아니라 지역을 무시하고 이용만 하려는 중앙정당과 중앙언론 때문이다. 유권자의 무관심을 조장하고 방관하는 기득권 정당과 기득권 언론이 바뀔 때에야 비로소 다수의 선택이 존중되는 민주주의와 지역의 선택이 존중되는 지방자치가 이 땅에 정착될 것이다.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