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범구 주독한국대사

<고양의 이웃이었던 정범구 주독 한국대사가 SNS를 활용해 흥미로운 일상을 들려주고 있다. 내용 일부를 소개한다.>


[고양신문] "따르릉"

"네, 주독대사관입니다!"

"(다급한 목소리의 중년 여인) 우리 아이하고 벌써 몇 시간째 연락이 안 되는데 무슨 일이 난 거 아닌가 싶어요. 거기 대사관에서 우리 딸애 집에 한번 가봐 주실 수 없어요?"

이 긴 얘기를 짧게 줄이면 이렇다.

한국에 있는 어머니가 베를린 유학 중인 딸과 몇 시간째 연락(카톡으로)이 안 되는데, 이런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하니 대사관에서 그 집엘 한번 가봐 달라는 것이다.

때는 어느 토요일 밤 10시경(한국시간 새벽 5시).

주말 당직자가 별일 있겠느냐,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고 달랬지만 계속 이어지는 전화에 할 수 없이 딸의 집을 찾아가 보려고 택시를 불러 놨는데 그새 또 전화가 왔다. 딸과 연락이 됐고, 그 딸은 별일 없었다고 한다. 그때 시간은 거의 밤 12시.

"별일 없이 산다"는 어느 가수의 노래가 아마 그날 밤새 당직근무자의 머릿속을 맴돌지 않았을까?

대사관에서는 매주 월요일 아침 전체회의를 연다. 제일 첫 보고사항은 주말 당직근무 시 접수된 사건들이다. 대체로 여권분실과 관련한 사건이 많지만 때로는 황당한(?) 사건들도 많이 접수된다. 옆집에 사는 외국인이 자기가 오갈 때마다 째려보는데 위협을 느끼니까 신변보호를 좀 해달라는 이야기에 비하면 프랑크푸르트에서 베를린 오는데 짐 하나가 분실됐다는 민원은 약과다.

<사진=정범구 대사 페이스북>

종래 거주 교민을 주 대상으로 했던 영사업무가 이제는 연간 2000만 명 이상 해외로 나오는 관광객들까지 다루어야 하기 때문에 영사 업무는 날이 갈수록 많아진다. 특히 문재인 정부 들어와서는 ‘국민보호’가 우리 외교의 주요과제의 하나가 되어 더욱 그렇다.

대사관 업무는 크게 주재국을 대상으로 하는 외교 업무와 교민 대상의 영사 업무로 나뉜다. 독일에만 해도 베를린에 대사관(영사부 포함)이 있고 프랑크푸르트와 본, 그리고 함부르크에 각각 총영사관이 있다. 대사관 외교업무는 주로 독일 외교부와 총리실, 그리고 연방의회 의원들, 16개 연방주 정부와의 교섭 등, 현지 주재국 정부와 여론을 상대한다. 요즘처럼 북핵문제를 둘러싼 정세변화가 급변할 때는 대사관도 많이 바빠진다. 독일정부와 의회, 언론으로부터의 면담 요청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영사관에서는 교민들 대상 각종 민원업무(각종 증명서 발급, 공증 업무 등)와 한국입국을 희망하는 외국인들의 비자업무를 처리한다. 그리고 한국인 관련 각종 사건, 사고에 대응한다. 얼마 전 프랑크푸르트에서는 불치병에 걸린 30대 청년이 치료차 독일에 왔다가 호텔에서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이런 경우 사건처리와 시신운구 등의 일은 관할 총영사관 일이 되는 것이다.

아직도 많은 분들이 해외공관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교민들에게 군림하려 한다"거나 "귀족적"이라거나, 또 국민들에게 불친절하다는 것이다. 자신의 직접경험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고, 어떤 분은 남들이 그러니까 그런가 보다 하고 말한다. 그런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라도 공관원들은 오늘도 열심히 뛴다. 또 가족과 떨어져 위험한 분쟁지역이나 오지에서 열심히 뛰는 외교관들도 많다.

국민들이 ‘별일 없이 살게’하기 위해 나름대로 뛰고 있는 이들을 기억해 주시라.


정범구 주독한국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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